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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단편소설] 아내
작성일
2022.01.12

단편소설 - 우수상

아내

이 영 미 [케냐]


도톰한 커튼을 살짝 올려보니 투명한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혀있었다. 오늘은 컨디 션이 좋으니 회사에 일찍 나가봐야겠다. 지금쯤 마이나는 마른 수건으로 차에 묻어 있는 빗물을 닦아 내고 있을 것이다. 그의 나이가 아마 50살쯤 되었으니 나와 일한 지도 25년이나 되었다. 내가 개인 운전사를 고용하게 된 이유는 마타투라고 불리는 봉고차 운전사들 때문이었다. 운전기사들이 워낙 거칠게 차를 모는 바람에 출퇴근하 는 시간에 매일 지옥 같은 경험을 했다. 그동안 내 차를 몰던 많은 운전사들이 있었지 만 그중에 마이나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아직까지 마이나에게 적응이 안 되는 한 가지가 있다. 그의 몸에 배어있는 고수와 양파가 섞인 냄새다. 나는 워낙 후각이 예민해서 가끔씩 차 안에서 그의 냄새가 나면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만약 오늘이 그날이라면 마이너에게 꼭 말해 줄 것이다.

‘출근할 때는 꼭 씻고 오라’고  말이다.

귀밑에서부터 턱 아래까지 꼼꼼히 면도를 했다. 옷장 옷걸이에 걸려있는 양복 중에 서 네이비 색깔의 정장을 꺼냈다. 잘 다려진 옅은 핑크색 와이셔츠를 입고 오랜만에 넥타이를 목에 매었다. 왁스에 물을 살짝 섞어 머리카락에 발라 빗어 넘기니 제법 멋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은 호텔 잠보실에서 케냐 젊은 사업가 200명이 모여 아보카도로 기름을 만들 어 해외에 수출하는 사업을 논의하는 컨퍼런스가 있다. 거울을 보며 다시 한번 옷맵 시를 고쳤다. 발밑에서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만 빼놓으면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기분 이 좋은 아침이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가정부 모린이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허둥지둥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놀란 눈으로 이층을 향해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마담, 마담”
등 뒤에서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보면 몰라? 출근하지, 오늘은 스케줄이 많아서 바쁠 것 같아.”
나는 신발장 안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오래된 검은색 구두를 꺼내 들었다.

“정말 왜 그러세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작은 체구의 아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 사람이 왜 그래?”
“호텔에서 퇴직한 지 벌써 10년이나 되셨어요.”
아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나를 전신 거울 앞에 세웠다.

“지금 연세가 60세도 아니고 70세도 아닌 80세라고요.”
거울 속 얼굴은 눈가만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좋아 보였다. 아랫배는 제법 나왔지만 나름 옷맵시도 살아있다.

멋처럼 기분 좋게 출근을 하는데 아내는 나에게 나이를 확인시키며 소란을 피웠다. 나는 아직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쳤고 사람들과 약속 시간도 잘 지킬뿐 아니라 기억력 까지 좋은데 말이다. 큰 소리로 나에게 표독스럽게 말하던 아내는 평소 내가 알던 모 습이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아내와 한바탕 소란을 피웠더니 무척 허기가 느껴졌다. 식탁에 준비 되어 있는 식빵에 달달한 살구 잼을 바르고 구운 소시지를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삶은 계란을 식탁에 탁하며 깨뜨리는 순간 아내보다 모린이 더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 다. 모린만 조용했더라면 나는 지금쯤 호텔 사무실에서 최고급 케냐 AA 커피를 마시 고 있었을 것이다.

어제 모린이 퇴근하면서 그녀의 가방 안에 토마토 3개와 양파 2개를 넣어 간 것을 눈감아 준 사람은 나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모린이 내 옷 장을 뒤졌는지 양말 몇 결례와 새 팬티 몇 장이 안 보였다.

달달한 바나나를 입속으로 집어넣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수건 밑에 넣어 둔 봉투가 생각이 났다. 수건을 차곡히 정리해둔 수납장 안쪽에 현금을 넣어 두었던 것이다. 급 한 일이 생기면 손쉽게 현금을 꺼내 쓰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나는 급한 마음으로 발밑 에 질질 끌리는 슬리퍼를 고쳐 신고 2층으로 올라갔다.

호텔에서 35년을 일한 김명진이다. 그동안 못 볼 것, 볼 것 다 본 사람이다. 나이로 비 라피키 호텔에서 일하면서 직장이든 집이든 차 안이든 물건 위치가 조금이라도 바 뀌면 금방 알아채는 습관이 생겼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방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 갔다. 수건 수납장 깊숙이 손을 넣어 구석구석을 뒤져 보았다. 제일 안쪽에서 거칠고 두툼한 봉투가 잡혔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운 마음이 교차했다.

