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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시] 가족상봉
작성일
2021.01.20

[가작 - 시 부문]


가족상봉


박시드니 / 덴마크



숨을 쉴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물이 너무 무서웠다.
어른이 되어 첫 직장에서 월급을 받았을 때쯤
퇴근 후 취미 활동이란 걸 찾아봤다.
푸하 푸하 숨 내쉬기와 팔다리 동작을 배우며
자유형 배형 평형 접영을 배웠다.
그중 내 몸은 겨우 자유형만을 고집했다.

검푸른 남태평양의 바다는 광활한 우주가 되어 나를 단번에 삼켰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숨이 막혔다.
우주복 없이 맨몸으로 은하계를 떠도는 듯 거대한 공포가 나의 심장을 한없이 짓눌렀다.
죽어도 좋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를 악물었다.
소원하던 바를 이루고 죽는다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행복하게 죽을 수 있다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3천 미터의 심해가 아니라
동네 2미터 깊이 수영장에 들어와 있는 거라 설득을 시작했다.
집채만 한 혹등고래가 으르렁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심해에서 그 노랫소리는 만 배로 증폭되어 내 심장을 울렸다.
그 애절한 소리가 몸속으로 녹아 퍼져 눈물이 되었다.

천사의 하얀 날개처럼 긴 지느러미를 휘날리며
아기 고래가 서있는 자세로 물 위로 날아 올라가 얼굴을 빼꼼하게 내밀어 숨을 들이쉰다.
호기심 가득한 아기 고래는 잦은 호흡을 위해 5분마다 물 위로 올라가야 한다.
때문에 고래잡이배들은 우선 잡기 쉬운 아기 고래를 잡아 배편에 묶어 미끼로 사용했다.
아기를 구하려고 목숨 걸고 따라오는 어미 고래를 잡기 위해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생명들이 무참히 살해되었던 시절이다.
호롱불을 밝히는 기름을 짜내기 위해서
대형 고래들이 거의 멸종을 했었다.
피바다 속으로 거품이 되어 사라졌었다.
하지만 식용을 위해서 아직도 고래 사냥을 하는 파렴치한 나라들이 있다.

다행하게도 이젠 고래잡이배를 고래 관광선이 대신하고
드문 곳에선 고래와 수영도 가능하다.
나는 어미 고래가 되어 사랑을 머금은 눈동자로 아기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팔을 길게 뻗어 손을 내밀면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아기 고래가 다가왔다 멀어졌다 숨바꼭질을 한다.
여전히 나는 깊은 바다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바다는 아직도 나를 잊지 못하고 어서 들어오라 손짓한다.
바닷속으로 뛰어들고픈 충동을 참은 지 오래였다.
죽어도 좋다는 배짱 두둑이 삼켜 먹고
드디어 백만 년 동안 그리움에 애태우던 가족의 상봉 시간이다.
지금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오래전 나는 고래였고
영겁의 시간 동안 꿈에 그리던 나의 고래 가족을 만나고 있다.
우주같이 드넓고 검푸른 남태평양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