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그린 <풀>의 김금숙 작가와 스페인 독자들의 만남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6.27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일생을 그린 만화 장편만화 <풀>의 김금숙 작가가 스페인 현지 독자들과 만났다. 스페인어 출판을 맡은 스페인 출판사 Reservoir Books(Alfaguara Group)와 한국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스페인 독자와의 만남은 <풀>의 스페인어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2022년 2월 스페인어로 출간된 <풀>은 4쇄에 들어갈 만큼 스페인에서도 높은 인기를 증명했다.


지난 22일 마드리드 ‘까사 아시아(Casa Asia)’에서 스페인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파트리시아 시몬 까라스코(PatriciaSimón Carrasco)와 함께 대담을 진행했다. 작가는 국제관계와 인권, 젠더에 관심을 두고 있다.


<까사 아시아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담 - 출처: 통신원 촬영>

<까사 아시아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담 - 출처: 통신원 촬영>


A: 이미 한국에서 위안부에 대한 영화와 책이 많다. 왜 그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작품을 썼나? / 파트리시아(A), 작가(B)
B: 한국과 일본의 예민한 국제관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난과 불평등, 여성과 가부장적인 사회를 겪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이들은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진 일제 강점기 시대에 밥 한끼 배불리 먹고자 남의 집 식모살이를 가야 했던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이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 일상에 돌아온 사람들이지만, 처녀성을 신성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여성들이다.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A: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폭력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2~3페이지에 걸친 검은 색으로 표현했다. 이 덕분에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공포를 자극적이지 않게, 그러면서도 독자들이 충분히 그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수 있도록 제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묘사한 이유가 있는가?
B: 작품을 쓰기 전, 피해자들이 내 작품을 읽고 아픈 기억이 재생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그녀들이 겪었던 폭력적인 상황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우리는 너무 많은 폭력적인 영상과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 피해자들에게 2차 폭력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폭력 장면은 이미지화 하지 않겠다 결심했다.

A:  가해자들의 얼굴을 묘사하지 않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B: 기록을 보면 전쟁에 동원되었던 일본인들은 대부분 농촌이나 가난한 집안의 20대 젊은 청년들이었다. 그 젊은 군사들에게 일본군 지휘부는 그녀들에게 가는 것을 화장실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세뇌시켰다고 한다. 그들이 특별히 악한 존재여서 발생한 일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반인륜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이고, 누구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러시아 군인들의 성폭력 가해 역시 같은 맥락이다.

A: 이 여성들이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땐 가족에게조차 환영 받지 못했다.
B: 그 시대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가부장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사회는 순결은 잃은 여성에게, 게다가 적군에게 몸이 ‘더럽혀진’ 여성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못했다. 그 시선 속에도 자신의 언니와 누나를, 딸을 안아주지 못했던 가족들도 피해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그녀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작가는 <풀>이 한국 여성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여성들과 사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미 일본은 사과를 했고, 보상을 끝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스페인 독자의 질문도 있었지만, 그에 관한 작가의 대답을 자세히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책을 접한 독자들이라면 위안부 문제를 ‘반일’ 개념이 아닌, 한 피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보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나아가 그 삶을 통해 여성과 시대적 사건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4쇄를 마친 스페인어 '풀' 과 작가의 서명 - 출처: 통신원 촬영>

<최근 4쇄를 마친 스페인어 '풀' 과 작가의 서명 - 출처: 통신원 촬영>


스페인에서는 20세기 최고의 독재자 프랑코에 의해 15만 명이 넘는 정치범들이 비밀 수용소와 감옥에서 처형되거나 강제노역 중 사망한 슬픈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내전과 독재라는 어두운 기억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미래와 민주사회 건설에 전념하자는 ‘사면법(망각의 협약)’으로 인해 프랑코는 처벌받지 않았고, 삶을 충분히 산 뒤 사망했으며, 프랑코 정권에 충성했던 이들 대부분이 처벌 받지 않았다. 이렇듯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한 스페인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위안부 및 강제노역에 대한 배상 문제로 일본과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을 쉽게 이해 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풀>을 통해 식민지 조선,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이옥선, 한 여성의 삶을 따라 층층이 드리워진 폭력을 대면하면서 우리들의 투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Reservoir Books에서는 곧 작가의 작품 <Jun>(2019)과 <Waiting>(2021)을 출간할 예정이다.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정누리

성명 : 정누리[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페인/마드리드 통신원]
약력 : 현)마드리드 꼼쁠루텐세 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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