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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단편소설] 달리는 마카우
작성일
2021.02.01

[우수상 - 단편소설 부문]


달리는 마카우


황 소 라 / 케냐



마카우(Makau Mutua)가 26살이 되던 해에 그에게 운전면허를 딸 기회가 찾아왔다. 외할머니와 함께 마차코스(Machakos) 변두리에서 20년넘게 살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나이로비에 살고 있다던 한번도 본 적 없던 삼촌이 찾아온 것이다. 키오코 삼촌은 어느 회사에서운전을 한다고 했는데 제법 깔끔한 입성을 하고 있었고 집에 며칠 머물면서 외할머니의 얇고 해져서 바닥이 다 느껴지던 폼 매트를 사방이 잘마감된 두툼한 스프링 매트리스로 바꾸어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운전을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권한 것이다. “마차코스 시내에 있는 운전 학원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 운전면허가 있으면 어디서든 취직해서돈을 벌 수 있으니까. 나중에 나이로비로 올라와도 되고.” 그 길로 마카우는 운전 학원을 등록하고 삼촌은 그곳의 아는 사람이라는 여자와 몇마디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나이로비로 돌아갔다.

운전이라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도대체 클러치라는 것은 무엇이며 손과발이 어떻게 필요에 맞춰 따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않았지만, 어쨌든 열심히 배웠다. 첫 수업부터 다짜고짜 나간 도로에서는 몇 번이고 시동을 꺼트렸는데, 트럭과 버스 사이에 끼여 또 한 번 시동을 꺼트리자 참다못한 운전 선생님은 자신이 차를 몰고 학원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한 달 가량 수업이 끝나고 면허 시험 날이 되었다. 놀랍게도그는 몇 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 만에 면허를 딸 수 있었다.만사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그는 시험 시작 전 담당 시험관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했고, 잘 부탁한다고 악수까지 청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험관은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걱정 말라고 말을 건네며 다른 손으로 툭툭마카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는데 악수를 마치고 내리는 시험관의 손에는 곱게 접힌 천 실링짜리 지폐가 들려 있었다.

문제는 면허증을 따고 난 뒤였다. 학원을 다닐 때와는 달리 어디서 차를 몰아볼 기회조차 없었고, 주변에서 초짜 운전사를 구하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기껏 들인 돈과 시간이-물론 돈은 삼촌이 냈지만-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운전 그 자체에 대한것이었다. 안 그래도 간당간당하게 시험을 통과했는데, 그나마 몰아보던자동차를 구경조차 못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지나면 일자리를 준대도과연 차를 몰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심이 들었다.

마카우는 고민하던 끝에 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자신의 고민이 이러이러하니 도와줄 사람은 삼촌밖에 없다, 삼촌이 따라고 했으니 내 일자리도 구해 달라 등등 구구절절 읊는 그의 말을 키오코 삼촌은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듣더니 “일단 나이로비로 와라.” 짧게 대답하고는 전화를끊었다. 한바탕 잔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그는 뜻밖의 상쾌한 답변에바로 짐을 싸서 나이로비로 향했다.

키오코(Kioko) 삼촌은 마카우의 엄마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 되지않았다고 했다. 아니 가족 중 그 누구와도 그다지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적이 없었다. 캄바(Kamba)족이 모여 살던 키투이(Kitui)의 한 시골동네에서 외할머니의 첫째 아이로 태어난 그는 말수가 적고 과묵한 소년이었다.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외할머니는 마차코스의 같은 캄바족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키오코 삼촌은 아버지가 다르게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들과 같이 그의 외가 고향 집에 남겨졌다. 그 뒤에 그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외할머니와 그녀의 정식 ‘남편’ 사이에서 마카우의 엄마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키오코 삼촌은 키투이에서수확이나 배달 일을 좀 돕다가 어느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의 외할머니 역시 키오코 삼촌에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딸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은 나이로비로 일자리를 찾아떠나갔다. 물론 모든 가족은 집에 남겨둔 채 말이다. 그것 역시 흔한 일이었다. 지방 소도시인 마차코스에서는 일자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고,많은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나이로비로 떠나갔다.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노인들과 몇몇의 젊은이를 제외하고는 어린아이와 그들을 키우는 여인들이 끊임없는 기다림 속에서 삶을 이고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 흘러온 새삼스러울 것 없는 삶의 풍경이었다. 외할머니는 삶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고 고된 노동과 부족한 금전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는 나름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로비로 떠난 남자는-아마도 그들의 정착 역시 쉽지 않았을 터이므로-고향을 생각하며 돈을 보내오거나 연락을 하는 일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어린 아기를 들쳐 업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얼마 안 되는 옥수수밭에서 삼모작추수를 하고 물을 긷고 농작물을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기가 찾아왔다.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진 폭우는 이곳의 붉은 흙 무른 땅을 모조리쓸어버려 밭을 형체도 없이 감아 내렸다. 집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집 안가득 차올랐던 물이 빠져나갔을 때 흙벽은 무너져 있었고 살림들도 어디론가 다 떠내려가고 보이지 않았다. 그 한가운데 서서 업은 등에 오줌을싸며 악을 쓰고 우는 아이를 추스르던 외할머니는 친정에 두고 온 아들을 더 이상 자신이 돌봐야 되는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게 되었다.

