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ain page
  2. 재외동포 광장
  3. 재외동포문학
  4. 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시]아버지의 바이칼
작성일
2022.12.14

시 부문 가작


아버지의 바이칼

윤 희 경 (호주)


아버지의 시퍼런 꿈을 꺼내왔다
가장 깊고 푸른 호수 바닥에서
봉분 속 족장의 이야기처럼
흙 묻은 부장품과 함께 거뒀다
종로 팔판동이 아니라 시베리아 바이칼이라니
지상의 무덤을 거기로 하자고 노래를 부르시던
얼어 죽거나 그리워서 죽은 조상들의 목숨이
아버지의 비어있는 왼쪽 바지 마냥
갈기갈기 헐렁헐렁 바람에 날아가
벌판의 고수레가 필경 되었을 거라니
시조새가 기다리는 본가에서는
천둥으로 통나무 집을 짓고
번개로 굽이치는 치어들을 키워
자작나무 숲이 된 물고기 냄새
돌고 돌아서 버스정류장에서 아버지 퇴근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 맏딸의 목이 빠지는 이야기였다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한쪽 허벅지를 베고 누워
뼛속까지 우리는 당굴후손들로
생몰을 아무르 강가에 묻고
순록의 길 따라 동방을 세웠다는
그 오래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자식 넷 미국으로 호주로 다 흩어 보냈을까
아버지는 강인한 동토의 땅
가문비나무 전나무 가지로 피고 지는
동서로 물을 베고 남북으로 해를 베는
만년의 대장간
추운 두 발로 타지에서 발 구르지 말고
집에 돌아와 아랫목에 누우라는 풀무질 소리에
시우쇠 같은 손자손녀 여덟을 두었다
너 없는 바이칼이 무슨 의미며
너 있으면 바이칼이 또 무슨 의미 있겠냐고
루미처럼 딸에게 주신 양날의 종언
아버지를 발굴하고서야
아버지의 딸로 살아가는 시퍼런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