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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 중·고등]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며
작성일
2022.01.05

글짓기 중·고등-최우수상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며

유다은 [태국]


정확히 오후 6시만 되면 우리 집에는 새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무반(태국에서는 주 택이 모여 있는 빌리지를 이렇게 칭한다) 안의 새들은 우리 집에 다 모인 것처럼 시끄 러워 그 시간에는 티비를 보는 것도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다. 그 소리도 소 리지만 집 주위는 온통 새똥 투성이었고 울창한 나무 그늘에 무반 안에서 일하는 아 저씨들 쉼터와 다른 집 방문 차량들까지 다 우리 집 앞으로 모였었다. 그래서 밖에서 도 훤히 보이는 우리 집은 대낮에도 커튼을 치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가려진 커튼을 거두어내니 눈부신 햇살이 그대로 우리 집 거 실로 쏟아 들어왔다. 정원의 무성했던 나무들은 가지가 다 잘려나가고 앙상한 줄기만 이 남아있었다. 무반 관리 사무소에서 나무가 너무 자라 가지와 이파리들이 전선들을 감싸고 있어 잘랐다고 하였다. 오후 6시가 되어도 주위는 온통 고요뿐이었다. 코로나 로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있던 우리에게 더 이상 손님은 없었다. 이제 그늘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타들어갈 것 같은 강렬한 햇빛 때문에 암막 커튼을 치 고 살아야 한다. 온기는 사라졌고 적막감만이 남았다.

재잘거리던 새 친구들을 잃어버려 외로워 보이는 나무를 보니 미얀마에 홀로 계신 아빠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은 8년 전 캄보디아에서 미얀마로 발령이 나신 아빠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빠는 미얀마에 그리고 엄마와 나, 여동생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생 활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이 소중했던 아빠였지만 어렸을 때 천식으로 몇 번 위 급한 상황이 있었던 나 때문에 같이 미얀마로 가지 못하고 좀 더 의료환경이 나은 태 국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주말마다 아빠를 만날 수 있었기에 아빠의 부재 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은 주말에는 각자의 일을 내려놓고 같이 보 내며 즐겼다.

그런데 작년 만물이 소생한다던 봄에 우리 가족의 겨울은 다시 찾아왔다. 정말 잔 인한 봄이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태국은 봉쇄령이 내려졌고 나는 아빠 얼굴을 거의 1 년 반 정도 못 보고 있다. 우리 가족은 조금만 더 버티면 백신도 나올 거고 아빠도 자 유롭게 태국에 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버티고 있다. 아빠는 태 국에 들어오지 못하면서 갱년기가 찾아온 거 갔다며 우리가 전화를 조금이라도 살갑 게 받지 않으면 우울해하시고 짜증도 내시며 또 때로는 아빠 보고 싶다는 말을 해달 라며 어린아이처럼 떼도 쓰셨다. 그렇게 힘든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우리 가족은 잘 이겨내고 있었다. 아빠는 올 초 어떻게든 태국으로 들어가야겠다며 방법을 찾고 계셨 고 곧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며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나 역시 아빠가 손에 가득 선 물을 들고 들어올 날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아빠를 맞이하려 준비하는 우리에게 청천 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2월 초 어느 날이었다. 항상 학교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던 엄마는 주차장 이 아닌 학교 사무실에서 나오고 계셨다. 데리러 오신 엄마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어 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그날 저녁 엄마는 우리에게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미얀 마에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하셨다. 아빠는 오전에 전화로 그 소식을  전 해주시며 제일 먼저 한 걱정이 몇 달 뒤 내야하는 우리의 수업료였다고 하셨다. 미얀 마의 상황이 좋지 않아 은행이 닫힐 수도 있어 수업료 먼저 내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 와 아빠는 학교를 오가며 바삐 움직이셨다. 엄마가 학교 사무실에서 나온 이유였다. 그렇게 부모님은 남들보다 3달 먼저 수업료를 납부하셨다. 아빠는 수업료와 생활비 를 보내고 나서야 “우리 큰 딸 마지막 수업료를 드디어 냈네. (난 이제 졸업을 1년 앞 두고 있다)”라며 웃으셨다. 그 뒤부터 우리 가족은 뉴스를 살펴보며 하루하루를 불안 해하며 보냈다. 정말 뉴스에 나오는 미얀마 소식들은 금방이라도 아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나의 마음을 옥죄어왔다.