소문에는 키오코 삼촌은 물건을 떼서 파는 무리들과 함께 나이로비로올라갔다고 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소식이끊긴 후 5~6년 뒤쯤 그는 갑자기 마차코스로 그의 엄마를 찾아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외할머니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약 2년 정도 시간 동안 키오코 삼촌은 농사일을 도우며 마차코스에서 그의 엄마와 어린 누이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마카우의 엄마는 가끔씩 그 시절을 떠올리며, 키오코 삼촌과 그가 사주던 사탕수수나 콜라에대해 이야기 해주곤 했었다.

키오코 삼촌이 다시 나이로비로 떠나고 몇 년 뒤, 마차코스의 집으로나이로비에 살고 있는 먼 친척 집에서 자신의 어린 아들과 집안일을 돌봐줄 사람을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가끔씩 시골 친척 아이들을 데려다가 자신의 더 어린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맡기는 도시의 부잣집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따로 임금을 지불하진 않지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또 어떤 이는 학교에 보내주기도 한다고 했다. 주변에서 그러한 친구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본 적이 있던 엄마는 자신에게 찾아온 ‘특별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이로비로 올라갔던 그녀는 2년 뒤,마카우를 낳았다.

마카우는 나이로비에서의 어린 시절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이야기나 음식 냄새가 전부이다. 기억이 시간의 형태를 갖추고 존재하는 순간부터 그는 이미 외할머니와 마차코스의 작은시골 흙벽 집에서 살고 있었고, 그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단편의 조각들로 남아있을 뿐, 어릴 때 외할머니 집으로 자신을 데리고 왔었다던 외삼촌 역시도 자신에게는 단지 외할머니의 새 매트리스와 운전면허 학원으로 기억될 뿐이다.

‘디링’ 하고 전화 알림이 울렸다. 키오코 삼촌으로부터 약간의 돈이송금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삼촌의 세심한 배려로 차비까지 전해 받은 마카우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당일 출발하는 나이로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머리를 박으며 2시간 정도 지나자 버스는 드디어나이로비 시내에 도착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정신없이 붐비는 톰음보야(Tom Mboya) 거리에 처음 내려섰을 때,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찬 공간 속에 무언가가 훅 뜨거운 바람을 뿜으며 다가왔다. 소란함이귀를 웅웅 때렸다. 순간 그는 머쓱한 느낌과 함께 귀밑이 간지러워져 목뒤를 벅벅 긁었다. 높은 빌딩들 아래로 촘촘히 눌어붙은 가게들. 그 엉켜 붙은 길 위로 차들이 지나거나 세워져 있었고, 또 그 사이를 복잡하게도 각종 노점 좌판들과 음코코테니(짐수레)들이 채우고 있었다. 온갖물건들로 가득 찬 짐수레를 밀고 당기며 번들거리는 검은 근육들이 길가에 땀방울을 흩뜨렸다. 북적거리는 노동의 존재감. 그들의 세계로 드디어 그도 들어오게 되었다.

마침 운이 좋았다. 누군가 키오코 삼촌에게 운전사를 찾아봐 달라고요청이 온 것이다.

“한국인 집이야. 일은 어렵지 않을 거야. 개인 기사니까 보통은 마트나 쇼핑 정도……” 일을 소개해 준 무레이티는 한국 업체에서 12년 가까이 운전을 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키쿠유(Kikuyu) 남자로 오랫동안 교회 일에 헌신해 온 점잖은 사람이었다. “경력도 괜찮고 키오코의 조카니까 잘하겠지.”

마카우의 눈길이 흘깃 키오코 삼촌에게 닿았다. 키오코 삼촌은 덤덤히“이틀 뒤에 4시까지 가면 된다는 거지? 이력서 들고 갈 거야. 고맙네 친구.”라고 인사를 하고는 주변 키오스크에서 소다를 3병 사서 각각 한 병씩 나누어 주었다. 정오의 따가운 햇살이 제법 큰 벤자민 나무에 막혀 키오스크 주변을 감싸 안듯 그늘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늘 아래에 선 세남자는 별다른 말없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팔꿈치를 기대고 서서 소다를 비웠다.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잘랑거리며 조용히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삼촌의 단칸방 집 안은 해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컴컴한 식탁 겸 책상에서 줄공책 한 장을 떼어내어 인생의 첫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은 운전면허증을 만들고 남은 여분의 것을 첨부했다. 마카우는 삼촌이알려주는 대로 펜을 꾹꾹 눌러 생년월일, 학력 등을 적어나갔다.

“마차코스에 있는 교회와 회사 한 군데에서 일했다고 말해 놓았으니까 그렇게 적고, 교회 추천장은 받아놓은 게 하나 있으니까 가져가고.”

