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기자 24시

중남미 최초의 동양인 지휘자, 박종휘
작성일
2023.04.24

중남미 최초의 동양인 지휘자, 박종휘

꼬르도바 주립 교향악단,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공연 마쳐.


지휘자 박종휘


지난 4월 22일 저녁 8시 아르헨티나 꼬르도바 시 리베르따도르 산 마르띤 극장은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기념 콘서트에 입장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꼬르도바 주립 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이리나 디츠코프스카야(Irina Dichkovskaya)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2번 협연, 교향악단의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Symphonic Dances) 연주에 시종일관 집중하며 아름다운 선율과 열정적인 연주에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공연이 막을 내리며 기립박수가 그치지 않은 가운데 시민들의 집중적 관심을 받은 주인공은 지휘자 박종휘였다.

그는 지난 해 4월 5일 꼬르도바 주립 교향악단 지휘자로 낙점된 이후 전임자들과 비교되는 독특한 행보로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간 일부 여유로운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섰는데 박종휘의 지휘로 재해석된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합창곡들이 시민들에게 다수 선보였다. 지난해 12월 꼬르도바 시 대성당에서 주립 교향악단이 출연한 크리스마스 공연이 있었는데 몰려든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곡을 따라 부를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그의 지휘 방식은 매우 창조적이어서 때로는 인형을 관중석에 던지는 등의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미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올해 2월 시즌 개막 공연으로 라테츠키 행진곡,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봄의 소리’, ‘박쥐’를 연주, 일반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호세라는 이름의 한 관객은 “그의 음악에는 예술이 주는 치유, 감동, 비전이 담겨 있다. 그가 꼬르도바에 온 것이 우리들로서는 큰 행운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니콜라스라고 이름을 밝힌 또 다른 관객은 “박종휘의 열정적인 지휘는 음악에 저절로 몰입하게 한다”며 그의 연주에는 “열정, 헌신, 사랑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합창단원 마리아나는 “우리들은 그를 까베손(Cabezón)이라고 부르죠. 즉 일단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을 내는 근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라고 그를 평했다.


지휘자 박종휘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 : 꼬르도바는 어린 시절 ‘엄마 찾아 삼만 리’ 만화영화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실감이 안 났는데요. 세월이 흘러 이 도시의 교향악단 지휘자가 한국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반갑던지요.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사상 최초의 동양인 지휘자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꼬르도바 주립 교향악단으로 부임하게 되었는지요?

박종휘 : 한예종에서 지휘를 전공했고 '모스크바 국립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후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미국, 한국, 일본,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볼리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파라과이 각지에서 오케스트라 단을 이끌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카르코프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동아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창원 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파라과이 아순시온 시립 교향악단 음악감독 및 아순시온 국립 대학교 지휘과 교수 그리고 파라과이 국립교향악단 수석객원 지휘자를 역임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제 2도시인 꼬르도바 주립 교향악단의 요청으로 객원지휘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단원들의 투표로 지휘자로 뽑혔습니다. 당시 경쟁자로 여러 나라 지휘자들을 비롯해 쟁쟁한 사람이 많았는데 아르헨티나 음악계의 거장 피아니스트 브루노 겔베르가 저를 적극 추천해서 2021년에 첫 객원 지휘를 그와 함께 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2022년 4월 5일부터 상임지휘자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 사실 아르헨티나 음악계는 보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아니스트 마르따 아르헤리치, 브루노 겔베르,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을 배출할 정도로 음악사적으로 역사와 전통이 깊고 자부심이 강한 나라에서 아시아인 음악가를 지휘자로 선택할 정도면 엄청난 파격인데요. 이번 연주를 보면서 아르헨티나에서 내로라 하는 교향악단 단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한국인 지휘자의 지휘를 따르는 것을 보고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오래 전 일본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때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언제 저런 세계적인 지휘자를 가져보나 부러워했는데 실현되어 감개무량합니다. 인종차별이나 텃세와 같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박종휘 : 사실 그런 것은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예술가는 예술가를 알아봅니다’. 즉 예술인은 예술로 말을 한다는 뜻이죠.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제가 일하는 스타일이 전임 지휘자들과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인 특유의 ‘안되면 되게 하라’는 그런 정신이 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 번은 예정되었던 공연이 취소될 형편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다들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와중에 성사시킨 일이 있습니다. 또 해외의 유명 연주가들을 초청해 협연하고 협찬을 이끌어내는 등의 활동이 단원들에게는 적당히 자리만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교향악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 합창단원 마리아 알바레스 씨는 박종휘 선생님이 온 이후로 합창의 수준이 훨씬 높아졌다고 대만족입니다. 성악 전공자로 합창에 대한 이해가 높다, 지휘자의 열정적인 모습이 단원들의 사기와 의욕을 높이고 있다, 새로운 바람을 불어 일으키고 있다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습니다. 게다가 단원들에게 불고기, 김치 등 한국음식을 대접해서 인기도 많다고 합니다.