아빠가 태국이나 한국으로 나오기를 바랐지만 아빠는 우리의 생계가 미얀마에 달 린 이상 사업체를 두고 나올 수는 없다고 하셨다. 너무나 걱정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미얀마 슈퍼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시며 먹을 것도 많고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며 우리를 안심시키셨다. 아빠는 우리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아빠 앞에서 엄마는 애써 밝은 척, 태연한 척 하셨다.

그렇게 두려움이 우리 가족을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던 3월 어느 날, 신한은행 여직 원이 총상을 입었다는 뉴스 기사에 엄마는 아빠에게 카톡을 보냈지만 연락이 닿지 않 았다. 그 3일 동안 엄마는 애써 침착하시려 노력하셨지만 우리 가족은 전화기만 보며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그리고 3일 후 아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전화에 온 가족 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학교 숙제를 하고 있거나 티브이를 볼 때 바쁘다는 핑 계로 나와 동생은 아빠의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때만큼은 아빠의 전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의 답답함이 안개처럼 걷히는 것 같았다. 그 뒤 난 아빠와 매일같이 전화 통화를 했으며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아빠의 전화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아빠는 오히려 올 1월과 3월에 일어난 태국에서의 코로나 대 확산을 걱정하시며 아빠가 일이 줄어들어 한가해지니 딸들과 더 많은 시간 을 보낼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떠셨다.


이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불안함이라는 두려움 속에 갇혀 살지 않는다. 아빠의 전화를 매일 기다리며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를 서로 추천해 주며 즐거 운 대화만 나눈다. 미얀마에서 밖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해 시간 여유가 생긴 아빠는 우리와 같이 공유할 이야깃거리가 더 많아진 것이다. 그렇지만 아빠는 여전히 미얀마 에서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군부의 무자비 함에 혼자 속으로 울며 두려움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그런 아빠에게 나, 엄마, 동생은 모든 걸 태워버리는 강렬한 태양 속  한순간의 달 콤한 휴식과 같은 존재이다. 마치 우리 집 정원의 울창한 나무숲이 우리에게 주었던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아빠가 이 세상과 싸울 수 있는 방패가 되고 희망이 되어 드리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 졌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집안에 웃음만이 퍼졌다.


엄마 역시 14년 동안 동남아에 살면서 캄보디아의 부정선거에 대한 유혈사태로 다 급하게 태국으로 도피해야 했던 일. (그때 아빠가 한국 출장 중이셔서 엄마는 홀로 어 린 나와 동생을 데리고 캄보디아를 빠져나왔었다.) 그리고 태국 이주 후 태국의 군 쿠 데타와 지금도 진행 중인 코로나에 이제는 미얀마의 쿠데타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 지만 그때마다 잘 이겨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셨다.


이런 부모님을 보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 귀도가 수용소에서 나치에 게 잡혀 죽으러 가는 순간에도 5살 아들 조슈아에게 이건 즐거운 게임이라고 말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아, 아무리 처한 현실이 힘들어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라는 대사 와 함께 ...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빠는 그 총성 속에서도 아빠의 목숨보다도 내 학비가 먼저였고 태국의 코로나 확산이 더 무섭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학교생활 잘 하며 이곳 치앙마이에서 행복하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계신다는 것을 ….


겨울이 있으면 봄이 있고,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다.
겨울은 춥고 시린 것만은 아니다. 모든 추위를 녹여줄 것 같은 솜사탕처럼 달콤한 함박눈도 있다.
어둠은 깜깜함과 막막함만 있는 게 아니다. 지친 나를 어루만져 주고 쉬게 해주는 고요함도 있다.


우리 집 정원의 울창한 나무들이 시끄러운 새소리와 새똥만 준게 아니었다. 우리 집과 이 무반 안에서 일하는 분들의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난 이제 매일 아침 커튼을 걷고 앙상해진 나무를 보며 언젠가 울창해질 그날을 기다린다. 물론 너 무 이파리들이 자라 전선을 감싸면 다시 잘라지겠지만 또 자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에 가지가 자라고 이파리가 커지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어쩌다 불 어온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따스한 그리움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하 게 속삭인다.


“더 혹독한 추위 속에 더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는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