‘두고 봐……. 모린, 한번 꼬리가 잡혀 보라고…….’
이번만큼은 증거가 잡히면 아내와 단판을 지을 것이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날씨가 흐렸다. 현관문 위 시곗바늘이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누가 볼 새라 하얀 대문을 살짝 열었다. 높은 담 자락을 따라 몇 보 걸어가니 도로 위로 차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직진으로 20분 걸으면 로터리가 나올 것이다. 로터리 가운데 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하얀 시계탑이 서있다. 시계탑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느린 걸 음으로 15분쯤 가면 강 사장 집이 나오고 왼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30분 걷다 보면 큰 성당이 나온다. 그리고 시계탑에서 직진으로 20분만 걸어가면 왼편으로는 아프리카 UN본부, 건너편으로는 미 대사관이 나온다. 그 지점에서 빠른 걸음으로 5분만 더 가면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자바 하우스’라는 커피숍이 나온다. 내가 이 동네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으니 어느 곳이든지 찾아다닐 만큼 길눈이 훤하다.

시계탑에서 시작될 나의 산책 코스는 직진 코스다. 심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양다리 에 힘을 주며 한 발을 떼려는 순간 등 뒤에서 숨이 찬 목소리가 들렸다.

“무제(Mzee), 무제(Mzee), 어르신”

마이나가 언제 뒤좇아 왔는지 나의 오른 손목을 ‘휙’ 낚아챘다. 그 바람에 온몸이 휘 청거렸다.

“어르신, 밖에 나가실 때 혼자 다니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오늘만큼은 마이나를 따돌리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쳐 버렸다. 로터리 가운데에 서 있는 시계탑 시곗바늘이 오전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매일 이 시간 아내는 조용한 집안에 음악을 틀어 놓고 성경을 필사하거나 기독교 방송을 본다. 가끔은 찬송가를 크게 틀어 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나이로비 에 한인교회가 있지만 아내는 한사코 현지 교회를 다닌다고 고집했다. 집 가까이에 있는 교회는 한국의 대형교회처럼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들이 다닌다. 처음 예배를 참석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찬양 시간이 되자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영어와 스왈 리어를 번갈아가며 40분 이상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춤을 추웠다. 이후 사람들 이 자리에 앉자 정장을 입은 남자분이 앞으로 나와 말을 하자 청중들은 그의 말에 연 신 “아멘, 할렐루야”라고 화답했다. 내가 듣기에는 분명 설교가 맞았다. 그러나 또 다 른 신사분이 마이크를 잡자 그는 1시간 넘도록 설교를 했다. 설교시간 내내 졸음과 사 투를 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0시에 시작한 예배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집 담벼락이 보이자 갑자기 아랫배가 팽팽해졌다. 외출하기 전에 미리 볼일을 봤는데 방광이 꽉 차 올랐다. 걸음걸이가 마음과 다르게 더뎠다. 마이나가 커다란 대 문을 재빠르게 열어젖히자 나는 얼른 현관문을 열고 화장실을 찾았다. 분명 같은 자 리에 있어야 할 화장실이 안 보였다. 35년 동안 살고 있는 집인데 화장실이 안 보이니 당황스러웠다. 불안한 눈으로 아내를 찾는 동안 발밑으로 미끄러져 나온 오른발이 신경에 거슬렸다. 점점 아랫배가 터질 것 같아 발자국을 내딛기조차 힘들었다. 부엌 한 쪽에서 조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오븐 앞에 서 있는 아내 에게로 갔다. 아내의 왼쪽 발꿈치를 살짝 잡아당기자 뒤집개를 들고 있던 그녀가 놀 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내 옆에 서 있던 인도 여자가 눈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내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상하네……. 화장실이 안 보이네.”

아내는 뒤집개를 팽개치고 나의 오른손을 잡아끌었다. 부엌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 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짙은 갈색 문이 보였다. 아내는 잽싸게 문을 열고 나 를 밀어 넣었다. 하얀 변기 앞에 서니 마음이 급해졌다. 벨트를 제치고 재빠르게 바지 지퍼를 내렸다. 변기 안으로 쏟아지는 노란 액체를 보니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현기증 이 일어났다.

볼일을 보고 나오니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시켰다.
“손은 씻으셨어요?”
“당연하지, 매번 확인은 왜 해?”
아내는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폈다.

“크리스틴에게 집을 내놓는다고 말했어요. 크리스틴 남편이 부동산 사업을 하는 거 아시죠? 우리 집 판매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조금 전 부엌에서 보았던 여자가 크리스틴인가 보다. “나와 상의 한마디 없이 집을 판다고?”

아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몇 개월째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도 이야기했고 그 전날에도 얘기했는데…….”

“요즘이라니……. 무슨 말을 했다는 거야.”

아내는 미간을 좁히며 먹다 만 부침개 위에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 매일 1시간씩 산책을 하고 특별히 노래를 좋아 해서 이층 거실에 노래방까지 설치했다. 1주일에 한 번은 동요, 가요, 팝송, 성악까지 부른다. 아내는 지난번 아침에는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몰아 새우더니 오늘도 마 찬가지다

나이로비에서 45년 동안 살면서 아내는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사람은 나였다. 나의 정년퇴임 이야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아내는 일사천리로 넓은 정원 한쪽에 게스트하우스를 짓 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정원이 있는 집은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 다며 말이다. 그 랬던 그녀가 요즘 부쩍 집을 팔려고 하는 것이 아무래도 나 몰래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이 분명했다.