이력서 쓰는 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일을 얻을 수 있게 필요한조건들을 나열해서 적으면 된다. 마카우는 주변의 도움이 있어 더욱 수월한 편이었다. 물론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다 채워서 냈을 테지만, 이렇게 경험자의 손을 통하는 게 좀 더 프로다워 보일 것이다.

다음 날 경찰서로 범죄사실증명을 떼러 가면서 삼촌은 면접에 대한 충고를 더해주었다. “면접을 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대답해. 그리고 외국인들은 크리스천인 경우가 많으니까 열심히 믿는다고 말하고. 신을 이야기하면 마음이 약해지지. 월급은 제시하는 금액은 일단 적다고 좀 더달라고 하고, 아니더라도 ◯◯◯실링보다 적지 않으면 됐어.” 키오코 삼촌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한 적이 있던가. 마카우는 주옥같은 면접 방법을하나도 빠뜨리지 않도록 고개를 주억거리며 성실히 들었다. 왠지 느낌이좋았다. 운전하는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일자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뒤는 또 어떻게 될 것이다.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간 카렌(Karen)의 주택은 크고 조용했다. 전기펜스가 둘러쳐진 게이트에서 오렌지 나무의 두터운 잎에 가려진 현관문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그는 붉은 먼지바람이 불던 마차코스의 작은 샴바를 떠올렸다.

그를 기다리던 사람은 뜻밖에도 상당히 어린 동양 여자였다. 한국인이라고 했지. 왠지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준비해 간 서류를 건네주니 휙 훑어보는데, 마카우가 공들여 적은 이력의 내용이나 자신만만하게 내민 추천장은 건성으로 쓱 지나쳐 버리고 오히려 경찰서에서 받아온 범죄사실증명만 꼼꼼히 읽어본다. 슬쩍 머쓱한 기분에 휩싸여본인을 미세스 강이라고 소개한 여자가 제시한 금액에 별다른 반대를 말하지 못하고 뒤늦게 웅얼거렸다. “그래도 수습 기간 뒤에는 좀 더 올려줘야 되는데…”

여자는 먼저 테스트 운전을 나가보자고 했다. “지금 바로 결정된 건아니고. 일단 정션 몰(Junction Mall)까지 가보고 생각해 봐요. 괜찮아요?” 순간 만만하게 보이던 여자에 대한 삐딱한 마음이 한 번에 사라졌다. 당장 직면한 문제는 금액 협상 따위가 아니었다. 눈앞에 세워진 차는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은회색 중형차. 차의 오른쪽 운전석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손바닥을 쫘악 폈다가 바지 뒤춤에 쓱쓱 문질렀다.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뒷좌석 왼쪽에 앉아 무심히 안전벨트를 매는 여자를 룸미러로 슬쩍 쳐다보면서 입술을 적셨다. 2개월 만에 다시 잡은 운전대였다. 벨트를 당겨매고, 열쇠를 꽂고… 어디 보자 달칵달칵.

‘쿠르르르릉’

걸렸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시동이 걸리자 마카우는 조용히 소리 없는휘파람을 내쉬었다. 차는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조심스럽게 게이트를 빠져나가 커브를 틀어 골목길에 합류를 시도했다. 길 주변은 풀들이수북이 자라 있는 둑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커브를 틀 때 어딘가 축이 흔들려 휘청하는 느낌이 났다. 재빨리 핸들을 감았지만 속도가 부족했다. 차는 그대로 갓길 풀숲에 푹 처박혔다.

“노 프라브렘(no problem), 노 프라브렘.”

얼른 자세를 수습하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다. 뒷좌석의 여자는 눈을 똥그랗게 뜬 채로 두 손으로 안전손잡이를 꽈악 틀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떨리는 새된 소리로 여자가 물었다. “운전은 할 줄아는 거예요?” 여차하면 차에서 뛰어내릴 태세였다.

“마담, 노 프라브렘. 그냥 작은 실수일 뿐이에요.” 여자는 황당하다는표정을 지었지만, 마카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실수일 뿐인 일을 수습하며 차를 다시 길 위로 올려놓았다. 천천히 골목길을 달려 잠시 뒤 큰도로 위로 차가 올라가자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감이 잡혔다. 마카우는 서서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다행히 도로에는 차량이 많지 않았고속도는 순조롭게 올라갔다. 눈을 치켜뜨고 있던 미세스 강도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 그를 쳐다보는 것을 관두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이대로만 가면 아까의 해프닝은 정말 작은 실수로 끝날 것이다. 느긋해진 마음에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바깥바람이 얼굴에 닿자 심지어 약간의 흥까지 올라왔다. ‘나중에 월급은 다시 확실히 이야기해야지.’ 그때였다. 차가 갑자기 덜덜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뒷자리를 쳐다봤다.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불안한 표정으로 무슨 일인지 살폈다.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길은 아무 문제없이 매끈했고 차도 똑바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시침을 뚝 떼고 앞만 보고 운전을 계속했다. 차는 계속 심하게 덜덜거리고 차체도 심하게 흔들렸다.

