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9월 새로운 학기 시작과 아주 특별한 바로네즈 한글학교 개강 풍경
구분
교육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2.09.27

러시아 9월은 '지식의 날'과 함께 시작된다. 3개월 긴 방학을 마치고 새로운 학기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일이다. 신입생들에게는 입학식, 새 학년을 맞는 학생들에게는 개학식이다. 9월부터 바로네즈시는 마스크 착용을 법적으로 전면 철회했으며, 바로네즈 모든 학교도 교실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를 해제했다. 2020년 3월부터 의무화되었던 마스크 착용이 자유로워지면서 버스나 상점 안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코로나19 이전처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마스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9월, 계속되는 시국과 맞물려 설렘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 9월 1일 바로네즈 공립학교 '지식의 날' 풍경

바로네즈 공립학교 '지식의 날'  행사


3년 만에 마스크 없이 '지식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보통 넓은 야외 운동장에 1학년 초등학교 신입생과 5학년 중학교 신입생,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9학년과 마지막 학년인 11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참석하는 것이 지식의 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올해 9월은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19와 도시 안에서 감지되는 테러 위험 등을 감안해 참석 인원을 제한했다. 1학년 신입생들과 11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 1학년과 11학년 담임 교사들과 축사를 위해 참석한 바로네즈시 교육 관계자만 참석한 가운데 2022년 9월 새로운 학기 첫날 행사가 시작되었다. 꽃다발을 든 1학년 신입생들은 1년 후면 졸업하는 11학년 선배들과 짝이 된다. 11학년들은 행사 내내 신입생들과 함께하며, 모든 행사가 끝난 후에는 1학년 신입생들의 손을 잡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며 그들의 학업 첫걸음을 함께 걷는다. 이것은 러시아 학교의 오랜 전통이다.

지식의 날 행사는 약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축사와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의 노래와 춤 외에 올해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바로 태권도 시범단의 축하 공연이다. 올해 여름에 러시아 각 도시에서 열린 태권도 대회에서 입상한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선보인 태권도 공연은 지식의 날 참석자들에게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태권도는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스포츠가 되었고 러시아에도 깊이 자리매김했다. 그날 태권도 공연은 이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특히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지식의 날 하이라이트는 '종치는 소녀'다. 11학년 남학생이 하얀 리본으로 머리를 장식한 1학년 신입생 여학생을 어깨에 올리고 행사장을 한 바퀴 돈다. 도는 동안 여학생은 계속 종을 울리고 참석자들은 큰 박수를 치며 학생들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쉼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학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 운동장을 넘어 온 도시로 울려 퍼졌다.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 [바로네즈 한글학교] 3년만의 대면 개강식, 2022 새로운 시작

3년만에 대면 개강식 ~~


[바로네즈 한글학교]는 2013년 개교 이후, 매년 매달 크고 작은 행사로 자주 만나고 소통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 명절, 역사 강의와 한국인을 직접 만나 대화하는 톡톡 한국어 등 다채로운 행사와 만남을 학생들은 한국어 수업보다 더 기다렸다. 코로나19가 전 러시아를 강타한 2020년 3월 이후 모든 것이 멈췄다. 한글학교 수업은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첫해에 몇 번 온라인 행사를 진행했으나 기대하던 즐거움과 만족감은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한글 학교 수업이 온라인을 통해서 쉼의 시간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만으로 기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3년 만에 대면으로 진행되는 개강 날을 더 정성스럽게 기다렸다.

개강식은 9월 18일 오후 2시 30분 시작인데 이미 1시 30분부터 학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온라인을 통해서만 만났거나 처음 만난 학생들은 서로 낯설었다. 소냐가 그 어색함을 깼다. 러시아에서도 큰 인기를 끈 '오징어 게임'의 열렬한 팬인 소냐는 지난 9월 13일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2021년 방영 이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받은 피드백에 의하면 오징어 게임은 '너무 좋아요'와 '너무 싫어요'로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한국 드라마다. 소냐의 오징어 게임 발언 후 '너무 좋아요' 팀은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오징어 게임 수상을 축하하는 그림을 그렸다.


♣ 시험은 생략, 서로 진솔하게 대화하며 3년의 공백을 채운 시간

▲ 바로네즈 한글학교를 처음 방문한 새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1년 [러시아한글학교협의회]가 주최한 제1회 말하기 대회에서 성인부 1등을 차지한 마리야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있다. 소냐와 마린나가 22년 앙케트를 작성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활성화된 온라인을 통해 구입한 한국 과자 짱구와 모스크바 문화원에서 가져온 한국 관련 잡지들은 참석한 학생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 바로네즈 한글학교를 처음 방문한 새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1년 [러시아한글학교협의회]가 주최한 제1회 말하기 대회에서 성인부 1등을 차지한 마리야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있다. 소냐와 마린나가 22년 앙케트를 작성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활성화된 온라인을 통해 구입한 한국 과자 짱구와 모스크바 문화원에서 가져온 한국 관련 잡지들은 참석한 학생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한국 식당과 가게가 전무한 바로네즈에서 한국 과자를 구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고추장이나 참기름 같은 식품도 530km 모스크바까지 가야 구입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직접 소통이 단절되면서 오히려 다양한 사이트에서 온라인 주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3년 만의 대면 행사에 학생들에게 작아도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짱구'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네즈에서 추억의 과자 짱구를 구입할 수 있다니. 2022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축하 선물은 짱구가 되었고 처음 보는 신선한 한국 과자로 학생들은 크게 기뻐했다.

