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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시] 메주
작성일
2022.01.18

시 - 대상

메주

최 승 현 [러시아]


오래 매달려 있다 병실 가득 고린내 풍긴다
냄새가 고약하다고 엄지와 검지로 코를 막는
손녀의 뽀얀 볼때기 꼬집는다
알맞게 익어야 제맛 나는 내 나라의 음식은
부글부글 끓어도 인내하고 마는 어머니 속내 닮았다
일 년째 병상에서 투병 중인 그녀 나이 헤아리며
한 세기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알몸 어루만진다
석회질 다 빠져나간 앙상한 뼈 하얗게 센 머리칼
내뱉지 못하고 말라버린 말들의 유적이
가계(家系)의 내력을 세로쓰기 하고 있다
호스로 칭칭 감긴 그녀 새끼줄에 매단 메주 같다
한 생애를 참고 견디며 꾹꾹 눌러 빚은
구덕구덕한 언어들 그녀 입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녀의 입에 귀를 대고
말들의 풍경이 건네는 전설(傳說) 듣는다
쩍쩍 갈라지고 바싹 마르면 거둬야 하느니라
염수(鹽水) 다 빠져나간 링거병
서서히 눈 감는 어머니
볕이 잘 드는 독에서 장을 꺼내
마지막 밥상 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