“왜 그래요? 차가 많이 흔들리잖아요.” 불안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두 손은 다시 벨트를 꼭 쥐고 있었다. “아무 일 아니에요, 아마 도로때문인가 봐요.” 도로는 당연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도로는 아무렇지 않잖아요. 어제도 왔었어요. 지금 차조작이 잘못된 것 같은데… 기어를 잘못 둔 거 아니에요?” 기어는 ‘D’에 제대로 가있었다. “분명 뭔가 차 조작이 잘못된 거예요. 일단 속도를줄여 봐요.” 마카우는 그녀의 요구대로 속도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덜걱거리는 느낌이 남아있지만 덜덜거림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속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다시 차체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결국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고는, 급하게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말로 빠르게 무언가를 떠들던 여자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손잡이를 놓지 않았고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집 게이트를 통과하자 동양인 남자 하나가 막택시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었다. “헬로우. 반가워요. 당신이오늘 면접 보러 온 사람인가요?” 그 남자는 보통 동양인들과는 다르게덩치가 있고 키가 아주 컸다. 어쩐지 긴장이 되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무슨 문제가 있었다고 하던데” 마카우가 뭐라도 설명을 하려고 막입을 떼는데 그보다 빨리 여자는 한국말로 자신의 남편을 향해 다다닥이야기를 시작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흥분해서 쏘아대는 모습을 보니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의 남편에게 저렇게 화를 내고 있는건지. 그는 지금 도착했고, 잘못한 것은 그가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는 한국말을 전혀 몰랐지만, 남편의 말 중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라는 단어는 알 수 있었다. ‘아, 사이드 브레이크’ 아까 운전할 때사이드 브레이크를 푼 기억이 없다. 아니 그 존재를 방금 전까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이 문제였구나. 잠시 뒤 남편이 마카우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천천히 조용한 목소리로 “당신은 운전을 잘 못하는 것 같네요. 자동차를 어떻게 다루는지도 잘 모르고. 안됐지만 우리랑 일은 못하겠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의 끊어서 꾹꾹 눌러 말하는 악센트가 더 이상 흥정할 여지가 없음을 보여 주는 듯했다. 마카우는 조그만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당신 차가 너무 신형이라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서 그래요. 자꾸 타다 보면…” 부부는전혀 고민하지 않고 단칼에 “노우”로 답했다. 차비로 쓰라며 200실링을쥐어주고 그를 돌려보내는데 약간의 오기가 돋아났다. 오늘 어쨌든 일을하지 않았는가. 거기에 대한 돈을 더 줘야 한다고 말을 흘려 보았지만, 남편 쪽은 그를 흘깃 쳐다보며 웃는 듯 마는 듯 그냥 게이트를 닫아버렸다.

마카우는 한숨이 났다. 게이트 밖에서 서성이던 그는 키오코 삼촌이알려 주던 여러 가지 면접 방법들을 떠올렸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남겨진 저들의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의 집은 대로에서도 두어 번 정도 굽이굽이 꺾어 들어가 있었고 울창한 나무들이 둘러싸여 잘 보이지도 않는 카렌의 주거 지구 외곽에 있다. 인적은 드물고 수풀은 깊었다.

‘나는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혼자 집으로걸어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 수풀 속에서 강도를 만나 죽을지도 모르지. 당신들이 나를 가엽게 여겼다면 집으로 돌아갈 택시비라도 줬을 것이다. 오늘 내가 무사히 살아서 집에 갈 수 있을지는 오직 신만이 아시겠지.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고, 그 대가를 받지 못했지만 당신을 원망하진 않을 거야. 오직 신께서 나와 함께하실 거다.’

문자를 다 써서 보내고 난 마카우는 바닥에 침을 탁 뱉고 게이트를한 번 쳐다본 뒤 돌아서서 느릿하게 삼촌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저들이돈을 더 보내줄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마음 편하지는 않겠지. 어쨌든,그는 삼촌의 충고를 잘 활용했다.

요란한 음악을 흘리며 14인승 승합차는 짙은 녹음이 가득한 언덕 위로 난 키암부(Kiambu)의 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햇빛이 잘게 부서지는 화창한 아침이었다. 과거에 숲이었던 장소를 뚫어 낸 도로 아래는 비스듬히 깎아져 내린 낭떠러지가 나무들에 둘러싸여 발랄한 푸르름을 발하며 펼쳐져 있었다. 창 앞의 운전사 옆 좌석에 앉아있던 마카우는 그가건네주는 미라 한 줄기를 받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마타투(Matatu) 운전이요?” 

“응. 키암부 쪽을 운행하는 노선인데, 요즘 사람을 구한다는군.”

그날 면접이 끝난 후 그냥 집으로 돌아온 마카우에게 얼마 뒤 무레이티 아저씨가 찾아왔다. 문자를 보낸 후 한국인 부부는 돈을 더 주겠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무레이티에게는 바로 연락을 했었던 모양이다. 이력서의 경력, 추천장이 다 거짓말인 것 같다. 운전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는 그들에게 무레이티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전해 준 뒤 그는 마카우에게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단지 또 다른 일자리를 소개해주며 연락처를 건네줄 뿐이었다. 마카우는 이력서를 읽어보던 한국 여자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이력서의 내용보다는 범죄 기록이 없는 것을 더신경 쓰고 있었다. 어려 보이던 그녀도 누군가 작성해 온 이력서와 추천장이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은 아니라는 정도의 경험은 있는 것이다.

