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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고려인' 2부_갈밭의기적
작성일
2018.04.24

YTN 고려인 2부_갈밭의기적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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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특별기획] 고려인 3부작 – 2부 갈밭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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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하늘 위의 산으로 불리는 천산 산맥, 

해발 3000m를 넘는 침블락 고원 지대까지 오르면 한여름에도 만년설을 볼 수 있다.

봄부터 녹아내린 만년설은 바위에 꽃을 피우고 계곡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인터뷰: 두르갈리 / 알마티 시민] 
이 산은 알마티 시민의 모든 것이죠. 이런 산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만년설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모여 산 아래 강을 이루고 메마른 초원을 적신다.

[인터뷰: 김상욱 / 전 카자흐스탄 국립대 교수] 
고려인들이 손으로 파서 만든 수로를 따라서 논으로 흘러가죠

80년 전, 연해주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고려인은 절망하지 않고 황무지에서 다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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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갈밭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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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차로 5시간 거리. 마을 입구에 벼 이삭 상징이 보인다. 

1937년 10월 고려인이 강제이주 열차에서 첫 발을 내 딛은 우슈토베 마을이 있는 곳이다. 

평생을 이 마을에 산 92살 천억실 씨 집을 찾았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뜬 뒤 매일 딸이 아침을 챙긴다. 천 씨는 찬물에 만 쌀밥과 김치를 즐긴다.

"밥이 먹고 싶을 때 내가 딸에게 말합니다. 밥을 좀 들여라. 이렇게 말아서 먹습니다."

‘밥이 물이’(паби мури). 이주 초기 먹을 것이 부족해 밥을 물에 말아먹는 고려인 식사법을 이렇게 부른다.

당근으로 만든 김치(Морковь-ча)와 채라고 불리는 오이무침(Ве-ча)이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주로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과일이나 채소를 좋아하고 고기는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이렇게 건강하신 가봐요.)
"자식들이 나를 잘 생각해 이렇게 해주니까 내가 이때까지 삽니다."

80년 전 고려인이 밥 한그릇을 얻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했다. 

천 씨와 함께 당시 마을 입구에 처음 만든 논을 찾았다.

부모님들은 갈대밭에 맨손으로 수로를 냈다. 땅의 소금기를 제거한 뒤에야 겨우내 아껴뒀던 볍씨를 뿌릴 수 있었다.

"저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논이었습니다. 저쪽에도 돌아가면 싹 논이었습니다."

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여의도 면적 두 배의 넓은 들판에 네모 반듯한 논이 펼쳐져 있다. 그 사이를 동맥처럼 뻗은 수로가 논에 생명 같은 물을 전달한다.

고려인은 벼농사 재배 지도도 바꿔놓았다. 
한반도에서 연해주로, 다시 중앙아시아 이곳까지 벼농사 북방 한계선을 2도나 더 끌어 올렸다.

고려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중앙아시아 농업혁명이었다.

[인터뷰: 이 블라디미르 /  카라탈군 고려인협회장]
"카라탈주 여기 논이 벼농사 세계 최북단 지점이에요. 지금 서 있는 땅은 아무것도 없었던 땅이었죠. 식물이 아예 없었죠."

푸른 경작지와 누런 황무지의 경계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 황금 물결이 일던 들판을 보면 살기 위해 밤낮으로 일 만하던 부모님 모습이 아른거린다.

"(농사일 끝나고) 저녁에 모여서 놀다가 이 노래도 부르고…"

"이 넓은 논판에 씨 뿌려 풍작의 가을이 돌아오면  
누렇게 누렇게 벼이삭 우거 우거져 파도치리 
에헤헤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 먹고 와싹 와싹 자라게"

[선봉 콜호즈(집단농장) 기록 영화(1946년 제작)]

[기록영화 당시 해설]
"관목이 자라던 땅에 선봉 고려인 집단농장의 벼 이삭이 피어나 물결쳤다.
지금도 '발방아' 같은 전통 도구들을 볼 수 있다."

1940년대 구소련에서 제작한 선봉 집단농장 소개 영상에는 이주 초기 벼농사 재배 과정이 잘 담겨있다. 지도자 김만삼은 세계 최고의 벼농사 전문가로 노동 영웅 훈장을 받았다. 