아내의 부모님은 작은 교회를 중형교회로 성장시키셨고 같은 교회에서 명예롭게 퇴임하셨다. 장인은 목회를 하기 전에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시면서 종종 방글라데시 와 베트남으로 출장을 다니셨다. 어느 해 장인은 베트남으로 출장을 갔다가 영적 경 험을 하고부터 잘 드시던 술과 담배를 끊고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아내는 4남매 중 첫째 딸로 온순하게 성장했고 중학생 때부터 예배 시간에 피아노 반주를 했다. 그녀 의 활동 영역은 집과 교회 그리고 학교가 전부였다

우린 대학생 때 봉사 동아리에서 만났다.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간 학생들은 20명 이었는데 1주일 동안 짜증 한번 안 낸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취업을 앞둔 27살의 나 는 여름방학이 끝나가기 전에 아내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나는 아내와 연애를 하 면서 아주 가끔씩 집 앞에 있는 교회에 다녔다. 마음속으로 아내와 결혼을 생각하고 는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부모님은 사윗감이 믿음이 약하다며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장인은 주일예배만 큼은 꼬박 나오는 나를 지켜보시고 결혼 조건으로 8주 동안 본인과 일대일 성경공부 를 제안하셨다. 내가 세례를 받던 날 교회 분들은 희남 자매는 천사 중의 천사라며 그 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내와 살다 보니 그녀의 마음은 천사 중에 천사였 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5년째 되던 해 기다렸던 아기를 낳았다. 케냐로 떠나는 세 식구를 위해  교회 분들은 축복의 기도를 해 주셨다. 아내는 생후 6개월 된 딸아이를  안고 나이로비로 오는 내내 평온해 보였다.

오늘은 강 사장 집에 가서 꼭 물어볼 일이 있다. 시곗바늘이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이나, 마이나 와피(Wapi)? 와피(Wapi)?”
늘 이 시간이면 현관문 밖에 있어야 할 마이나가 안 보였다.
“마이나, 마이나 어디 있니? 어디 있어?”
케냐 차이를 마시던 마이나가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뛰어 왔다.
“꾸엔다 (Kuenda) 은제(Nenje), 밖에 나가자!”
“무제(Mzee), 싸와(Sawa), OK!”

하루 중 나와 마이나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요즈음 아내는 밖에 나가는 나에 게 마이나를 따라 붙였다. 내가 이 동네에 집을 사게 된 계기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안 전하고 길거리가 깨끗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값이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국제 학 교와 각 나라 대사관들이 밀집되어 있고 인근 거리에 편리한 쇼핑몰이 있어서 이기도 하다. 나름 부유한 동네라고는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 철에는 수돗물 색깔이 붉은색에 가깝고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면 전기가 불안전한 것은 여전하다.

아내는 마이나에게 분명히 주의를 주었을 것이다. 한시라도 나에게서 눈을 돌려서 는 안 된다고 말이다. 우리 집에서 월급을 받는 현지인 중에 그나마 한국말을 잘 알아 듣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마이나다. 내 성격이 급하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내 걸음걸이가 빨라지자 뒤에 좇아오는 마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제, 천천히, 천천히.”
“마이나, 하쿠나 마타타. 걱정하지 마.”

양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려 앞뒤로 돌려 보았다. 제법 팔이 잘 돌아갔다. 그나저나 아내와 마이나가 나를 늙은이로 취급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기회를 봐서 한 번쯤 마이나에게 혼쭐을 내주고 싶어졌다.  

“무제, 무제, 노우, 노우, 안 돼, 안 돼.”

한 문장에 스왈리어와 영어, 한국말까지 섞어가며 말하는 마이나가 참 기특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맞은편에서 어느 집 가드너가 사냥개 종류의 커다란 개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매 일 같은 시간에 두 마리 개를 산책시켰다.

“무제, 잠보.”
“잠보, 잠보.”

내 뒤에 따라오는 마이나와 그는 악수를 하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것이다. 말하 는 것을 좋아하는 현지인들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도 곧잘 이야기를 잘하니 가드너와 마이너는 매일 보는 사이니 할 말이 더 많을 것이다. 마트 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직원들끼리도 무엇이 좋은지 깔깔거리며 대화를 한다. 직장에 출근을 했으면 일을 해야지 잡담을 하는 것도 부족해서 어느 때는 아예 일손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그나마 인도 사람들이 주인인 가게에 서는 감시 어린 눈초리에 수다는커녕 한순간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나는 마이너와 가드너가 악수를 하며 인사를 주고받자 마이나의 레이더에서 벗어 나기 위해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마음처럼 발이 바삐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 아쉽지 만 로터리에 하얀 시계탑이 보이자 속도를 내어 걸었다. 시계탑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금방 나오는 강 사장 집에 가서 CCTV 설치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다.