“마타투 운전은 경력도 실력도 좀 있어야 된다던데, 할 수 있을까요?”

정해진 시간 내에 승객을 승하차시키고 루트를 돌아야 되는 마타투운전은 결코 쉽지 않다. 거기다가 호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힘들기만한 헛고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번 해봐. 요즘 그쪽 루트로 무슨 일이 있는지 사람이 좀 빈다고 하더라고.” 말을 마치고 무레이티는 슬쩍 고개를 들어 마카우를 바라보았다. “…… 넌 키쿠유가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갑자기 종족 타령은 왜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물어보려는 찰나 무레이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가봐야겠다. 곧 점심시간이 되니까 들어가 봐야 돼.” 두 손을마주 잡고 쓱쓱 소리를 내며 비비더니 한 손을 들어 마카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꼭 연락해 봐.”

저녁에 키오코 삼촌이 집에 왔을 때 마카우는 무레이티가 다녀간 일을알렸다. 키쿠유가 아니라서 괜찮을 거라는 말도 빠지지 않고 전했다. 키오코 삼촌도 딱히 의미를 알진 못했지만, 마타투 회사에 전화를 한번 해보는 게 좋은 생각 같다고 했다. 마카우에게는 경험이 필요하고 돈을 벌직장이 필요했으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마카우도 이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다음 날 아침 받은 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바로 회사로 나와 보라는 말을 들었다. 또 회사에 가자 별다른 확인 없이 해당 루트의 마타투에 길도 익힐 겸 한번 탑승해보라고 밀어 넣는 것이었다. 일사천리로 상황이 진행되자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일자리가 필요했으니까.

신나는 음악과 함께 좋은 날씨 속을 쌩쌩 달리다 보니 의욕이 솟아났다. 나이로비 도로는 항상 꽉 막혀 있다고 들었는데, 그가 지금 달리고있는 이 길은 평소에도 한산한 편이라고 했다. 같은 길로 두 번째 회선을 했을 때 마카우는 다시는 못 만날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게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드라이브를 즐기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때 100미터쯤 앞에 경찰차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올 때만 하더라도 아무 일도 없던 곳이었다. 함께 탄마타투의 운전사도 궁금한 듯 서행으로 천천히 다가가 몰려 있는 사람들 옆으로 차를 붙였다. “헤이, 이봐요, 무슨 일이에요?” 물어보는 운전사의 목소리가 많이 떨리고 있었다. 마카우는 흘깃 그를 쳐다보고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웅성거리며 경찰들이 서있는 곳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중 뒤에 서있던 사내 한 명이 마타투를 향해 입을열었다. “또 죽은 사람이 발견됐대요. 뭉기끼(Mungiki) 짓인가 본데…목이 없다는 얘기도 있고.” 그는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경찰쪽을 향해 목을 쭉 빼고 기웃거리며 말했다.

“뭉기끼? 그 갱들 말하는 거예요?”

“맞아요. 요즘에 이 근처에서 키쿠유들 목 없는 시체가 몇 나왔다잖아요. 다 뭉기끼가 그런 거라고.” 그 말을 함께 듣고 있던 운전사의 얼굴이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일그러졌다. 서둘러 갓길에 세웠던 차의시동을 걸고 그 장소를 벗어났다. 좀 전까지만 해도 흥겹게만 들리던 고성의 가요가 누군가의 비명처럼 찢어지는 소리로 울려 퍼졌다.

그 뒤로 두어 시간 더, 별 말없이 운행을 마친 뒤, 마카우는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집으로 돌아왔다. 자꾸 아까의 사람들이 몰려 있던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둑해질 무렵 키오코 삼촌이 집으로 돌아왔다. 삼촌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 하는데 그가 먼저 “그 마타투 운전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말을 꺼냈다.

“오늘 가서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요즘 그쪽으로 키쿠유족 마타투 운전수들이 뭉기끼 테러 대상이 되고 있다잖아. 이미 여럿 죽었다던데. 어디에는 목만 남겨 놓은 데도 있고. 곧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까저쪽에서 키쿠유들을 대상으로 경고하는 거라더군.”

