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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초등)] 아주 특별한 산책
작성일
2021.02.04

[우수상 - 청소년글짓기 부문]


아주 특별한 산책


장 하 진 / 미국


저는 가끔 저의 마음에 무엇이 비어있다는 걸 느껴요. 주로 산책을 할 때 느껴요. 조용한, 또 고요한 산책은 저의 흥을 잠시 내려놓고 깊은 생각에 빠 뜨려요. 특별하고 소중한 이 산책을 생각하면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느껴지는 나만의 기억이 무엇일까요?


2016년 늦은 여름 한국에서의 오후였어요. 해가 하루를 마치고 지구의 다른 편으로 가기 전에 외할머니와 저는 발을 신발에 쏙 넣고 가벼운 마음 으로 산책하며 스쳐가는 기억일 줄 알았지요. 그날 너무나도 인상적인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하자 그림 같은 장면 처럼 보였어요. 위에는 아름답게 연한 파랑, 아래는 진한 주황, 가운데에는 파랑과 주황이 만나는 지점에 아주 예쁜 분홍색이 있었어요. 할머니와 저는 자유롭게 춤추며 반기는 바람과 마주쳤어요. 해의 따스한 빛과 바람의 시원 함은 환상의 조합이었어요. 그때 바람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을 뚫고 할머니 께서 말씀하셨어요.
“딱 산책하기 좋은 날씨지, 응?”
저는 입이 늘어날 정도로 크게 웃으며 할머니를 힘이 나게 해드렸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리듬을 타고 있었던 바람에 맞춰 걸어갔어요. 바 람이 우리를 감싸며 우리가 걷는 길을 모두 따라 걸었어요. 우리의 발목을 간지럽히듯 바람이 불다가 갑자기 거치고 센 바람이 우리를 밀었어요. 그렇 게 할머니의 아파트 뒤편에 있는 놀이터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었어요.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벤치에 모셔드리고, 저는 흥이 넘치 도록 신나게 놀았지요. 놀고 또 놀다가 지치면 잠깐 쉬고, 할머니는 저를 너 무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셨어요. 놀고 있는 저를 바라보며 아이처럼 환 한 표정으로 싱글벙글한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 보기에 좋았어요. 저는 더 적 극적인 움직임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빨리 지치게 되었지요. 그러나 할 머니의 밝게 웃는 표정은 저를 힘이 솟는 약을 먹은 것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행동을 하게 만들었어요.

다시 찾아온 조용함 속에서 저만의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 요. 많은 생각들을 하다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 한 가지가 떠올랐어요. ‘할머 니가 떠나면?’
저는 외할머니와 아주 유일하고 특별한 관계를 나누어요. 제가 힘든 시기 에 할머니가 토닥여 주고, 할머니께서 몸과 마음이 약해져 좋은 말씀이 필 요할 때는 버섯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기쁨을 주는 공연과 말씀을 전달 하는 건 저의 역할이에요. 제 친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너무 귀찮 은데 오늘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러 가야 해”라고 말할 때 저는 슬픈 감정이 와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자와 손녀들을 너무 사랑해서 귀찮을 정도로 우리들을 걱정해 주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기 때문이지요. 이때 보 라색, 분홍색, 그리고 주황색이 어울린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표현을 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어요. 그 순간 용기를 내서 할머니께 여쭈어보았어요.
“할머니…… 꼭 계속 계실 거예요?” 할머니는 가벼운 미소로 웃으셨어요.
“하진아! 나 계~속 있어.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그렇게만은 아니겠지.”
“네? 이해가 안돼요…….”
“그게 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 네가 준비될 때 파도가 돌을 치는 것처럼 깨닫는 때가 올 테니…….”
할머니는 약한 팔로 주먹을 내밀며 다른 팔로 파도를 만들며 말씀하셨지 요. 할머니는 꿈을 꾸는 듯한 눈을 뜨시고 저에게 눈길을 돌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진아!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이고, 할머니는 항상 너와 함께 꼭 있을 거야.”
그 문장은 저를 또다시 깊은 생각에 빠뜨렸어요. 할머니가 나와 항상 함 께 한다는 그 말은 내 마음에 메아리처럼 울리고 또 울렸어요. 너무나 아름 다운 말이어서 질문들이 막 떠올랐지만 당분간 이 질문들은 잠시 숨겨 놓고 이 순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나중에 꼭 다시 깊이 생각할 거라 는 마음의 약속을 하고, 할머니와 저는 서로를 더욱더 잘 알게 되는 이야기 들을 나누었어요. 너무나도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더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할머니와 저, 단둘이 보낸 첫 번째 저녁 하늘이었기 때 문이었어요.

할머니께서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하고, 화단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 어나셔서 저한테 다가오셨어요. 할머니 손에는 노란 꽃이 있었고, 그 꽃을 저에게 내미셨어요. 받아야 하는지 몰라 망설이다가 꽃을 받았더니 할머니 께서 활짝 웃으셔서 ‘우리 마음이 통했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노란 꽃 을 손에 들고, 함께 걷다가 할머니 집 가까운 화단에 다시 심고 우리의 새로 운 생명을 보며 함께 웃었지요. 다시 심은 노란 꽃, 다시 우리 마음에 희망 의 씨를 심은 것처럼 느꼈지요. 그 꽃은 할머니와 손녀인 저와의 아주 특별 한 관계를 상징해요. 이제 그 특별한 산책을 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저한테 는 어제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아직 그 질문이 남아있지요.
“하진아! 나 계~속 있어.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그렇게만은 아니겠지.”
그 후로 저는 미국에 다시 돌아왔고, 할머니는 한국에서 사시기 때문에 멀리 느꼈었어요. 올해 1월에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 고, 설날 아침에 식사를 하시려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어요. 할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시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지만 오히려 저는 할머니랑 더 가까이 느껴져요. 왜냐하면 할머니는 제 마음속에 꼭 계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보다 더 좋은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에 저는 가족들에게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할머니가 더 편안하고 행복해지신 것을 축하해 주자고 말했어요. 할머니는 인간으로는 영원히 나 와 함께 있지 못하지만,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얼굴은 제 마음에 늘 함께 남 아 있지요. 4년 전에 할머니와 함께 심은 노란 꽃과 이 보석 같은 사실을 담 은 제 마음속 보석 상자는 할머니와 저만의 멋진 비밀이에요. 할머니! 저랑 항상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