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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 중·고등] 어긋난 나라의 앨리스
작성일
2022.01.05

글짓기 중·고등 - 우수상

어긋난 나라의 앨리스

심 로 미 나 [아르헨티나]


안녕! 나는 어긋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해.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

일단 18년 전으로 돌아가자. 2003년, 난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이곳으로부터 가장 먼,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 오 셨지만 그래도 난 당연히 나도 주변 애들과 다를 게 없는 아르헨티나인이라고 생각했 지. 그저 디즈니 영화들에 홀딱 빠져 있는 순수하고 부끄럼 많은 흔한 꼬마였거든. 그 런데 내가 5살이 됐을 무렵 깨달았어. 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걸.

난 아르헨티나에서 자랐지만, 한국인 유치원과 한국인 초등학교, 그리고 한국인 교 회까지 다녔어. 그래서 난 항상 한국인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자랐어. 내가 다섯 살 때 부터 다녔던 학교의 이름은 “아르헨티나 한국학교”. 딱 봐도 그렇겠지만, 아르헨티나 에 사는 한국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지. 오전에는 그 어느 학교가 그렇듯이 수학, 역사 그리고 또 재미없는 몇몇 과목들을 스페인어로 배웠고, 오후에는 영어와 한국어 를 배웠어. 그래서 학교의 선생님들의 반은 현지인분들이셨고 또 다른 반은 한국인분 들이셨어.

우리 학생들은 속히 “한페인어”라고 하는 언어로 대화했었어. 우리의 방식대로 두 개의 언어를 섞어서 사용했지.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그건 그들의 문 제고. 우리끼리는 다 이해를 했었으니까.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가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들이란걸, 아니, 그렇게 받아들여지 는 사람들이란 걸 알아채지 못했어.

1학년.
매주 목요일 체육 시간, 우리는 스쿨버스를 타고 수영장으로 향했어.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수영장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면서 우리 또래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마주 쳤어. 그 아이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손가락으로 눈을 찢으면서 소리치기 시작했어.

“너희 나라로 돌아가”
“중국인들”
“칭챙총”

충격적이었어. 그때, 우리 반에서 그나마 가장 용기 있는 친구가 유일하게 할 수 있 었던 한 마디는 “우리는 한국인이거든!”이었어.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깨달았어. 나는 다르다는걸. 나는 소수자라는 걸.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사회가 선호하지 않는 모양의 눈을 갖고 있다는걸. 그 누구 도 내가 이곳에 있길 바라지 않는다는걸. 어긋난 곳에, 어긋난 나라에 있다는걸.

나는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보호하는 법을 그땐 알지 못했어. 이제 겨우 다 섯, 여섯 살에 어린아이들이었기에.


2학년.
이런 인종차별의 경험을 몇 번 겪었어도 여전히 충격적이었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어. 어느 박물관 같은 곳으로 견학을 갔다 오고 교실로 돌아오고 나면 아이들은 모두 격 앙된 목소리로 자기들이 들었던 모욕적인 일들을 하나둘씩 선생님에게 일러바쳤어.

“선생님, 어떤 애가 저를 보더니, 눈을 찢었어요.”
“선생님, 저는 화장실에서 마주친 아이한테 갑자기 욕을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꺼지라면서.”
“선생님, 저희는 왜 어디를 갈 때마다 이런 일을 겪는 걸까요? 저희가 뭘 잘 못 한 걸까요?”

선생님은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이라고는 하셨지만, 어디를 가나 주눅 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어.


3학년.
우리는 서서히 그런 말들과 그런 손짓들에 적응하게 됐어. 상처는 여전히 받았었 지만 익숙해지더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아직 몰라서 그저 무시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지.

“개고기 먹는 놈들이 왜 여기 있어?”
“…”


4학년.
우린 컸고, 드디어 우리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웠지.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누구 인지 설명하기 시작했어.

“우리나라에서 꺼져.”
“우리도 이 나라 사람들이야.”

“중국인들이 왜 여기 있어.”
“우리들의 부모님은 한국인분들이시고 우리는 이곳에서 태어났어!”

5학년.
사람들은 여전했어. 지치더라고. 그쯤 되니까 우리는 정말로 그들을 무시할 수 있 었어.

“아리가또!”
“…(뭐래)”

6학년.
우린 농담도 치고 그들을 비웃을 정도로 즐기기 시작했어.

“거기 중국인들, 아리가또!”
“응, 아리가또. 아리가또는 일본어인데. 크크크”

그 수준에 다다랐을 무렵, 우리는 졸업을 하게 됐어. 그렇게, 서로 보호해 주던 “우 리”라는 팀은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됐지.

나는 Mirana(미라나)라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어. 한국인 학교는 아니었지만, 나 같은 한국인들이 꽤 많았어. 그리고 웃긴 건, 우리 반에는 총 30명의 학생이 있었는 데 그중에 25명은 남학생들이었고 나머지 5명은 여학생들이었어. 게다가 우리 여자 들은 모두 동양인들이었고. 한 명은 중국인, 나머지 네 명은 한국인들이었지.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그들은 내가 인종 차별을 당할 때 대신 싸워줬어.

“너같이 눈 찢어진 애들이랑은 말 섞기 싫어.”
“방금 앨리스한테 뭐라 그런 거야? 미쳤니?”
“우리도 너같이 무식한 놈들이랑은 말 섞기 싫거든.”

“김밥 맛있다”
“쟤네는 뭐 저렇게 이상한 걸 먹어”
“우리 먹는 거에 뭐 문제라도 있니?”

이 아이들은 용감했어. 아니, 내가 겁쟁이였지.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았 고,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법도 알았어. 그런데 나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인 나를 보호 하지 못했어.

운 좋게도, 나는 이 울타리 안에서 2년을 더 보호받을 수 있었어. 그렇지만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어.

얼마 전, 나는 이번에 처음 들어본 Cheshire (체셔)라는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됐어. 내가 살던 곳에서 1시간 정도 거리더라고. 부모님께서 내게 처음으로 이사한다는 소 식을 알려주셨을 때 기분이 정말 안 좋았어. 내 친구들과 내가 평생 살던 곳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는 동양인이 단 한 명도 살지 않는다 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어.

살면서 처음으로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도 없는 곳으로 오게 됐어. 어젯밤, 잠을 못 자겠더라고.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새로운 학교로 가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무서웠어.
‘왕따 당하면 어떡하지?’
‘인종 차별적인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항상 내 곁에는 나를 지키던 그 용감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 혼자네.”

해가 밝았어. 가방을 싸고, 새로 산 교복을 입고, 아빠의 차에 탔어.  학교에 도착 하자마자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학교 복도를 걷다 보니 모두가 나를 바 라보고 있더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어. 외계인이 된 기분이야.

혼자서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
모르겠다.
교실에 들어가니 파란 눈에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눈빛으로 모두 나를 주목하고 있고 선생님께서 나보고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시네.
“안녕! 나는 어긋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해.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