마카우는 아까 보았던 것이 무슨 일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일그러진운전사의 얼굴도 떠올랐다. 5년 전 대통령 선거 때도 다른 후보자를 내세운 부족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수백 명이 죽었다. 키쿠유 타운의 교회에서 산 채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불태워진 일은 당시 마차코스에 있던그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때 마카우의 휴대폰이 ‘딩동’하고 울렸다. 버스 회사에서 등록을 위한 서류를 가지고 오라는 메시지였다. 마카우는 고개를 젓고는 단호히 일하지 않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멀리서 보면 그도 키쿠유로 보일지 누가 알겠는가. 돈이 필요하지만 먹을 입을 잃어버리면 의미가 없다. 시작 전에 먼저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키오코 삼촌이 또 다른 일자리를 알아왔을 때 그는 여기저기 개인택시운전사들의 땜질 역할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 할부로 개인택시를 해볼까도 잠시 생각을 했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역시 누군가 혹은 회사의 운전사로 고정 취직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마음을 굳히고 있을 때 키오코 삼촌의 회사 판매담당 시니어가 집에서개인적으로 일할 기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응, 한국 사람. 미스터 리라고 하는데 그 집 차를 운전하면 돼. 애들이 둘인데 학교 등하교길 태워주고, 어디 갈 때 태워주고.” 한국 사람이라니 몇 달 전 일이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는지키오코 삼촌은 달래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조카라고 말도 했고,너도 이제 여기 길도 많이 아니까 잘해 봐. 계약은 회사 계약서로 할 거라 조건은 괜찮은 편이야.” 확실히 삼촌은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월급이 밀리는 적도 없고 의료보험도 회사에서 내주고 있다. 근무시간 이외에는 추가 수당도 확실히 계산해서 주니, 애매한 개인 기사보다도 추가 수입이 좀 더 있는 편이었다. 삼촌은 그 흔한 주차비나 쇼핑영수증으로 장난을 쳐서 비용 더 뜯어내는 일조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는 비교적 정직한 편에 속했으며 담백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회사는 그런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생활을 지지해 주었다.

며칠 뒤, 마카우는 집 근처 중고 시장에서 마련한 품이 큰 회색 양복을 챙겨 입고 미스터 리의 집으로 갔다. 미세스 리로 보이는 키가 작고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무뚝뚝한 편이었는데 인상과는 달리 면접에서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단지 가져온 서류들을 회사에서 검토해 볼 것이라고 따로 갈무리해 두고, 근처테스트 운전 때도 별말 없이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오자 일단 세 달간수습 기간을 가지고 일을 해보자고 말했다. “내일부터 올 수 있죠? 아침7시까지 오면 돼요.” 싱겁게 취직이 결정되자 마카우는 얼떨떨하게 “그럼요.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문제없어요. 내일 올게요.” 대답하고 혹시나 취소할까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때 닫히는 문틈으로 여자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7시에요. 절대 늦지 마세요.”

사실 서둘렀으면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고용주 번호가 뜬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을 때에도 마카우는 자신이 늦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자 어디냐 라는 낮게 지르는 듯한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카우는 “거의 다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거의 다라니 정확히 몇 분 뒤를 말하는 거예요?” “거의 다요, 거의 다.”

짧은 정적 후 작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지금부터 10분 안에 학교로 출발해야 늦지 않을 수 있어요. 당신이 못 오면 택시라도 불러 가야 되니까 정확히 언제 도착하는지 알려줘요.” 순간 울컥한마음이 들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면박을 주다니. “금방이요, 금방.” 삐로롯 전화가 끊어졌다. 삐죽해진 기분으로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자 아무 응답이 없었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 마카우는 대문 앞을서성대며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렸다. 20분쯤 뒤, 무뚝뚝한 표정의 미세스 리가 종종걸음으로 돌아왔다. 지갑을 든 손으로 팔짱을 끼고 긴 카디건을 걸친 여자는 문 앞에 서있는 그를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종종거린 탓인지 코끝까지 내려온 안경을 쓱 올리며 “첫날부터 늦게 왔네요”라고 냉랭하게 내뱉었다.

마카우는 쓰읍 숨을 들이키며 “길이 헷갈려 되돌아오면서 헤매느라늦었어요. 내일부턴 정시에 올게요”라고 재빨리 대답했다. 갑자기 아침공기가 차갑게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첫날의 지각을 제외하고 이후의 날들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미세스 리는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고 시간 약속만 잘 지키면 별 탈없이 지낼 수 있었다. 단지 냄새에 상당히 예민한 터라 옷을 조금만 빨지않고 입거나 씻지 않거나 하면 바로 인상을 찌푸리곤 해서 신경 써서 꼬박꼬박 몸을 씻었다. 단수가 잦았고 물도 길어다 써야 했지만 키오코 삼촌도 씻는 데 쓰는 물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는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미세스 리는 장을본다. 가끔씩은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도 있고 외식을 하러 가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오후 3시가 되면 아이들을 데리러가고, 돌아오면 퇴근 시간이 된다. 이 한국 여자는 그다지 많은 외출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카우는 집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많았다.

9월이 되자 나이로비에 짧은 우기가 찾아왔다. 오랜 건기 끝에 찾아온 단비에 세상은 온통 여린 초록빛 물을 머금고 싱그러운 공기를 뿜어냈다. 그날은 리의 두 아이들이 교회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다. 토요일 오전 마카우는 아이들을 태우고 웨스트게이트몰(WestgateMall)로 향했다. 주말인 탓인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주변은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려는 차들로 붐볐다. 마카우는 영화관 입구와 가까운 2층지상 주차장으로 차를 천천히 몰고 올라갔다. 부드러운 반원을 그리며차가 움직이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의 친구들이 탄 차량을 발견하고 얼른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었다.

