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기자 24시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조선사람 입니다.> 상영회 개최
작성일
2021.04.30

나는 조선사람 입니다 포스터

지난 4월 17일 도쿄에서 한국인 김철민 감독이 재일동포 1세부터 현재의 5세까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조선사람 입니다> 가 상영회를 가졌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전 좌석 예약제로 이루어진 상영관은 만석을 이루었다.

감독은 2002년 6.15 공동선언 기념으로 금강산에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일본에서 방문한 재일조선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일본에 살면서도 조선말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통일을 염원하는 재일조선인들에 눈길이 가게되었고 그들의 일본 안에서의 삶을 오랜 기간 취재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남한에서 온 사람을 한국인 (강코쿠진), 북에서 온 사람을 북조선인(기타 조센진) 그리고 조선적을 가지고 북도 남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부를 땐 조선인 (조센진)으로 부른다. 극우세력의 혐한 데모에서 빠짐없이 사용되는 단어들이 ‘조센진(조선인)’ 이라는 단어이다.

영화 상영관

영화 상영관

영화 상영관

재일조선인 1세대는 일제 침략시절 노동을 하러 일본에 오신 분들이다. 일본 사회 안에서 불평등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도 계신다. 36년간의 침략에서 해방 된후, 일본에 살고 있는 150만명 조선인들에게 조선에 돌아가려면 일본안에서 벌어들인 재산 중 일부만 가져갈수 있게하는 제한을 두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미 가정을 이루고 모든 재산을 가져갈수 없는 조선인들은 그대로 일본에 남아 상황이 좋아질 때를 기다리며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약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만이라도 일본 땅 안에서 조선글, 역사를 자녀들에게 가르치려 처음 조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 건축물도 모두 부모님들의 기부와 노동력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고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일본땅 안에서 갈곳을 잃은체 ‘재일조선인’으로 남게 되었다.

전쟁후 남한은 초토화된 국가를 재건하기에 바빴고 일본에 남아있는 조선인들에 대해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반면 북한은 독립운동을 한 경험이 있는 김일성이 일본땅에 남아있는 조선인들을 위해 조선학교에 자금적 지원을 하게되었다. 자연스럽게 일본안에서 차별을 받던 조선인들은 금전적 지원과 장학금 제도들을 통해 고국방문을 하며 공부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북한과 밀접한 관계가 된다. 드러던 중, 남쪽이 고향이였던 조선인들은 남한에 가서 공부하려 한국에 유학을 오게된다. 그 시절 한국은 군사독재정권하였고 조국이 그리워 본인의 정체성을 찾으러 유학을 온 학생들을 ‘간첩조작 사건’으로 간첩으로 만들어 21명의 학생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고문을 하게된다. 일본의 차별과 편견 속에서 조국이 그리워 본인의 뿌리를 찾으러 온 학생들에게 그 간첩조작 사건은 조국이 본인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큰 슬픔을 안겨주게된다. 지금은 대부분의 간첩으로 형을 받았던 재일조선인 유학생들이 무죄로 판결되었다.

식민지 지배 70년이 훌쩍 지났지만 재일조선인들이 받는 차별은 변함이 없다. 현재 재일조선인 4세, 5세 학생들이 다니는 일본 전국에 있는 60개가 넘는 조선학교에 정부 보조금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조선학교 말살정책을 펴고있는 일본이다. 세금으로 모든 학교에 정부보조금이 지급되지만, 교육의 평등권을 침해하며 조선학교에게만 보조금을 주지 않는 민족적 차별을 어린 학생들에게 자행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렇게 말을 한다. ‘조선인으로 받는 차별이 싫으면 일본인으로 귀화하면된다.’ ‘무상교육을 받고 싶으면 조선학교를 버리고 일반 일본학교로 옮기면 된다.’조선말과 조선역사를 버리고 일본인이 되기를 일본식의 역사교육을 받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의 산물, 6.25전쟁의 최대의 피해자, 이들이 바로 <재일조선인> 이다. 민족적 차별과 멸시에서 그들을 해방시킬수 있는 것은 바로 <한반도의 통일>뿐이다. 그래서 재일조선인들이 그 누구보다도 하나된 조국을 염원하는 듯 하다. 일본땅에서 조선인의 뿌리와 얼을 지키며 살아와준 재일조선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든다.

영화 상영회 후 히토쯔바시 대학 명예교수이자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모임>의 공동대표인 ’타나카 히로시‘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교육자이자 일본 양심인으로서 교육의 평등을 법률적으로 주장하셨다. “일본의 역사인식은 세계의 역사인식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라 말씀하셨다. 1965년 12월 21일 유엔에선 ‘인종차별 철폐협약’ <식민지주의와 관련된 차별>을 비난 하였다. 그러나 같은해 1965년 12월 28일 일본에서는 <민족성 또는 국민성을 키우기위한 목적으로 하는 조선학교는 학교로 허가할수 없다.> 라 발표한다.


종전선언을 위한 피켓팅

영화 상영회가 끝나고 4.27 판문점 선언 3주년 기념으로 ‘종전선언’을 위한 피켓팅을 일본인, 재일조선인, 한국인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며 참여를 했다. ‘남북평화통일’ 이라는 의미는 재일조선인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의 조국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며. 일본에 살고 있는 그들이 민족적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다.




재외동포기자 고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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