김만삼의 지도로 집단농장에서 21개의 볍씨 종자가 개발되고 있다.

과학적인 종자 연구를 바탕으로 1942년  1헥타르당 수확량 15톤의 세계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 벼농사와 비교해도 2배가 넘는 기록적인 수확량이다.

"3년 차에는 수확량이 크게 늘었는데 당시 세계기록이었다."

[김병화 박물관]  

카자흐스탄에 김만삼이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에는 김병화가 있었다. 소련 최고 모범 농장으로 평가받던 김병화 농장, 그곳엔 현재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인터뷰: 장에밀리아(77) / 김병화 박물관장] 
"이중 사회주의 노력 영웅. 이중이란 건 2번 영웅이 됐다는 말이죠."

[“이 땅에서 나는 새로운 조국을 찾았다” ]
'새로운 조국을 찾았다'는 문구가 나라 잃은 고려인의 설움을 대신 전해준다. 고려인은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인터뷰: 장에밀리아(77) / 김병화 박물관장]
"그 수로는 고려인 핏물 수로라고 해요. 피 같은 물. 힘이 많이 들고 수로 만들면서 사람들이 많이 돌아가셨어"

하루 15시간 노동으로 갈대밭을 옥토로 바꿔갔다. 트랙터와 비행기를 동원할 정도로 수확량이 크게 늘면서 갈대집 대신 벽돌집을 지었다. 

고려인은 1960년대까지 구소련에서 200명이 넘는 노동영웅을 배출했다. 소수 민족 구성원 비율로 볼 때 단연 으뜸이었다.

[인터뷰: 송 라브렌티 / 고려인 영화 감독]
"여기는 남의 땅이니까 정치적인 문제는 관심을 두지 않았지. 고려인은 일만 하고 그러잖아.
그래서 다른 민족들에게 존경을 받게 됐지"

벼농사와 함께 고려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자녀 교육이었다. 

500여 명의 고려인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러시아어와 모국어인 한국어로 교육을 받고 있다. 

[인터뷰: 김병학 / 전 우슈토베 한글학교 교사] 
"유대인들은 자기들 회당을 먼저 짓고 고려인들은 이주해가면 먼저 학교를 짓는다 그런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고려인들은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슈토베에 세운 고려인 학교도 강제 이주 바로 다음 해인 1938년에 세워졌다. 이곳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김 아나톨리 작가와 카자흐스탄 헌법을 기초한 김유리 등 고려인 지식인들이 배출됐다. 

[인터뷰: 김 예브게니아 / 코사카르예바 학교 한글 교사]
"(김 아나톨리가) 이 학교에서 처음 글씨를 배웠어요. 읽기, 쓰기를 이 학교에서 배웠어요"

스탈린 사망 뒤 농촌에서 벗어나 도시로 진출한 고려인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 피겨 영웅 데니스 텐에겐 늘 최초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올림픽은 물론 각종 대회에서 태어난 조국에 메달을 안겨주었다. 그가 시상대에 설 때마다 고려인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신사숙녀 여러분. 1등이자 금메달리스트,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데니스 텐입니다!"

데니스 텐은 구한말 정미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민긍호 선생의 5대 후손으로 유명하다. 이런 인연으로 김연아와 손을 잡은 데니스 텐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데니스 텐 /카자흐스탄 피겨 국가대표, 2014 소치올림픽 동메달]
"고조할아버지의 묘소는 3번 방문했고, 기념탑이 있는 광주에도 한 번 찾아갔죠. 믿을 수 없었어요. 매 방문이 처음인 것처럼 감명받았죠. 그리고 감사했어요."

할아버지 땅에서 열리는 이번 평창 올림픽에 누구보다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다.

[데니스 텐 / 카자흐스탄 피겨 국가대표, 2014 소치올림픽 동메달]
"평창 올림픽이 저의 고향이자 모국인 한국에서 열린다는 생각에 어서 그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져요."

데니스 텐 이전부터 구소련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고려인 체육인이 많았다. 아흔을 바라보는 황마이 씨는 1950년대 공훈 체육인 훈장을 받은 유명 지도자 출신이다. 20년간 빙상 뿐 아니라 스포츠 아카데미 지도자로 200명 넘는 우승자를 길러냈다. 