“여기서 내릴게요. 영화는 12시쯤에 끝나니까 그때쯤에 전화할게요.”

소년들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휙 차에서 내려 친구들에게 뛰어갔다.

까르륵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맑게 퍼져 나간다.

어차피 일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다. 오늘 오전에 마담은 차를 따로쓰지 않는다고 했으니 마카우는 이곳에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바로 퇴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쇼핑몰 입구에서옥수수를 구워 팔던 게 떠올라, 그는 천천히 다시 게이트 쪽으로 걸어내려갔다. 경비들은 여전히 몰려오는 차들을 일일이 열어 검사하는 데여념이 없었고 그 열린 차 트렁크 너머로 숯불에 옥수수를 굽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헤이 브와나(Bwana), 소프트한 걸로 소금, 라임 뿌려서 하나 주세요.”

옥수수를 굽는 청년은 무심히 커다란 알이 꽉 찬 녀석을 골라 보드랍고 깨끗한 옥수수 속이파리에 잘 싸서 마카우에게 건넸다. 마카우는 반잘린 라임을 들어 소금과 고춧가루를 찍은 뒤 방금 구운 옥수수를 앞뒤로 굴려가며 골고루 문질렀다. 딱딱한 표면을 깨물어 씹자 라임의 시큼한 맛과 고춧가루 향이 고소함과 버무려져 입안 가득 침이 돌아 나온다.

그는 옥수수를 들고 천천히 건물 주차장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어디선가 보라색 꽃봉오리 하나가 날려 와 그의 코끝에 닿았다. 고개를 들어올려다보니 아름드리 자카란다 나무가 여린 새 가지 위로 가득 꽃을 달고 주변에 연보라색 꽃바람을 날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 아까 보지 못한천막이 보였다. 행사가 있는 듯 주차 공간을 나눠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었고 아이들의 가득 찬 웃음이 공기를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얀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 하나가 그의 옆으로 팔랑거리며 뛰어왔다. 아이의 머리끝에 달린 수십 개의 색색이 구슬을보며 마카우는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마카우의 엄마가 나이로비에 올라갔을 때 그녀는 함께 살게 된 친척과 함께 매주 교회에 나갔다고 했다. 그때마다 볼과 배가 동그랗고 통통한 친척 집 여자아이는 항상 레이스가 가득 달린 원피스를 입었었다.

나이로비의 세계는 그녀가 머물던 시골과는 많이 달랐다. 집 안을 가득 채운 가전제품들부터 그 속에 연결된 전기, 수도, 샤워기 달린 욕실까지. 그들은 화장실을 다른 집과 공유하지 않았으며 벽으로 둘러 싸여진 그들의 공간을 단단하게 확보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이세계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누군가 내민 손을 쉽게 잡았고,마음을 내어 주었다. 아이를 가져서 그를 붙잡고, 이곳에 뿌리를 내릴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하던 거랑은 달랐지. 그 사람이 살던 곳은 창도 나지 않은 좁고컴컴한 방이었고 그런 냄새나는 양철집들 몇 백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었어. 무엇보다도 그곳엔 햇빛과 바람이 없었거든.” 생각해 보면 그의 엄마는 마차코스를 그리워했던 것 같다. 그곳에는 도란도란한 고요함과옥수수 잎 사이를 서걱대는 바람이 있었다.

그녀가 원했던 도시의 세계가 전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 그녀는 그 세계의 외곽으로 밀려났다. 임신이 알려지자 친척은신속하게 그녀를 자신들의 집에서 내보냈다. 옷가지가 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어느 흐린 날 그녀는 키베라(Kibera)의 컴컴한 양철집으로 옮겨 갔다. 얕은 관계로 붙잡고 있던 그와는 친척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는말을 전한 순간부터 완전한 남이 되었다. 오물과 진흙이 섞여 흐르는 양철집 사이를 걸으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빽빽하게 붙어있는슬레이트 지붕 길 아래로는 햇빛이 들지 않는다. 왜 그때 마차코스로 돌아가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삶이 매우 힘겨웠을 거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카우(Makau)-그녀가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캄바(Kamba)족은 전쟁의 시기에 태어난 아이에게 ‘마카우’라는 이름을 붙인다.

