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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시] 구두
작성일
2022.12.14

시 부문 우수상


구두

KoAnn (미국)


맞지 않는 구두를 신었어요.
살 때는 그 구두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 보였거든요.
그 구두를 신으면 난 신데렐라가 될 줄 알았어요.
신데렐라를 꿈꾸며 구두를 선택했어요.
구두는 얼핏 나와 어울려 보였어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쁘고 잘 어울린다고 말해 줬어요.
난 그 말을 믿었고, 그 구두와 함께했어요.
그 구두는 … 나를 위한 구두라 생각하면서…

구두를 신었어요.
보기엔 멋지고 좋아 보였어요.
한 발자국 …, 천천히 … 걷고 또 걸었어요.
걸을수록 그 구두는 내 발에 고통을 안겨줬어요.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통은 배가 되었어요.
너무나 생각지 못한 고통으로 인해
그 구두를 벗어버리고 싶었어요.
구두를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네요.
모두들, 부러운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 있네요.
나와 구두가 썩 잘 어울려 보였나 봐요.
구두 속에서 제 발은 울고 있어요.
제발 ~ 제발 ~ 벗겨달라고
자유로운 맨발이고 싶다고
차라리 거친 맨땅을 맨발로 걷고 싶다고
난 … 제 발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가 없었어요.
차마 …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당당히 구두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나설 용기가 서질 않았어요.
조금만 … 그래 … 조금만 더 참자.
구두에 내 발이 익숙해질 동안만…
그렇게 … 여기까지 걸어왔어요.
시간이 흐르면 구두에 내 발이 익숙해질 줄 알았건만
그 사이 내 발은 만신창이가 되었어요.
구두 속에서 짓이기고 까지고 피나고
본래의 이쁜 발 모양이 아니었어요.
오랜 세월 …, 난 내 발을 학대해왔어요.
단지 … 남의 시선만을 의식한 채
내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았어요.
그 대가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이제서야 난 구두를 벗기로 했어요.
이제서야 난 내 발을 어루만져줄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서야 난 비로소 구두가 내 발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모든 사실을 이제야 … 알게 되었지요.
구두를 벗어버리니
비록 발은 온갖 상처로 보기 안 좋아졌지만, 편안해 보였어요.
상처뿐인 맨발로 다시 걸어야 하지만
구두로 인해 고통받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예요.
비록, 맨발로 걷다가 가시밭길 혹은 울퉁불퉁 자갈길을 걷게 될지라도
더 이상 맞지 않는 구두로 힘들게 걸을 일은 없을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내 발은 비로소 자유로워졌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