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봉준호 장르와 아민정음을 언급한 문광스님 미주순회 강연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8.26

창간 33주년을 맞은 미주현대불교의 초청으로, 미국을 찾은 문광스님은 8월 3일 산호세(San Jose)를 시작으로, 8월 6일에는 LA, 그리고 8월 14일에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한류의 근원은 무엇인가? 한류를 만드는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 한류를 주제로 열린 문광스님 초청 강연 - 출처: 통신원 촬영 >


< 한류를 주제로 열린 문광스님 초청 강연 - 출처: 통신원 촬영 >

< 한류를 주제로 열린 문광스님 초청 강연 - 출처: 통신원 촬영 >


8월 6일 오후 4시, LA 한국교육원 강당에서의 강연에는 지난 6월 UCLA를 은퇴한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l) 교수와 그의 한국인 아내인 크리스티나 버스웰(Christina Buswell)도 참석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젊은 날 순천 송광사에서 출가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UCLA에서 한국학연구소와 불교학연구소를 설립한 장본인이다. 지난 6월 은퇴와 함께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UCLA에서 한국불교학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석좌교수직을 신설하기 위해 370만 달러(약 47억원)의 기금을 약정했다. 대개 거액의 기부금을 낼 경우, 그 석좌교수직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지만, 버스웰 교수는 한국불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수행자이자 자신의 학문적 업적에 영감을 준 보조국사의 법명인 지눌을 석좌교수직으로 명명했다.

로버트 버스웰 부부는 단상에 올라 지눌 한국불교학 석좌교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한인 동포들의 기부를 독려했다. 버스웰 교수의 진심이 통했는지 행사 주최 측은 총 2만 8천 달러의 기부금을 UCLA 측에 8월 17일 전달했다.


< 한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통찰을 보여준 문광스님 - 출처: 통신원 촬영 >

< 한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통찰을 보여준 문광스님 - 출처: 통신원 촬영 >


단상에 오른 문광스님은 오늘의 주제에 대해 집중도 높은 강연을 펼쳤다. 10년 전, 한류가 전 세계 곳곳에서 존재감을 띄기 시작하던 시기에 스님은 한류야말로 한국이 전 세계를 지배할 전조 현상이라고 해석했다고 말씀하셨다.

'10여 년 전에 한류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곧 기세가 꺾일 것이다 등의 의견이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한류가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한류는 한국이 전 세계의 주도권을 잡고 정신 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를 전조 현상에 불과합니다.'

스님에 의하면 패권 국가의 시작은 문화라는 것이다. 우리들도 영어를 배울 때 팝송을 배우고 할리우드 영화를 봤던 것처럼, 그 나라의 노래를 듣고, 드라마를 보고, 음식을 먹고, 언어를 배우다가, 그 나라를 방문하고, 사상과 역사를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광스님은 한국인 자신도 잘 모르고 있는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박사학위를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한국 사상의 핵심에 한국 불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스님은 이날 강연에서 봉준호 영화의 단정성(丹田性), 한국 스포츠의 저력과 선(禪), BTS가 전 세계 음악시장을 사로잡은 현상을 모두 ‘마음’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했다.


스님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해 전 세계인들이 그 장르가 무엇인지를 궁금해했다고 말한다.

“영화 <기생충>은 코미디처럼 웃겼다가, 스릴러처럼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하고, 감동도 있어 도대체 어떤 장르인지를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전 세계에서는 이를 그냥 ‘봉준호 장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특수한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보편적 주제가 된 것입니다.”

