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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수필] 노크
작성일
2022.12.12

일반산문 부문(수필) 가작


노크
심 수 연 (케냐)


비행기에서 내려 케냐 땅을 처음 밟는 순간 내 안에 작은 진동이 일었다. 기대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미세하게 나를 흔들었다. 남편이 구해놓은 집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생경하고도 흥미로웠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역동적이면서도 현란한 그림으로 치장하고 어쩐지 경건해지는 문구로 꼬리표를 단 버스들과 분주한 거리를 빠르게 걷는 사람들 틈으로 나른한 풍경, 그 속에 섞인 뿌연 먼지와 매캐한 매연 냄새의 묘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어 갈 즈음 교통 체증이라는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다. 끝이 어디쯤인가 확인하려 정면을 주시한 사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순간적으로 ‘뭐지?’라는 얼떨떨함과 몇 초간의 당혹스러움. 성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옷을 입고 밖에 서 있는 아이는 손을 연신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을 취하며 손을 내밀었다.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을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알았다. 나의 아이들은 누구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 상황이 불편했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남편에게 돈을 좀 주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한다. 이 사람이 이렇게 냉담한 사람이었나 생각하는데 남편은 눈이 마주치면 계속 서 있으니 쳐다보지 말라고 한다. 나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아프리카 하면 ‘빈곤’과 ‘기아’라는 단어가 공식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고는 했는데 차 밖에 서 있는 아이에게서 그 사실을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차 안에서 신기한 듯 바깥을 바라보는 나의 아이들에게 시선이 닿자 이들은 온실 속 꽃들 같았고 밖에서 구걸하는 아이는 거친 광야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나무 같았다.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안도와 참담함이 가슴 속에 파고들었다. 그 후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의 노크를 받으며 맘은 불편했지만 선명해진 사실 하나는 그들은 문밖에 있고 나는 문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왜 구걸하는 이들에게 돈을 주면 안 되는지는 곧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앵벌이인 경우가 많았고 구걸하는 남녀노소 가운데 대부분이 배를 채우기보다 본드나 마약을 사고 술을 마시며 오히려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했다. 일리가 있어 보였다.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쓰인 돈으로 말미암아 구제가 아닌 구렁텅이로 그들을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면 못 본 척하거나 딴짓하며 그 사람이 어서 다른 차로 가기를 바랐다. 불편했지만 모질어야 했다.

그날은 친구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신호 대기에 걸렸다. 2차선에 꽉 들어찬 차들 사이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신호를 받아 천천히 움직이는데 우리 차례에서 다시 빨간불로 바뀌었다. 남자는 친구의 차로 다가왔고 친구는 마치 올 줄 알았다는 듯 봉투 하나를 글로브 박스에서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봉투의 정체가 궁금했던 나는 허락을 받고 글로브 박스를 열었는데 박스 안에는 여러 개의 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겉면에는 ‘God loves you’라는 메시지가 수기로 적혀있었다. 나는 그 정성스러움에 적잖이 놀랐다. 친구도 구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은 주기로 했다고 한다. 뒤에서 돈을 갈취해 가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구걸하는 사람 즉, 일하는 사람을 굶기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로 주기도 하고 오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준다고 한다.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거리에서 보아온 사람의 종류는 다양하다. 허름한 옷을 입고 구걸하는 어린아이들부터 더운 날씨에도 구멍 나고 해진 점퍼를 달팽이 집처럼 이고 다니는 노인과 지팡이를 의지한 채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장님, 다리가 한쪽 또는 양쪽 모두 없는 남자와 갓난아이를 둘러업고 위험천만하게 차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여자, 그러나 누군가는 아이가 여자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가 있으면 사람들로부터 연민을 살 수 있기에 아무 아이나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 항상 차가 막히는 어느 회전 교차로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구간마다 무리 지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에게 돈을 주면 갑자기 우르르 모여들기도 해 난감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호텔들이 경영난에 처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공연팀이 거리로 나와 공연한다. 그들은 신호 대기에 있는 차량을 관객으로 모시고 머리 위의 해를 조명 삼아 아스팔트 위에서 인간 탑을 쌓고 저글링을 하며 차력을 선보인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어깨 위로 사람을 쌓아 올리는 남자가 중심을 잡기 위해 몸을 바들바들 떨며 흘리는 땀은 보기에도 애처롭다. 이처럼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은 다양하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을 도울 수는 없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한 것이지만 문제는 누가 더 빈곤하고 곤고한지 판단할 수도 없다. 이들은 절대 빈곤 속에 있다. 누가 더 빈곤한지 겨룬다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마치 하루살이처럼 하루 벌어 한 끼를 먹으며 그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나는 하루보다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이들은 하루의 식량만 생각한다. 누가 더 가난한 걸까?

한국에서의 삶은 전투적이었고 쟁취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애써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내가 걷는 만큼 누군가는 그만큼 더 앞서 나갔다. 내가 사는 집과 차, 내가 나온 학교와 직장 등 모든 것들이 나를 판단하는 도구가 되었다.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다. 그렇게 ‘보여지는’ 삶에서 ‘보지 못했던’ 삶으로 옮겨오면서 ‘감사’라는 단어를 상대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인 가치로 사용하게 되었다. 크게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부터 작게는 물과 전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몸소 체험하면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삶의 진정한 가치는 채우는 것이 아닌 퍼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케냐에는 생각보다 NGO 단체와 다양한 기관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많은데 한국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적도 다양하다. 그들은 케냐 오지를 찾아가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우물을 파준다. 그리고 일시적인 도움이 아닌 자립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훈련과 교육도 감당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사람이 후원과 기부와 성금을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절대 빈곤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 구제라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님을 체감하게 된다. 당장에는 생활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길거리의 사람들에게조차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 기준이 서지 않지만 다른 이들과 이러한 고민을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은 나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이 공통의 고민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온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차 밖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는데, 어떤 이는 돈 대신 매일 빵을 사서 나누어 주기도 하며 다른 이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지만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사준다고도 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그들의 달콤함을 책임지기로 했다. 입속에서 금방 녹아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달콤함일지라도 때로는 삶에도 감미로운 부분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사탕을 받은 아이의 얼굴이 활짝 피는 꽃처럼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