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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초등)] 난 꿈이 있어
작성일
2021.02.04

[장려상 - 청소년글짓기 부문]


난 꿈이 있어


이 윤 서 / 중국


여기는 끝이 안 보이는 초록색 바다가 무릎까지 잠기며 하얀색 물고기가 바람에 따라 보일락 말락 한다. 햇빛이 초록 바다를 따라 깡충깡충 뛰어놀 고 있었다. 나는 내몽고 초원에 있지!
가족과 함께 내몽고에 온 지 벌써 5일째다. 오늘은 ‘시골집’에서 점심 먹 기로 했다. 나는 매일 후딱 먹고 식당 주변을 돌면서 많은 것을 카메라 속에 담는다. 오늘도 이것저것 찰칵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듯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급히 뒤를 돌아보니 대여섯 살 나 보이는 여자애 가 “언니 한국 사람?” 그의 빨갛고 통통한 얼굴에는 땀범벅으로 흙이 묻어 있었고 호수처럼 맑고 깨끗한 눈에는 자랑스러움과 반가움이 가득했다.
“음, 어떻게 알았지?”
“큭, 언니 핸드폰에 한국말, 언니 반가워!” 그는 아주 많이 신나서 손뼉 치며 말했다.
“아~나도 반가워! 이름이 뭐니?”
“난 유리, 김유리.”
“너는 누구랑 여행하러 왔니?”
“난 여기서 태어났어, 나는 여기서 살아.”
“그렇구나, 근데 한국말 엄청나게 잘하네.”
“언니 고마워.” 그는 자랑스러워하며 흐뭇해서 활짝 웃었다.
“저분이 내 한국말 선생님 송 선생님이셔.” 유리가 식당 마당 쪽을 가리키 며 말하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마당에 쭉 펼쳐진 빛을 밟으며 송 선생님 께 인사드리려고 유리를 따라갔다. 20살 안팎의 생머리에 청바지 차림을 한 여선생님이셨다. 내몽고 초원에서 이렇게 한국 분을 만나니 더없이 기뻤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서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 를 나누었다.
송 선생님은 대학 시절 단짝 친구와 졸업 후 세계 일주를 약속했었다. 그 들은 졸업 후 바로 세계 일주를 시작했고 내몽고 초원 이르러 초원을 체험 하고 몽골족에 대해 이해해 가면서 즐거운 여행을 했다. 어느 날 송 선생님 과 친구는 우연히 유리 아빠가 경영하는 식당에서 식사하게 되었다. 두 분은 주문을 다 하고 지도를 보면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의 낯이 백지 장처럼 되더니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카운터에 계시던 유리 아빠는 재빨리 달려가셔서 송 선생님의 친구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식당 직원들은 구급차를 불렀다. 송 선생님이 친구 가족이랑 통화하고 있을 때 유리 아빠는 뭔가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하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사무실로 들어 가셨다. 송 선생님은 자기를 바라보고 나서 한숨 쉬는 유리 아빠가 이상해 서 사무실 안으로 힐끗 보았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태극기!” 유리 아빠는 벽에 걸려 있는 남자의 사진을 보면서 뭐라 혼잣말을 하셨다. 액자 한쪽에는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진료 결과 친구의 건강 상태로는 더는 세계 일주를 할 수 가 없고 이른 시일 내에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날 밤 그들은 유리 아빠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시골집’에서 묵게 되었다. 송 선생님은 오후 내 내 사무실에 있는 태극기가 궁금했다. 낯선 내몽고 초원 현지인 사무실에서 태극기를 볼 수 있어 반갑기도 하고 또한 영문을 알고 싶었다. 송 선생님은 식당 카운터로 달려가 서투른 중국어로 “한국 궈치(한국 국기)?”, 송 선생님 은 핸드폰에 번역기 앱을 클릭하시면서 설명을 부탁했었다.
알고 보니 유리의 할아버지는 유학 시절 유리의 할머니를 만났고 결혼 후 내몽고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결혼 몇 년 뒤 유리 할아버지는 심한 병에 걸 려 후유증으로 언어 능력을 상실하셨다. 언어 장애인이 되신 유리 할아버지 는 아들한테 자기 민족의 말을 가리킬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 무엇보다 가 슴 아팠고 한이 맺혔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유리한테는 꼭 한국말을 가 리키며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셨다. 하지만 내몽고 초원에서 한국말 선생님을 찾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 같았다. 유리 아빠는 두 여행객이 한국 사람인 줄을 알아차리고, 유리 할아버지의 유언을 지켜주 지 못한 것이 죄스러워서 사진을 보며 용서를 빌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리 아빠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난 송 선생님은 밤새 깊은 사색에 잠겨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튿날 송 선생님은 유리한테 한국말 발음 동영상과 인사말 동영상을 남기고 친구랑 귀국하였다.
귀국한 송 선생님은 유리 옆에서 한국말을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찾으면서 많은 수업 자료를 준비하셨다. 그리고 어느 날 식당 문 앞에 송 선생님이 천 사처럼 나타났다. 유리의 한국말 공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언니, 내 한국 이름도 송 선생님이 지어주셨어. 선생님이 나를 처음 만났 을 때 눈이 호수처럼 맑고 깨끗해 보여서 유리라고 지어주셨대.”
“언니, 난 꿈이 있어. 나도 커서 송 선생님처럼 여러 나라 다니면서 나 같 은 애들한테 한국말 가르칠 거야. 태극기도 그려주고 아리랑도 불러주고.”
유리의 얼굴에는 햇빛의 부드러운 쓰다듬 속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니까 햇볕처럼”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유리와 송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간의 한글학교에서 보냈던 추억 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글학교는 나에게 중국에서도 한글을 배우며 또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 스럽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게 자신감을 실어주었다. 나의 행복한 배움터다. 나도 내가 받은 만큼 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