시계탑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선 것 같은데 도로가에 있는 강 사장 집 검은색 대문이 안 보였다. 나는 ‘애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언덕길이 나오더니 내림 길이 나왔다. 다시 언덕길을 오르니 커다란 기와집 같은 중국 레스토랑이 보였 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 티셔츠가 흠뻑 젖었다. 식 당이 가까워지자 기름진 중국음식 냄새가 허기진 배를 유혹했다. 한참을 걸었더니 다 리에 힘이 빠져 걷는 것이 힘에 부쳤다.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가서 작은 연못 앞 테이 블에 자리를 잡았다. 뒤따라오던 마이나는 생각조차 안 났다. 중국 식당에서 자주 먹 었던 계란 볶음밥과 땅콩이 뿌려진 청경채 볶음, 씨즐링 돼지고기볶음과 튀긴 양파를 밑에 깔은 치킨 윙을 주문했다. 물론 따끈한 중국차도 시켰다. 나온 음식을 정신없이  먹다 보니 배가 불러왔다. 배도 부르고 햇볕이 어깨 위에 내려앉으니 졸음이 쏟아졌 다.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한참이나 이렇게 졸고 있었나 보다. 잠 기운에 정신 이 몽롱한데 가까운 곳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제, 무제”

당황한 표정으로 마이나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로 작은 체구의 아내가 종종 걸음으로 들어왔다. 터줏대감처럼 동네에 오래 살면서 나와 아내가 자주 오던 식당인 지라 사장이 나를 알아보고 아내에게 전화로 일러 주었다고 한다. 마이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밥 한 끼를 식당에서 혼자 먹었을 뿐인데 다들 야단법 석을 떨었다. 마이나의 온몸이 땀에 젖은 것을 보니 꽤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맸나 보다. 그나저나 마이나에게 말해 줄 것이다.

‘제발 쫌, 쫌, 샤워 좀 하고 다니라고 말이다.’

“마이나, 마이나 오늘은 시계탑까지만 산책을 가자.”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마이너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늘 웃음이 많은 마이나인 데 말이다. 산책을 하면서 나는 슬쩍 마이나의 손을 끌어당겼다. 아침부터 뾰로통하 던 마이나의 얼굴에 웃음이 보였다. 마이나가 자주 흥얼대던 노래를 불렀다.

「 잠보? 잠보 부와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르신.)      
하바리 야코? 무주리 싸나.      
(오늘 어떠세요? 아주 좋습니다.)      
와게니, 와카리비시와.
(손님들, 환영합니다.)      
케냐, 하쿠나 마타타.
케냐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

사실 이 노래를 부를 때 속으로 비웃었다. 케냐에 무슨 걱정이 없단 말인가? 문제 는 가는 곳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말이다.

어느 나라든 부정부패가 없는 곳은 없겠으나 나는 아직까지도 눈속임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꼴을 못 본다. 무슨 일이라도 할라 치면 약속 시간 안 지키는 것은 기 본이다. 말로는 뭐든 다 된다고 호언장담 해 놓고 막상 당일이 되면 진행된 일이 하나 도 없었다. 내 생각에는 문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가장 큰 문제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일이 결정되면 신속하게 처리를 해야지 직성이 풀린다. 만약 현지인들에게 일을 보채기라도 하면 “볼레, 볼레, 천천히”라며 오히려 나를 진정시켰 다. 결국 인내의 한계가 오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늘 나였고 인격이 부족한 나쁜 사람이 돼 버렸다.

라피키 호텔에서 내가 과장으로 일을 시작한 나이는 35살부터였다. 젊은 남아공 사 장은 호텔 물건이 말도 안 되게 사라진다며 나에게 주방과 식당, 룸에 제공되는 물품 까지 확인하라고 했다. 케냐인 제임스가 물품 담당이었지만 사장은 그를 믿을 수 없 으니 내가 직접 하기를 원했다. 서비스 쪽 일은 물건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리 스트에 적혀있는 물품과 실제 물건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라피키 호텔이 나이로 비에서 수준 높은 곳인데 레스토랑에서 종종 이가 나간 접시와 컵을 손님들이 사용하 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제임스는 호텔에 가끔씩만 보이더니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름 제임스를 신뢰하고 있었던 터라 운전기사를 앞세워 그가 사는 집으로 갔 다. 호텔에서 1시간을 달려간 곳은 ‘강게미’라는 동네였다. 복잡한 시장 골목을 간신 히 빠져나와 사람들에게 물어 제임스 집을 찾아갔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큰 차가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길은 좁았고 오래전에 비에 쓸려 내려간 흙길이 나오자 더 이 상 차가 올라갈 수 없었다. 결국 운전기사와 나는 아내가 챙겨준 선물 보따리를 양손 에 들고 언덕을 한참이나 올라갔다. 조용하던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아이들 눈에 동양인인 내가 신기하게 보였던지 “무중구, 무중구” 외국인이라 며 뒤쫓아왔다.

