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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중고등)] 내가 영어를 못해도 되는 이유
작성일
2021.02.04

[장려상 - 청소년글짓기 부문]


내가 영어를 못해도 되는 이유


표 현 규 / 캐나다


나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처음부터 캐나다 국적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 캐나다에서 한국에서 온 조기 유학생들과 같이 비영어권 출신을 위 한 특별한 영어 수업인 EAL(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을 듣 는다. 즉 한국에 막 온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이 특별반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 것과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아기 때 이민을 온 다른 한국 친구들보다 영어를 못한다.

그 이유는 내가 만 3살을 넘겼을 때 아버지께서 일이 있어 한국으로 들 어가 9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식구는 모두 캐나 다 국적이었지만, 부모님이 캐나다로 이민을 오시기 전에 모두 30년 넘게 한 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전혀 외국인이라는 생각 없이 한국에 잘 동화돼 살았다. 당연히 한국인처럼 한국어만 하고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 해 부모님의 일가친척도 모두 한국에 있어 단 한 번도 내가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시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에 왔을 때는 6학년이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사실 영어 학원도 다니 고 했지만 그때는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몰라 그냥 대충 시간만 보냈다. 낯선 캐나다에서의 학교생활은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라 학교에 첫 등교했을 때 정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막 왔다는 것이 다른 한인 학생들이나 한인 조기 유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됐다. K-POP 스타나 한국의 프로게 이머들이 이미 또래 친구들에게는 우상이었고, 영어 공부만 하면서 오히려 한국어가 어눌한 한인 친구들에게 생생하게 한국 콘텐츠를 설명할 수 있는 내가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시간이 걸리지만 한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 해 결됐다. 쉬는 시간이면 모든 한인 친구들과 또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다 른 민족 친구들이 내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럴 때면 그들이 궁금해하는 이 야기나 한국 프로게이머의 한국어로 설명하는 게임 기술을 가르쳐주며 마치 내 자신이 영웅이 된 듯했다. 정말 영어를 잘 못하지만 한국어를 잘하는 것 만으로도 캐나다에서의 학교생활을 생각보다 편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

또 하나 한국에서 친구들이 방과 후에 모두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느라 같 이 놀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공립도서관에 모여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 과 마치 한국의 PC방 같이 게임을 진탕 즐길 수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유 행하는 신세대 언어를 구사할 때면 친구들이 모두 부럽다는 듯 하나하나 배 우려고 내 말에 귀 기울였다.

부모님은 한국에 있을 때 항상 ‘영어를 배워야 한다’ ‘캐나다에서 살려면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 노래를 알고, 한국의 유명 게이머들의 테크닉을 먼저 배울 수 있으니까 더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됐다.

그게 문제가 됐다. 부모님은 다른 한국 조기 유학생들은 1년이면 다 EAL 을 졸업하고 정상 수업을 듣는데 3년이 넘도록 EAL 수업을 듣는 나 때문에 걱정이시다. 잔소리만 늘어놓으신다. 가끔 영어를 완전하게 다 알지 못하고 문법도, 단어도 부족하다고 느낄 때 걱정이다. 그런데 이런 모자라는 부분 을 한국어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으니 정말 절실하게 영어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부모님은 영어가 세계 공통어이기 때문에 한국에 살아도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BTS나 영화 <기생충>등 한국 문화가 점차 세계적 으로 유명해지니까 한국어를 잘하고 영어는 대충해도 잘살 수 있을 것 같 다. 어머니가 한국어학교 선생님을 해서 자원봉사자로 따라가 한국어를 배 우는 아이들을 봤다. 초급반인 아이들은 모두 5~6세 아이들로 절반은 한인 2세들이었지만, 절반은 혼혈 아이들이었다. 나처럼 캐나다에서 태어나 모두 캐나다 국적자이고 영어가 모국어라 영어는 잘하지만 한국어는 잘 몰라 힘 들어했다. 그러나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려는 모습이 귀엽다.

영어를 배울 기회는 많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려 있다. 하 지만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이에 비해서는 드물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더 멀리 많이 퍼져 나간다면 한국어를 잘하는 그 소수가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요즘 지식은 다 인터넷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숙제를 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 인터넷을 많이 활용한다. 특히 유튜브는 동영상으로 자세하 게 원하는 내용을 설명해 주어서 자주 이용한다. 다른 친구들은 영어로 유 튜브를 보고 정보를 얻지만 나는 한국어 유튜브도 자주 이용한다. 일반적인 내용은 영어로 보나 한국어로 보나 같지만 한국인만의 아주 특별한 노하우 가 녹아있는 동영상을 발견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 날 수업에 남 들과 차별화된 내용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영어에도 자신감이 생겨, 한국어로 된 콘텐츠들을 영어로 만들어보 면 나도 인기 있는 유튜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한다.

아버지께서 페이스북도 유튜버 실시간 방송도 아이디어는 한국이 먼저였 다고 하셨다. 싸이월드와 아프리카TV 등이 만약 영어로 함께 운영됐다면, 마크 저커버그나 래리 페이지 대신 한국에서 유명 인사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가 한국어보다 영어로 만들어져야 더 성공할 수 있 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내가 어른이 되면 한국어로 만들어진 아이디어들이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때가 올까?

셰익스피어로 인해, 그리고 영국의 막강한 국력으로 인해 영어가 세계의 중심 언어가 되었듯이 한국어도 세계의 주요 언어의 하나로 부상했으면 좋 겠다. 진짜 그래야 하는 이유는 내가 한국어는 아주 잘하지만 아직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적은 캐나다이지만 단 한 번도 내가 한 국인이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고, 한국어만 해도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 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인으로 특별한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가 점차 많은 외국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앞으로 도 계속 주목받아 나갈 수 있도록 한인 모두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부모님이 영어를 못해 걱정하는 불효자는 되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