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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시]할머니의 회초리
작성일
2022.01.18

시-가작

할머니의 회초리

조 숙 현 [아르헨티나]


나는 지금도 가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추억이 있다.

6.25 전쟁 때 아버지께서는 전쟁터에서 전사하셨고, 21살에 과부가 되신 어머니께 서는 개가(改嫁)를 하셔서 나는 조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다. 3대 독자 외아들에게서 하 나 있는 손녀딸이었다.
소위 모자를 쓰신 아버지의 군복 영정 사진을 걸어 놓은 두 개의 대못 위에 회초리 는 얹혀 있었다.
내가 잘못하였을 때, ‘매 갖고 와.’ 하시면 의자를 놓고 올라가 회초리를 가져다 할 머니께 드렸다. 낭창낭창한 회초리는 내 장딴지에 ‘착착’ 소리 내며 달라붙었다. 눈물과 콧물은 범벅이 되어 얼굴을 타고 내려와 턱 끝에서 방바닥으로 착지하였다. 매를 다 맞고 나면 또 의자 위에 올라가서 아버지 사진 밑에 매를 올려놓았다. 그때마다 사진 속 아버지께서는 나를 바라보셨다.
장딴지의 살이 얇은 줄을 그으며  부어올랐다.
할머니께서는 장딴지 상처 위에 민트향이 진하게 나는 바셀린을 발라 주시며 항상 말씀하셨다.
“세상에 나가 애미애비 없는 호로 자식 소리 안 들어야 하느니라.” 나는 어느새 아픔도 잊은 채, “할머니, 누룽지 있어요?”  
할머니께서는 누룽지에 설탕을 솔솔 뿌려 주셨다. 기가 막힌 과자였다.
이제 내 나이 그때 할머니 나이가 되었다. 자식들에게 회초리로 때려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내 맘 같지가 않다. 시대 탓으로 돌려야 하나?
가끔 나는 그 회초리가 그리워 눈에 눈물이 고인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