스님은 이를 ‘봉준호 영화의 단전성(丹田性)’이라 부른다. ‘단전성’이란 모든 양상이 한국에 유입돼 이 땅 안에서 융합되어 나름대로 독특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봉준호 영화 속에서는 선인과 악인,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모호한데 이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무상과 무아를 의미한다. 영원히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란 것은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봉준호 영화는 20-30분마다 장르가 교차되며, 희로애락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것을 표현한다. 봉준호 장르가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는 것은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칠정이 변화하면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는 '희(喜)' 코미디가 있고, '노(怒)' 액션이 있으며, '애(哀)' 비극이 있고, '락(樂)' 즐거움의 드라마가 있으며, '애(愛)' 멜로가 있고, '오(惡)' 무서움의 요소가 있으며, '욕(慾)'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욕망을 내는 판타지가 있다. 이렇듯 칠정이 총망라되어, 통합적으로 한 편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데 우리들 인생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서구의 장르는 모든 현실을 하나의 양상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맨, 배드맨, 어벤저스 등의 히어로가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는 히어로가 없으며, 등장인물 각자가 불성을 가진 인간이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감정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데, 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는 면에서 한국 영화가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로부터 시작해 고려, 조선,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영원한 주제는 마음이었다. 돈오점수돈오돈수 논쟁, 사단칠정 논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마음을 해결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데, 이 마음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한국의 문화 예술이다.

스님은 한 프랑스 영화 평론가가 봉준호 감독에게 여러 감정을 어떻게 영화 한 편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는지를 물었을 때, 봉준호 감독이 이를 '삑싸리'라고 답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리고 그 영화 평론가는 '삑사리의 미학'이라는 표현과 함께, 촬영 현장에서 실수하면서 접하는 리얼한 인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 한국형 장르의 등장이라는 리뷰를 적었다.


<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이 잘하는 스포츠는 양궁과 골프인데 모두 마음의 게임이다. 전 세계 10위 선수 내에는 늘 한국의 여성 골퍼들이 4-5명 정도 있다. 이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한국적 전통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인이 잘하는 스포츠는 모두 선과 같은 것이다. 양궁도 마찬가지, 활을 잘 쏘려면 외부적인 조건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스님은 BTS와 그들의 음악, 그리고 팬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눌 보조국사의 핵심사상 가운데 하나는 '발심을 한 범부는 완벽한 부처와 같다.'인데, 바로 BTS가 그렇다는 것이다. BTS는 개인적으로 완벽한 기량과 카리스마를 가진 7명이 나온 게 아니라, 멤버 각자의 아름다운 마음이 드러남으로 여래가 출연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 누구도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가사가 있는데, 그 마음을 팬들이 알아줬다.

스님은 BTS의 팬들, 아미(ARMY)들 사이에 아미들의 훈민정음, '아민정음'이 있다고 전했다. BTS의 신곡이 발매되면 아미들이 한국어 가사를 로마자 발음으로 옮김으로써, 전 세계 팬들이 BTS의 노래를 한국어로 따라 부르게 돕는다는 것이다. 실제 가사가 공유된 BTS의 노래 동영상을 보면 한국어가 나오고 그 밑에 로마자로 적은 한국어 발음이 나오고, 그 아래에는 영어로 번역한 가사의 뜻이 나온다. 이에, 스님은 한국어에 대한 강력한 수요에 있어 BTS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말씀하셨다. 끝으로 스님은 '한류가 전 세계로 퍼져 근원이 밝혀지고 전 세계인들이 한국인의 정신 문명을 사랑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 크리스티나 버스웰, 로버트 버스웰, 문광스님, 덕일스님, 이원익 LA 행사 준비 위원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 크리스티나 버스웰, 로버트 버스웰, 문광스님, 덕일스님, 이원익 LA 행사 준비 위원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제 한류라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하던 터라 스님이 한류에 대해 강연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한국학을 전공했다는 스님의 약력을 알고 난 후, 강의가 학자들의 탁상공론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강연을 들으며 공감하고, 가슴이 열리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다. 그렇게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은 통신원만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오는 것을 보니 LA의 한인들 역시 스님의 한류에 대한 해석에 많은 부분 공감하는 것으로 보였다.

늘 마음을 살피고 공부했던 한민족의 문화가 전 세계에서 조명을 받고 있고,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피상적인 노래와 춤, 그리고 영화, 드라마가 아니라, 이런 예술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연스런 궁금증을 시작으로 한국을 연구한다면 우리들의 본성을 체계화해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한국학의 미래는 이런 점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품으며 강연장을 나왔다.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박지윤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4시엔 스텔라입니다.' 진행자 전)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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