[황 마이(87) / 독립운동가 황운정 선생 아들]
"데니스텐이 우리 제자의 제자예요. 제가 피겨학과를 설립했고 우리 제자가 데니스를 발굴했죠. (구소련 올림픽 체조 영웅) 넬리 김도 제가 선발했죠."

황마이 씨 아버지는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황운정 선생이다. 일본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었고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하며 자식을 먹여 살렸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남보다 배이상 노력해야 했다.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피땀 흘려 일하는지 보며 공부를 대충할 수 없었어요.

소련 붕괴 뒤 고려인은 시장 경제에 빠르게 적응하며 새로운 사업에도 많이 진출했다. 특히 카자흐스탄에선 전체 인구의 0.5%에 불과한 고려인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2017년 카자흐스탄 포브스지에서 발표한 부자 50위권에 천연자원과 유통을 중심으로 고려인 기업인 7명이 포함됐다.

[전 승 민 / 주 카자흐스탄 알마티 총영사] 
"굉장히 부지런하고 유능하고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민족이다. 이렇게 카자흐스탄 국민은 고려인 동포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초원이 끝없이 이어지고, 8개의 호수가 그림같이 펼쳐지는 곳, 중앙아시아 최대의 친환경 리조트 보심 오제르다.

[알렉산드르 / 남자 사파리 안내원]
"예전에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죠.  카자흐스탄에는 이런 리조트가 처음이었죠."

10년 전 개발을 시작한 리조트는 여의도 면적의 4배가 넘는 방대한 규모다. 대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내부는  전기차로 이동해야 한다.

[트리멘코 라리사 / 리조트 안내 직원] 
"여러 나라에서 와요. 유럽, 미국, 중국, 한국 등 정말 많이 오세요"

리조트가 생기기 전까지 이곳은 황무지 뿐이었다. 

발상의 전환에 나섰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고려인  사업가 김 겐나지 회장. 

갈대밭을 옥토로 바꾼 부모님처럼 최고의 휴양지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김 겐나지(74) / 보심 오제르 회장] 
"다행히 어렸을 때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저는 우슈토베에서 5학년까지 한국말을 배울 수 있었어요"

[김 겐나지/ 보심 오제르 회장] 
"모두가 노력한 덕분입니다. 고려인들 뿐만 아니라 다 같이 노력을 바쳐서 성장해왔죠" 

김 회장은 한민족 전통을 지켜온 고려극장의 숨은 후원자이기도 하다.

[김 겐나지(71) / 전 고려극장장]
"그때 우리 고려인들 도와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 중에 회장님이 제일 많이 도와줬어요"

[김 겐나지(74) / 보심 오제르 회장] 
"쉽지는 않았지만 노력 끝에 대초원을 리조트로 변화시킬 수 있었죠. 한국 기업들도 환영합니다!"

의료계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알마티 시내에 있는 민간 종합병원, 대기 시간이 짧고 친절한 병원으로 환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스티노바 올가 / 병원 환자] 
"실력이 뛰어난 전문 의료진이 있고 병원에 들어서면 많은 배려가 느껴져요."

고려인 의료진이 이끄는 이 병원은 최근 한국식 입원실을 갖춘 출산 전문 병원도 갖췄다. 

[김 아나스타샤/도스타르메드 소아과장]
"아이를 낳고 나서 뭘 해야 하는지를 다 주죠. 저는 고려사람입니다."

지난 1999년 유가이 알렉세이 원장은 카자흐스탄에서 처음으로 개인 병원을 시작했다. 현재 부인과 함께 현재 10개의 종합병원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다.

[유가이 알렉세이(58) / 도스타르메드 병원장] 
"구소련 시대 때 개인병원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처음 시작했죠."

그는 소수 민족인 고려인의 저력이 교육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유가이 알렉세이(58) / 도스타르메드 병원장]
"그 힘든 시간에 부모님들의  우선적 목표는  교육이었죠. 저희도  똑같이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식은  최고니까요"

고려인이 다른 민족에게 인정받는 것은 경제력 뿐만이 아니다.

