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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수필] 결혼반지 이야기
작성일
2022.12.12

일반산문 부문(수필) 가작


결혼반지 이야기

윤 덕 환 (미국)


매년 결혼기념일이 되면 결혼반지로 겪었던 일로 쓴웃음을 짓게 된다. 우리 부부는 1980년 LA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20분 전, 하얀 턱시도를 입은 나는 식장으로 들어오는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신부는 대기실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때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 예식을 준비하시는 분이 결혼반지를 못 찾겠다고 내게 달려왔다. 대기실에 있던 신부에게 물으니 깜박 잊고 안 가지고 왔다며 당황해한다. 아찔했다. 곧 예식을 시작해야 해서 급한 마음에 교회 청년회장에게 끼고 있는 결혼반지를 잠시 빌릴 수 있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다. 괜히 물어본 꼴이 되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갈 수는 없고 내가 급히 차를 몰고 신부의 아파트로 갔다.


알려준 대로 첫 번째 서랍을 열어 보았으나 통 찾을 수가 없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예식시간이 되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급히 교회로 전화해 짜증스럽게 물어보니 누가 훔쳐 갈까 봐 옷으로 뚤뚤 말아놓았다고 한다. 두툼한 옷을 찾아 뒤져보니 금가락지 한 쌍이 나왔다. 급히 예식장에 돌아오니 예식 시간은 이미 30분 정도 지나있었다. 코리안 타임에 익숙해진 하객들이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들이다. 다행이었다. 곧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주례 목사님이 예물 교환시간에 흰 장갑 낀 손에 금가락지를 쳐들고는 말씀하신다. “이 금지환이 금으로 만들어진 것은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반지가 둥근 이유는 부부가 원만하고 서로 이해하고 살라는 뜻입니다.” 나는 금반지를 예물로 교환하는 이유를 그때 알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지인 요세미티국립공원에 갔다. 어머니는 ‘요세미티’라는 말이 어려워 ‘요셉의 굴’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순환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 때 멀리 요세미티폭포에서 수백 미터 밑으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 그레이스 포인트의 정상에 도착했다. 파노라마 같은 전경이 펼쳐지고 그 웅대함에 새삼 놀랐다. 내려다보니 빽빽이 들어찬 침엽수림 사이에 거대하게 솟아있는 하프돔 바위산이 보였다. 늘 변함없는 충직함을 볼 수 있었다.


요세미티공원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들러 식물원공원을 구경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달리는 전차도 타보고 부둣가에서 저녁식사도 마쳤다. 숙소 근처에 영화관이 있어 들어갔다. 인디아나 존스의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들(Raiders of the lost ark)’을 상영하고 있었다.


밤이 늦어 마지막 영화 상영 직전이었다. 자리에 앉은 아내가 손가락이 불편해서인지 결혼반지를 뺀다. 순간 반지가 영화관 바닥에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극장 스크린 무대를 향해 경사진 콘크리트 바닥을 따라 둥근 결혼반지가 굴러갔다. 앞에 있는 수많은 의자에 시야가 가려 도대체 어디에서 멈췄는지 알 수가 없다. 영화가 시작되면 곧 암흑세계가 된다. 결혼반지라 포기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아무리 의자 밑 근처를 살펴봐도 없다. 다급해서 극장 종업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극장에서는 영화 시작 시간을 늦춰 주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극장 종업원까지 세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극장 바닥을 청소하듯 의자 사이를 흩고 다녔다. 우리 부부가 보려는 영화는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들’인데 성궤 대신 결혼반지를 찾는 ‘잃어버린 결혼반지의 추적자들’이 되어 버렸다. 계속 찾던 중 어느 의자 틈 사이에서 반짝거리면서 ‘나 여기 있지롱’ 하며 숨어있는 개구쟁이 금반지를 드디어 찾았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곧 시작되었다. 속이 부글거렸지만 어찌하랴, 신혼여행인데 아내에게 좋은 표정을 지어야지.


결혼 후 10여 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매년 찾아오는 결혼기념일인데 아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갖고 싶다는 암시를 한다. 결혼식 때 고작 14K 금반지밖에 못 해주었으니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로 업그레이드 해주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업무차 홍콩을 갈 일이 있어 다섯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샀다. 아내도 마음에 든다고 좋아했다.


고장도 안 나는 세월은 쉴 새 없이 흘러 어느덧 결혼 25주년 기념일을 맞았다. 아내가 결혼 기념으로 보다 큰 새 다이아몬드 반지를 갖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였다. 두 아들 모두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했으니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고생하며 살아온 아내에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코스트코에서 아내가 원하는 제법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샀다.


새 반지를 사고 나니 내게 궁금한 게 생겼다. 다이아몬드 반지 두 개를 어떻게 낄 것인가 아내에게 물었다. 그런 것은 문제도 안 된다면서 하는 말이 나중에 산 것이 약간 헐렁거려 안으로 끼고 그 위에 먼저 산 것을 끼우면 흘러내리지 않게 된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면 쌍 다이아몬드 가락지다.


나는 결혼 후 지금까지 결혼 때 받은 금반지를 끼지 않는다. 손을 씻으면 반지 속에 물기가 들어가 마르면서 안 좋은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세수하기 전후로 반지를 뺐다 꼈다 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성가신 일이 싫어 아예 결혼반지를 안 낀 지 오래되었다.


어느 날 누님댁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 뵀는데 표정이 편치 않고 안절부절못하신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형수님이 어머니 생신에 본인이 끼던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주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일생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 번도 껴보지 못한 게 한이 되어 늘 얘기하던 것을 형수님이 귀담아들은 것이다. 형수님의 효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70대의 어머니가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외출 전후로 반지를 어디다 보관하셨는데 생각이 안 나신 모양이다. 한 달 내내 찾고 찾다가 얼굴이 초췌해지고 지쳐버린 모양이었다. 나중에 누님한테 들으니 결국 찾긴 찾으셨는데 바로 형수님께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그간 어머니는 다이아몬드 반지로 인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다이아몬드 반지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올 8월이면 결혼 42주년을 맞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금지된 여행이 차츰 정상화되고 있다. 다행이다. 올해는 아내가 어떤 결혼 기념 선물을 원할까 궁금하다. 아내의 손을 보니 두 개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여전히 영롱한 광채를 띄운다. 30여 년 만에 다시 한 번 옐로우스톤국립공원을 차로 다녀오는 것으로 결혼기념식을 대신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