제임스가 사는 집은 다른 집에 비해 그나마 좋아 보였다. 바나나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벽돌로 지어진 집에 지붕은 양철이었다. 제임스는 핏기 없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나는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고 그는 “무주리, 싸나” 괜찮다며 힘없이 웃 기까지 했다. 그의 아내에게 밀가루와 쌀, 식용기름, 설탕과 고기를 선물로 내밀었다. 임신 막달인 듯 한 그의 아내는 우리를 위해 홍차와 생강 비스킷을 내왔다. 그녀가 머 그컵에 홍차를 듬뿍 채웠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컵을 들어 올렸다. 눈에 익은 하얀 컵 위에 ‘라피키 호텔’이라고 인쇄된 글자가 보였다. 컵뿐 아니라 티스푼, 포크, 쟁반까지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기분 나쁜 표정이 고스란히 얼굴로 드러났을 텐데 이상하리 만큼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제임스의 고향은 빅토리아 호수 근처라고 했다. 나이로비에서 버스로 16시간 이상 비포장도로를 달려가야지만 그의 부모와 형제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집안의 대들 보처럼 큰 아들인 제임스는 100불이 안 되는 돈으로 자신의 가족과 부모와 형제들까 지 돌보며 살고 있었다. 정작 자신은 결핵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에 입원조 차 할 수 없었다. 나의 권유로 제임스는 병원에 입원했지만 그는 호텔에 출근하지 못 했다. 제임스의 장례식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치러졌다.

전 생각에 빠져드니 마음이 착잡했다. 앞서 걸어가던 마이나가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무제, Are you OK?”
“마이나, I am OK, 무주리 싸나.”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한 옥탑 올라간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조금 전에 부동산 사업하는 크리스틴의 남편 소개로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있었 어요. 집을 언제 팔 수 있냐고 묻기까지 한걸 보면 우리 집이 맘에 든 것 같아요.”
“집을 사고팔 때 조심해야 해. 여기 사기꾼들이 많은 거 알고 있지? 지난번 사건 기 억 안 나? 딜러가 사기꾼들과 짜고 내 차 상태를 확인한다며 집 밖으로 끌고 나가서 어떤 짓을 했어? 동네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세큐리티 직원들이 발견하지 못했으면 큰코다칠 뻔했었다고.”

한숨 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 나오자 아내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깐, 이곳을 빨리 정리하고 떠나요.”

우리 부부는 케냐에 온 지 10년째 되던 해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입했다. 직장 생활로 모았던 돈과 신혼집으로 샀던 작은 아파트를 팔아 나이로비에 1,200평이나 되는 오래된 집을 샀다. 아내는 오래된 집은 맘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넓은 정원은 좋 아했다. 아내는 가장 좋은 잔디를 정원에 심었다. 정원 한쪽에는 코스모스 씨를 뿌리 고 보라색과 흰색 그리고 분홍색 수국을 심었고 도로 쪽 담가로는 파파야와 아보카 도, 바나나 나무를 심었다. 평평한 정원 밑으로 비탈진 곳에는 빼곡히 로즈메리와 라 벤더, 민트 등 각종 허브를 심었고 아래쪽 땅에는 상추와 부추, 대파, 고추, 쑥갓, 알 타리와 얼갈이 그리고 삼겹살 구이에 빠질 수 없는 깻잎을 심었다.

아내는 한국을 방문할 때면 사다 나른 빨간색 목장갑을 끼고 호미로 밭을 일구며 매일 식물과 야채에 물을 주었다. 사실 나는 정년퇴임을 하면 한국에 가서 살고 싶었 지만 오히려 아내는 이웃집 담을 따라 다섯 채의 게스트 하우스를 지었다. 방안에는 각각 화장실을 넣었고 작은 거실에는 소파와 식탁, 부엌 쪽으로는 오븐과 세탁기, 냉 장고와 식기류를 준비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는 무척 행복했다.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은 인생 제1막을 내려놓은 나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쳤다.

허브에 물을 주는 사이 고향 후배인 강 사장이 찾아왔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렸 지만 강 사장은 사려가 깊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강 사장이 우리 집에 올 때면 동네에서 먼 한국 빵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단팥빵과 찹쌀 도넛, 생크림 빵을 사 온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식사는 잘하시죠?”
“그렇지 뭐……, 요즈음 자네 사업은 어떤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손님들이 안 온 지 오래되었어요. 여행사 사무실 월세는 계 속 나가고……. 그래서 최근에 사무실을 정리했어요.”
“아이들이 한창 크는 나이인데, 걱정이 많겠어?”
“모두 힘든 시기이니 이번에도 잘 견뎌야죠.”
“그나저나 자네 아내는 잘 있나?”
“선배님도 알다시피 아내는 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요즘 들어 한국에 계 신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다고 하네요. 케냐에 살면 살수록 사는 게 지친데요. 어제도 셋째 고등학교 졸업하면 한국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강 사장, 우리 아내도 요사이 그런 소릴 자주 한다네.”
강 사장은 마시던 새콤한 패션 주스가 목에 걸렸는지 기침을 해댔다. 나는 강 사장 과 헤어질 때 주먹으로 악수를 대신하며 봉투를 그의 주머니에 살짝 넣어 주었다. 뒤 를 돌아보는 강 사장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강 사장, 아이들과 함께 외식 한번 하게.”