박종휘 :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같이 여러 사람과 어울려 해야 하는 일은 리더쉽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하게도 단원들이 저와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8월 구스타프 말러를 연습하던 때입니다. 연습실에 둔 악보가 안 보이는 겁니다. 왠일인가 했더니 연주자들이 집에서 연습하겠다고 악보를 가져간 거죠. 집에서는 대부분 쉬겠다고 연습실에서나 주로 연주하던 연주자들이 그렇게 달라진 겁니다. 지휘자의 열정이 전염됐다고 자기들끼리 말하더군요.

기자 : 꼬르도바 주립 교향악단이 아르헨티나 3대 교향악단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오늘 보니 규모가 상당하였습니다.


박종휘 : 네. 코르도바 시 자체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 이어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1651년에 탄생, 교육과 음악, 문화가 가장 발전된 곳으로 꼽힙니다. 주립 교향악단은 지난해가 창립 90주년으로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규모도 큰 편입니다. 현재 총 95명의 연주자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꼬르도바에는 리베르따도르 산마르띤 극장이 있는데 132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태리식 극장을 그대로 본따 만들어서 음향이 아주 좋고 또 건물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기자 : 앞으로 연주 계획은 어떠합니까?


박종휘 : 내년 2월에 이곳 코르도바에서 꼬르도바 주립교향악단과 함께 국제 지휘 콩쿨을 계획하고 있으며 미국 순회공연도 할 예정입니다. 매년 두 편의 오페라 공연과 두 편의 발레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이 연주 스케줄로 잡혀 있습니다.

기자 :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이 있습니까?


박종휘 : 예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합니다. 저는 평생을 음악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남 모르는 좌절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의 음악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배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음악을 했기에 삶에 고통도 있었으나 기쁨은 더 컸습니다. 중남미 청소년들이 이른 나이에 마약, 폭력 등의 유혹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것을 봅니다. '지구의 소리' 음악재단을 통해 파라과이 전 지역을 다니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음악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보았는데 아주 순박하더군요. 저는 중남미 젊은이들이 굳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음악을 통해 삶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청소년들에겐 음악이 주는 비전, 성취감 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 함양, 질서의식, 협동, 양보심, 교감, 사회 정서의 공유, 책임감 등 음악이 주는 가치는 상당하다고 봅니다.

기자 : 중남미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셨는데요. 개인적인 소회나 바람이 있으신지요?


박종휘: 한국에서는 클래식 전공자들이 설 자리가 매우 좁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려서 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해외유학까지 다녀와서 박사학위를 딴다 해도 경쟁이 워낙 치열합니다. 한국에서만 국한하지 말고 가능하면 해외에서 한국을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이런 상황 속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 중남미였고 이곳이 제게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선구자요 개척자로서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여러 나라에서 러브콜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2024년에는 매우 바빠질 것 같습니다.

기자 : 대한민국으로서는 엄청난 민간외교라고 생각합니다. 후원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앞으로 하시는 일이 계속 확장되길 바라고요. 현재 추진 중인 K-Classic의 성장과 선생님의 건승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박종휘 프로필---
꼬르도바 주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Los Angeles Sinfonietta 수석 객원지휘자.
라틴 아메리칸 심포니 총 감독.
K-classic 예술 총감독.
미국 WMU 국제 지휘 콩쿨 심사위원,
세계 지휘자 협회 사무총장


https://youtu.be/KQAJDKJ8eto






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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