‘콰콰쾅!”갑자기 땅이 내려앉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 마카우를 때렸다. 후두둑바위가 부서지는 소리에 이어 따가닥거리는 연발음이 들려왔다. 마카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창 밖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주차장의 한쪽이 완전히 내려앉아 몇 대의 차들은 그 아래로 처박혀 있었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웠다. 연이어 들려오는 따다닥 소리에 마카우는 차 바닥으로 낮게 몸을 숙였다. 이윽고주변이 조용해지자 그는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 떠들고 웃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폭발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시커먼 연기가 사막의 폭풍처럼 하늘을가득 채우며 올라갔다. 마치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온 것 같았다. 그때 그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깜짝 놀라 얼른 전화기를 무음으로 바꾸고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깥에는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것처럼 느껴졌다. 메시지는 리의 아이들이 보낸 것이었다. ‘도와주세요.영화관 의자 밑에 있어요. 밖에서 총소리가 들려요.’ 순간 그는 어떻게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잠시 기다렸다가 우선 차에서 내려 몸을 잔뜩 구부리고 천천히 건물 쪽으로 다가갔다. 안쪽에서는 계속총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비명도 함께 울려 퍼졌다. 그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손을 몇 번이고 바지에 문질렀다. 상영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려 상황을 살피는데 몇 명의 동양 아이들이 재빠른 걸음으로 발소리를 내지 않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헤이 리” 속삭이듯 그들을 불렀다. 의외로 아이들은 대담했다. 마카우는 우선 건물을 빠져나갈 요량으로 아이들을 모아 다시 입구 쪽으로조심스레 몸을 틀었다. 그때 가운데가 뚫려 있는 건물의 중앙 난간을 통해 아래층 슈퍼 앞에서 무기를 온몸에 두르고 커다란 장총을 든 사내가보였다. 그는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의 독특한 억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대한 무함마드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인가?”

무슨 말인지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았다. 마카우는 몸을 돌려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움직였다. 그때 ‘타탕!’ 짧고 날카로운 총성이울렸다. 아이들은 입을 틀어막고 걸음을 멈추었다. 총구 앞에 있던 사람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마카우는 눈을 질끈 감고 계속 바깥쪽으로 뛰어갔다. 아래쪽에서는 몇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직접 누군가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본 충격은 대단했다. 계속 머리가울리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2층 주차장 쪽에선 계속 연기가 오르고있었고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들은 차를 포기하고 ◯층 카페테리아 테라스 바깥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곳곳에서 총성이 계속 들려오고있었다. 숨다가 이동하다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려 드디어 테라스로 연결된 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먼저 아이들을 테라스 밖으로 뛰어나가게 한 마카우는 그 뒤를 이어 자신도 나가기 위해 문을 그러쥐었다. 아까 총을 쏘았던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위대한 무함마드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때 둔탁한 충격이 그의 왼쪽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총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휘청 다리가 휘고 귀는 웅웅거리며 소리가 멀어졌다.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인가?!!’ 사내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그는 억지로 어깨를 밀어 테라스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어머니……의 이름은……”

주르륵 끈적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왼쪽 귀를 타고 어깨에 흘러내렸다.

‘내 어머니의 이름은, 카쇼카(Kasyoka-가족의 환생).’

이윽고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캄바의 영혼은 그들의 가족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온다고 했다. 먼 과거의 시간을 거쳐 돌아온 캄바 여인의 영혼, 그 이름은 카쇼카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마카우의 머리를 쓰다듬던 거친 손길의 어머니도 언젠가는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까.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웨스트게이트 테러 현장에 대해 보도했다. 사흘간의 진압작전 끝에 테러를 저질렀던 알 샤바브(Al-shabab) 일당 몇은 죽고, 몇은 잡혔으며 또 몇은 도망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쇼핑몰에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지만, 방송에서는 축소된 인원만 발표됐다. 시신이 수습된 병원은 아비규환이었다. 그러나 마카우는 살아있었고, 다행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고맙게도 그의 고용주는 병원 입원 치료비까지 모두 대신 납부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 달이라는 치료 기간에도 그를 해고하지 않았다. 걱정했던 차량도 회사 소속으로 보험 처리가되어 그야말로 돈 걱정 없이 마카우는 병원에 누워있을 수 있었다.

그가 튕겨 나갔던 난간 밖으로는 이미 경찰이 진입을 위해 사람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먼저 빠져나간 아이들은 바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단숨에 현장으로 달려온 그들의 품에서 안전하게 보호되었다.

아이들의 보고로 마카우는 한동안 리의 가족들로부터 영웅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의 휴식이 유급 휴가로 처리된 것도 그중 하나였다.

소란 속에서 며칠이 지났다.

8개의 침상이 칸막이 커튼으로 나뉘어있는 병실은 그 말고는 아무도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종말과도같던 폭음의 시간은 지나갔지만 이방인의 어머니의 이름을 묻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을 뚫고 그의 귀를 울렸다. 그때 과묵한 발걸음으로 누군가 병상 커튼으로 다가왔다.

키오코 삼촌이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리고 그가 민트 사탕 하나를 건네주었을 때, 마카우는 문득 삼촌과 함께 흔들리던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렇게 삼촌은 어린 그에게 사탕을건네주었던 것 같다. 마카우의 엄마, 카쇼카는 아이를 낳고 몇 년 지나지않아 사고로 짧은 인생을 잃었다. 그러나 어린 마카우의 시간은 끝나지않았다. 지금까지 기억나지도 않던, 묵묵히 내밀어 준 손을 잡고 마차코스에서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병상 침대 위로 선선한 바람 한줄기가 흘러 들어왔다. 이제 곧 삼촌과함께 나이로비의 집으로 돌아갈 터이다.

어디선가 달리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붉은 흙먼지 냄새가 날려 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