강 사장이 우리 집에 오던 날 그에게 중고 CCTV 구매를 부탁했었다. 일머리가 좋 은 강 사장은 내 방에 CCTV를 직접 설치해 주고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달아 주었다. 나 대신 기억해 놓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든든했다.

이번에는 아내가 나를 믿어 줄 것이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내는 딸 대학 입시를 위해 한국에 6개월 동안 나 가 있었다. 아내는 주방을 담당하는 마마 사이먼에게 된장과 김치찌개, 미역국을 끓 이는 방법을 가르쳤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과 계란말이 그리고 비빔밥과 깍두 기, 배추김치 담그는 법까지 전수해 주었다. 가정부로 갓 일을 시작한 모린에게는 내 와이셔츠와 속옷을 다리는 방법이며 세탁한 옷을 어느 곳에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꼼꼼히 일러 주고는 딸과 함께 한국으로 출국했다.

마침 강 사장이 사업 리서치를 위해 우리 집에 머물게 되어서 나는 그를 위해 1층에 있는 방을 내주었다.

모린은 두 남자의 옷 세탁과 다림질을 하고 매일 아침마다 구두가 윤이 나도록 닦 아 놓았다. 정이 많은 강 사장은 모린에게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 팁을 챙겨주곤 했다.

연휴가 낀 주말이었다. 나는 금요일 저녁에 한국 청년들을 집에 초대해서 양고기 숯불구이와 함께 술을 거하게 마셨다. 다음 날 아침 나와 강 사장은 숙취로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아래층에서 강 사장이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옷 바람으로 나는 그가 머무는 1층으로 뛰다시피 내려갔다. 그의 방 한 가운데에는 연휴와 휴일에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모린이 서 있었다. 모린이 정신없 이 자고 있는 강 사장 침대로 살그머니 들어왔던 것이다. 다정다감한 강 사장의 성격 이 아이 둘을 데리고 고되게 살아가는 젊은 싱글 맘에게 큰 사랑으로 다가왔던 것이 다.

나는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모린을 우리 집에서 당장 잘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내는 모린은 잘 못한 게 없고 착각하게 만든 강 사장의 실수라며 오히려 그녀를 두둔했다. 아내는 집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매번 이런식이었다.

오래전, 나의 결혼반지가 모린 앞치마에서 나왔을 때에도 아내는 나보다 모린을 믿 어 주었다. 모린은 청소를 하다가 침대 밑에서 반지를 발견했을 뿐이고 잠시 자신이 보관한 것이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내가 믿어 주지 않는 눈치이자 그녀는 아내에 게 직접 주려고 했다며 억울한 듯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나는 직장에서 수도 없이 이런 일들을 보았다. 직원들은 해가 지고 어두운 저녁이 되면 호텔 가시나무 울타리 사이에 맥주와 와인을 숨겨 놓았다가 퇴근할 때 내 눈을 피해 챙겨갔다.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케냐에서 터 득한 기술이 있는데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은 절대로 눈감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가장 잘 먹혔던 방법은 발각되는 즉시 일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었다. 나 름 직원들을 다루는데 효과가 있었다. 이것이 내 철칙이고 신념이고 정의였다. 그러 나 집에서만큼은 내 방칙은 통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 의견보다는 현지인들의 말을 더 믿어주었다. 아내는 진짜 천사가 아니면 바보 멍청인 것이 틀림없다.