[고려극장]
고려극장 1970년대 공연 영상
"아이고 마당쇠야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냐"

85년 전통의 고려극장은 고려인 이주 역사 그 자체다. 

연해주에서 시작된 최초의 해외 극단이자 가장 오래된 한민족 공연단체로 한국어 공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고된 노동에 지친 고려인의 애환을 달래고 고향과 하나로 묶어줬다.

♬ 남산골 다방골 "한 많은 다방 골에~"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한민족 문화 유산으로 고려극장의 가치가 다양하게 재조명되고 있다.

[방 타마라(75) / 영화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 주인공 ]
"고려인들이 사는 중앙아시아는 대부분 돌아 다녔죠. 고려인들이 여기저기 살잖아요, 연해주에, 서부에, 북부에...고려인은 흩어져 있어도 가족 같아요."

[한야곱 / 고려극장 전 음악감독] 
"극장은 한민족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극장은 우리의 현재죠. 문화, 음악, 노래, 문학 모든 것을 극장을 통해 전달했어요 문화가 없으면 민족도 존재할 수 없죠."

창간 95주년(2018)을 앞둔 고려일보 역시 한민족 정체성을 지키는데 버팀목이 됐다.

연해주 ‘선봉’으로 시작해 레닌기치와 고려일보로 이름을 바꿨지만 쉬지 않고 발행을 이어갔다. 

[인터뷰: 김 콘스탄틴 (40) / 고려일보 주필]
"(강제이주 열차 탈 때) 편집팀 직원들은 옷과 음식 대신 활자를 챙겨왔어요. 덕분에 크질오르다에서도 1938년부터 신문사 운영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갈수록 한글 사용 인구가 줄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경자 (75) / 고려일보 한글판 주필]
"혼자서 제가 네면 다 담당하니까요. 교정, 편집, 인터뷰 제가 혼자서 다 합니다. 타이핑 하는 것도 70살에 제가 배웠습니다."

고려일보는 고려인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검열 속에서도 문예 면에 실었던 작품을 모아  ‘조선시집’과 ‘시월의 햇빛’ 등 문예집을 만들었다. 뿌리를 잊지 않았던 고려인 문학 역시 아직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명재 / 중앙대 명예 교수]
"고려인에게 문학이라는 것은 자기 뼈나 모국에 대한 정체성의 끈이다. 혼의 끈이다."

음식에도 고려인의 애환이 담겨있다. 광복절 공연을 마친 고려인 합창단의 뒤풀이 자리. 마당에서 옛날 방식으로 국시 면발을 뽑느라 떠들썩하다. (국시 Кукси) 

잔치국수를 닮았지만 토마토를 넣고 차갑고 달게 먹는다. 이렇게 만든 국시 한그릇에도 아픈 이주사가 담겨있다. 

[세가이 게르만 / 카자흐스탄 장교클럽 회장]
"저희 부모님들이 (연해주에서) 여기 올때 국수 분틀을  가지고 왔어요. 어르신 분들은  국시 분틀을  써서 국시 (고려인  국수)를  하기 시작했어요. 국시는 명절 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요리였죠."

분위기가 무르익자 노래 가락이 흘러나온다.

한국 유행가로 시작한 노래는 러시아를 돌아 아리랑으로 마무리된다.

강제이주 시련을 딛고 일어선 고려인의 아리랑은 중앙아시아에 계속 울려퍼지고 있다.

[유가이 알렉세이(58) / 도스타르메드 병원장] 
"돈벌이보다 교육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어요."

[황마이(87) / 독립운동가 황운정 선생 아들]
"고려인들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아요."

[이 블라디미르 /  카라탈군 고려인협회장]
"고려인은 근면 성실이죠. 덕분에 이런 논밭을 만들었어요"

[인터뷰: 김미하일/ 우즈베키스탄 텐겐 사장]
"고려인은 도전정신이 뛰어납니다"

[인터뷰: 데니스 텐 / 2014 소치올림픽 동메달] 
"꿈을 향해 전진하는 능력이 있죠"

[인터뷰: 한야곱 / 전 고려극장 지휘자]
"평생 울면서 살 수 없잖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는 민족이죠."

[엔딩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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