[바로네즈 한글학교] 개강식 전형적인 순서는 보통 다음과 같았다. 새 학생들에게 학교 소개하기, 반 별 쓰기, 말하기 시험 치르기, 새 학기 반 편성과 수업 시간 결정하기, 교사들과 학생들 인사하기, 교재 선정하기 등. 그러나 3년 만에 만난 대면 개강식에서는 일부 절차를 생략하거나 간단히 진행하고 그 시간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채웠다. 개교 이후 처음으로 개강식에서 각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 학생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올해 개강식에는 주로 새로운 학생들과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한국어 공부를 멈춘 학생들 위주로 모였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참석자가 이름과 나이 등 가장 기본적인 개인 정보만 한국어로 구사할 수 있었다.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해 러시아어로 소통했다.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 한국어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국어를 공부하는 현재 목적과 다짐 그리고 미래 계획 등에 대해 형식 없이 자연스럽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다른 인생의 이야기와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공통된 한 가지는 한국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모두 그렇게 한국이 좋다고 한다. 한국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지만, 소리를 듣기만 해도 설렘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는 학생의 고백은 큰 감동이 되었다.


♣ 22년 특별한 개강식 풍경: 고려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학생들이 함께할 22년 새로운 시작

▲ 2022년 9월 18일 대면으로 진행된 개강식에 참석한 학생들. 대부분이 새로운 학생들과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어 공부를 잠시 멈춘 학생들이다. 개강식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바로네즈 한글학교 [태권도반]에서 공부했던 김 이리나 사범님과 [케이팝반]의 리더였던 니야가 오랜만에 방문했다. 서로 형식 없이 자신들의 삶을 진솔하게 나누는 특별한 개강식이 되었다. 올해도 계속 온라인으로 수업할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 2022년 9월 18일 대면으로 진행된 개강식에 참석한 학생들. 대부분이 새로운 학생들과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어 공부를 잠시 멈춘 학생들이다. 개강식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바로네즈 한글학교 [태권도반]에서 공부했던 김 이리나 사범님과 [케이팝반]의 리더였던 니야가 오랜만에 방문했다. 서로 형식 없이 자신들의 삶을 진솔하게 나누는 특별한 개강식이 되었다. 올해도 계속 온라인으로 수업할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올해 개강식에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바로네즈로 온 김 알리나도 참석했다. BTS 사랑이 한국 사랑이 되어 12살 때부터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생존을 위해 살던 고향을 떠나 친척이 있는 바로네즈로 왔을 때 절망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알리나 엄마는 혹시 바로네즈에 있을지도 모를 한국어 선생님을 찾기 시작했고, 고려인 지인을 통해 바로네즈 한글학교를 알게 되었다. 지난 4월 초 낯선 전화가 매일 오길래 받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에 통화를 했는데 수십 번 전화를 건 사람은 김 알리나의 엄마 김 안젤리나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알리나와 사샤 외에도 한국으로 이주를 준비 중인 고려인 자매도 참석했다. 박 따찌아나는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온라인을 통해 한국어를 공부했다. 학습 능력도 뛰어나고 공부에 열정도 있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 덕분에 두 번 한국에도 다녀왔다. 바로네즈 한글학교 보조 교사를 거쳐 교사로 임명할 계획을 나눴고 지난 학기에 동의 한 상태였다. 그런데 여름 방학 동안 상황이 달라졌다.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으로 여동생과 함께 한국으로 가기로 하고 대사관에 서류를 접수한 상태였다. 이곳 장기간 계속되는 안타까운 현실로 고려인을 비롯한 많은 젊은이가 해외로 떠나고 있다. 아쉽지만 이들을 막을 길은 없다. 한국에 갈 수 있는 서류가 완전히 준비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한국어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보통 러시아 바로네즈 9월 중순은 바비예 레따(Бабье Лето), 영어로 인디언 썸머와 같은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기간이다. 주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전 일정 기간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것을 말한다. 9월 18일 개강식 당일, 바로네즈가 그랬다. 9월 초부터 다른 해보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고 심지어 영상 5도의 날씨가 이어지기도 했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진행된 개강식 날은 일주일 내내 내리던 비가 걷히고 오랜만에 하늘이 맑고 화창했다. 바비예 레따는 절망 가운데 뜻밖의 희망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도 쓰인다.

새로운 학기를 축제의 날로 시작하는 러시아, 그러나 지금 러시아는 이 시작을 마냥 기쁨으로만 맞을 수 없는 삶의 현실 속에 있다. 3년 만에 대면으로 만난 개강식도 코로나19 이전의 생동감과 기대감보다 낯설고 어색함이 더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는 우리 학생들에게 바비예 레따 같은 뜻밖의 따뜻함과 희망을 주었다. 개강식에 참석한 고려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언어, 우크라이나 학생들에게는 힘든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희망의 언어, 러시아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정을 쏟아붓고 싶은 언어다. 바로네즈에서 유일하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이 도시의 작은 한국 [바로네즈 한글학교]가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했다. 그 어느 해보다 깊고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을 개강식을 보냈다. 2022년 9월 18일 아주 특별했던 바로네즈 한글학교 개강 풍경은 희망을 의미한다는 러시아 9월의 바비예 레따를 닮았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지금보다 더 창대할 시간을 기대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을 힘차게 울린다.





서지연
 러시아 서지연
 바로네즈한글학교 교장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상담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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