CCTV 화면으로 작은 체구의 여자가 2층 거실에서 왔다 갔다 했다. 화면 속에 보이 는 여자가 아내 장희남인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한 달 동안 녹음된 CCTV 화면을 돌려 보고 싶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괜 스레 말소리를 죽이며 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사장, 강 사장 나야.”
“안녕하세요? 선배님 무슨 일 있으세요?”
“강 사장, 자네 오늘 시간 괜찮으면 우리 집에 와 줄 수 있나?”
모린과 아내에게 무시당했던 일들이 머릿속으로 스치면서 말할 수 없는 희열감이 생겼다. 방 안에서 서성이던 나는 2층 거실로 나왔다. 끝내 불편한 다리를 끌고 아래 층까지 내려와서 강 사장을 기다렸다. CCTV 카메라 한 대는 2층 거실, 한 대는 부엌 그리고 지금 내가 서있는 1층 거실과 한 대는 내 방에 설치되어 있다. 강 사장만 오면 한 달 동안 녹음된 영상을 돌려 볼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강 사장을 조용히 이층으로 데리고 올 라갔다. 한참 동안 화면 속은 지루할 정도로 같은 모습이 반복되었다. 넓은 집안에서 불편한 다리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 매일 똑같은 시간에 모자를 눌러쓰 고 현관문을 열기 전에 거울을 한번 쳐다보고 나가는 사람 그리고 1시간쯤 지나자 현 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나였다. CCTV 필름에는 모린 모습이 가장 많이 찍혀 있었고 그녀는 아침 8시에 출근을 해서 오전 내내 반쯤 허리를 굽히며 집안 바닥 청 소와 부엌일을 하다가 오후 4시가 되자 빨래를 걷어 접었고 다림질은 이틀에 한번 꼴 로 했다. 시곗바늘이 정확히 오후 5시를 가리키면 모린은 퇴근을 했다. 그동안 주방 일을 하던 아줌마는 코로나19 때문에 게스트 하우스에 손님이 없어서 잠시 휴가 중 이다. 주방 아줌마 모습은 CCTV 필름에는 그림자조차 없으니 녹음된 영상에는 나와 아내와 모린 그리고 가끔 차를 마시러 오는 강 사장과 아내의 젊은 친구 크리스틴이 라는 인도 여자가 전부였다. 영상 속에서 아내는 2층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가끔 누 군가와 통화를 하며 메모를 했다. 단조로운 행동이 반복되자 나와 강 사장은 번갈아 가며 하품을 했다. 영상이 막바지에 이르자 나는 집중해서 화면을 뚫어져라 지켜봤 다. 오후 5시가 되면 퇴근해야 할 모린이 내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강 사장의 손등을 두드리자 그는 화면에 눈을 집중시켰다. 모린 은 CCTV 카메라를 등지고 양복과 와이셔츠를 보관하는 옷장 문을 열었다. 그녀의 손 이 옷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 내려갔다. 점점 빨라지는 손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모린이 손을 멈추더니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다. 강 사장이 화면 을 멈추고 그녀의 손을 확대시켜보니 동백꽃 모양의 브로치였다. 지난 12월에 한국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 온 강 사장 부인에게 부탁한 선물이었다.

올해 11월은 나와 아내 장희남의 결혼 50주년이다. 깜빡 잊고 있었던 물건을 모린 이 찾아낸 것이다. CCTV 화면을 함께 지켜보던 강 사장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 았다.

지금껏 혼자 의로운 척, 착한 척, 이해심 많은 척하던 아내에게 꼭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그동안 아내에게 무시당했던 일들을 꼭 보상받고 싶었다. 모린을 미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오히려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짜릿했다.

“강 사장, 자네도 봤지? 오늘은 반드시 아내와 결판을 내야겠네.”
나는 강 사장에게 아내를 불러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강 사장은 우리 부부가 이런 일 로 말싸움을 하던 것을 알고 있었다. 강 사장이 쭈뼛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것을 머뭇 거렸다.
“자네, 왜 그러나, 자네도 내 억울한 마음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강 사장은 무슨 고백이라도 하듯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선배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말씀을 드리려고 했었는데 상황 이 안되었어요.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거실로 나가서 이야기해요.”
따뜻한 물을 갖고 온 강 사장은 급한 내 성격을 식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물 한 모금을 삼키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에 놀라지 마시고 잘 들으세요. 제가 누님이라고 불렀던 선 배님의 아내 분은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던 분이세요. 선배님, 누님은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세요. 6개월 전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이 사람이 왜 그래, 자네도 CCTV 영상 속에서 아내를 봤잖은가. 살아있는 사람이 죽었다니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해.”
“선배님, 선배님은 지선이를 누님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지금 이 집에 있는 사람은 누님이 아니라 선배님의 딸 김지선이에요.”
“자네……. 안 되겠네. 여보! 여보! 어디 있어? 장희남! 장희남! 이리 좀 와봐.”

나는 직접 아내를 찾기 위해 일어섰다. 갑자기 머리가 핑 하고 돌자 몸이 휘청거렸
다. 강 사장이 나를 부축해 소파에 다시 앉혔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강 사장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켜서 TALK라고 쓰여 있는 노란색 화면을 눌렀다. 강 사장 이름 밑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보였다. 그는 김명진이라는 이름을 찾아 화 면을 눌렀다. 바탕화면에는 나와 연배가 비슷한 여자가 내 팔에 팔짱을 끼고 활짝 웃 고 있었다. 사진 속 여자는 우리 집에 있는 아내와 무척 닮아 보였다. 그녀가 누구인 데 나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일까…….

“선배님과 팔짱을 끼고 있는 분이 장희남 누님입니다. 선배님 아내이시고요”
강 사장은 다시 김지선이란 이름을 눌렀다. 사진 속에는 도도한 표정의 젊은 여자 가 나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이 사람이 아내 장희남이 아니고 딸 김지선이란 말인가?”
“네. 선배님, 두 분은 6개월 전에 골프장에 갔다 오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비탈길에서 큰 트럭이 추월하면서 선배님의 랜드 크루저를 박아 낭떠러지로 굴렀고 요. 사고가 나자마자 두 분은 앰뷸런스로 아가칸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누님은 응급 실에서 1주일 만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지선이에게 두 분 소식을 알렸고 따님은 소식 을 듣자마자 케냐로 온 것이에요. 저와 지선이가 누님 장례식을 치렀는데 그때 선배 님은 응급실에 계셨어요. 신의 도움으로 선배님은 3개월 전에 퇴원하셨지만 사고 후 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신 거예요.”

강 사장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나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래층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눈을 뜨니 지 금까지 아내라고 믿고 있었던 딸 김지선이 눈앞에 서 있었다.

“아빠, 죄송해요. 제가 먼저 아빠에게 엄마의 소식을 말했어야 했는데, 아빠가 저 를 엄마라고 믿고 계셔서 아직까지 말씀을 못 드렸어요. 제가 아빠의 외동딸 김지선, 엄마 품에 안겨 나이로비에 온 딸이에요.”

어디에서부터 기억이 엉켜버린 것일까. 강 사장과 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나는 지선에게 말을 꺼낼 기운조차 없어서 눈으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딸 지선이는 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건너편 소파에 앉아 있는 강 사장은 착 잡한 표정이었다. 지선이는 두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조심히 말문을 뗐다.

“저는 혼자 자랐지만 아빠의 넉넉한 월급으로 좋은 집에서 살았고 나이로비에서 비 싼 국제 학교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3년 동안 교육을 받았어요. 저는 고등학 교 졸업을 하면서 한국으로 떠났고 졸업 후 처음으로 케냐에 왔어요. 1년에 한 번 아 빠와 엄마가 한국으로 오셔서 한 달 동안 저와 시간을 보내셨고 가끔 유럽에서 만나 서 여행을 다녔고요. 2년 전 스위스로 여행을 함께 갔었는데 기억나시죠?”

말없이 앉아 있던 강 사장이 지선의 말을 거들었다.

“스위스 여행을 갔다 오시면서 저희 막내에게 초콜릿 하고 목각으로 만든 소 인형 을 선물로 사다 주셨잖아요. 선배님과 누님은 젊었을 때부터 주말이면 집에 한인 분 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셨어요. 나이로비에 사는 한인들 중에 선배님 댁 양고 기 야마 초마(숯불고기)를 안 먹어 본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겁니다. 케냐에 근 무하는 S상사와 L상사 직원들과 대사관분들 그리고 미국, 캐나다, 영국 시민권을 갖 고 있는 한인들까지 초대하셨잖아요. 제가 케냐에 처음 왔을 때 한국 교환학생들과 NGO 단체에서 근무하던 청년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먹고 술을 거하게 마셨다가 다음 날 아침에 제가 모린에게 혼쭐났었고요.”

꽉 다문 내 입술 사이로 쥐어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장희남은…….”
“엄마는 ……. 거실 장식장 위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계세요.”

CCTV 한쪽 화면 안에는 넋이 나간 사람이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다른 화면에는 2층 거실과 아래층에 있는 부엌과 1층 거실이 보였다. 현관문 옆에 커다란 전신 거울 이 보였고 왼쪽으로는 브라운 색 엔틱 장식장이 보였다. 장식장 한가운데에 옅은 옥 색 용기가 놓여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들여다보니 용기 가운데 붉은색으 로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몇 시간째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는지 다리가 굳어 일어서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나는 불편한 다리를 슬리퍼에 집어넣고 천천 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장식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심장이 벌렁거리는 소리가 귀까 지 들렸다. 코끝에 타이어 타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CCTV 화면으로 보았던 사기 모양의 용기가 눈앞에 보였다. 용기 겉에는 ‘고 장희남 여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안에 아내가 있다니……. 여기에 장희남이 있었다니…….’
아내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아내를 소록도에서 처음 만났던 날, 케냐에 6개월 된 딸 지선이를 품에 안고 오던 모습, 정원을 꾸미며 행복하게 웃던 아내의 모습이 주마 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엠보셀리 공원으로 달리는 차 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보였다. 운전하는 마이나에게 시원한 데톨 비누냄새가 풍겨 났다. 마이너 옆에는 강 사장이 앉았고 뒷 자리에는 딸 지선이와 내가 앉았다. 우리는 킬리만자로 산을 보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가고 있다. 한국의 겨울이 그리울 때면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산을 보러 왔던 아내를 위해서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뒤좇아 오던 사파리 차 한 대가 앞서 나가며 뿌연 흙먼지를 쏟아 냈다. 울퉁불퉁한 흙길을 따라 차가 움직였다. 내 품에 안겨 있는 아내의 유골함 이 흔들거리며 춤을 추었다.

오늘은 아내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 그녀가 킬리만자로 산과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잠시 차를 멈추었다. 멀리 지나가는 코끼리 가족들에게도 안녕을 고했다. 나 의 주름진 손가락 사이로 아내의 유골이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 갔다.

광활한 초원으로 흩어지는 아내의 영혼이 마치 킬리만자로의 산 정상을 향해 날아 가는 나비 떼처럼 보였다.

어디에선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냐 하쿠나 마타타, 김명진 하쿠나 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