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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단편소설] 하이웨이 씩스
작성일
2020.08.05

[우수상 - 단편소설 부문]


하이웨이 씩스



정명숙 / 캐나다



1

25년간 직장에 다니며 딱 한번만이라도 맘 편히 놀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남편은 이민하고 일 년 동안 놀았다. 맘이 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면에서 소원 성취는 했을 것이다.


예전에 남편은 여름 양복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양복 주머니에 봄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언제 봄이 갔지, 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어, 캐나다에도 개나리가 피네, 하며 걸음까지 멈추었다.


놀랍게도 남편은 하늘을 자주 보았고 구름의 모양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연애 시절과 결혼 생활 30년을 통틀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이곳 하늘이 우리의 시선과 수평으로 맞닿아 굳이 올려다볼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나는 맘대로 생각했다.


남편을 따라 구름을 보면 아닌 게 아니라 구름은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다.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날에도 모양이 금세 바뀌었다. 토끼 모양의 구름을 보며 귀와 꼬리 모양이 점점 다람쥐처럼 변한다고 말하는 사이에 그것은 이미 토끼도 다람쥐도 아닌, 전혀 다른 형태가 되어버렸다.


- 되게 빨리 변하네.


- 움직이는 건 원래 변하는 거야.


나는 갑자기 철학자 모드로 바뀐 남편이 생경했다.


- 분위기 왜 이래. 영 적응 안 되네.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 옛날에 형이 해준 얘기야.
 
남편이 노는 걸 끝내고 슬슬 뭔가 해보려는 찰나, 부동산, 주식, 환율, 세 개의 폭탄이 남편의 평생 성취에 무차별 융단 폭격을 가했다. 천천히 정리할 생각으로 한국에 남겨둔 자산이 절반으로 줄었다. 아들과 딸이 각각 토론토와 밴쿠버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당장 돈이 필요했다. 결국 반 토막 난 주식을 팔아 삼십 퍼센트 떨어진 환율로 돈을 들여왔다.


나는 어디 가서 알바라도 뛰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종일 돋보기를 쓰고 식탁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렸다. 기왕 비즈니스 이민 온 거 하루라도 빨리 착수했어야 했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어쩌면 봄꽃을 만끽했던 시간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편은 비즈니스 매물 광고를 스크랩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계산기를 두드렸고 수첩에 뭔가 열심히 끄적였다. 그러곤 이 궁리 저 궁리 하더니, 괜찮은 곳을 찾았다며 내게 사전답사를 가자고 했다. 도시의 북쪽에 있는 레스토랑과 펍이었다.


나는 콜라만 마셔도 취하는 남편이 술집을 하겠다는 발상이 마뜩잖았다. 그곳의 위치와 모자란 불빛도 싫었다. 따라 나설 때마다 얼굴을 구겼다.


지도에서 언뜻 보면 그곳은 남북으로 뻗은 도로변에 위치했다. 남쪽으로 세 시간 거리에 인구 육십만의 도시가 있고 북쪽으로 인구 오천 명의 C시가 있었다. 하지만 C시까지 거리는 알 수 없었다. 구글 지도는 그곳에서 C시까지 몇 킬로미터 떨어졌는지, 자동차로 몇 시간 걸리는지, 표시할 수 없다고 했다.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곳과 C시 사이에는 무수한 호수와 습지가 산재했고 원주민 마을이 중간 중간 박혀 있었다. 도로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정부는 도로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도상의 위치와 달리 그곳은 막다른 골목인 셈이었다. 남편이 굳이 그곳을 고집했던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수중의 돈으로는 도시에서 마땅한 비즈니스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도시에서 해결하기를 바랐다.


충청도 산골 출신인 남편과 달리,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그것은 불빛에서 태어나 평생을 불빛에서 살았다는 말과 같았다. 물리학에서 질량과 에너지가 등가를 이루는 것처럼 내게 있어 서울과 불빛은 등가를 이루었다. 내 생활은 언제나 불빛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페트로 캐나다 주유소와 하이웨이 씩스 간판 두 개가 불빛의 전부인 도로변에 산다는 건,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며 산다는 말보다 더 막막하게 체감되었다.


구겨진 내 얼굴을 보며 남편은 말했다.


-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거, 얼굴 좀 펴라.


- 내 표정 신경 쓰지 마. 이 정도면 애교나 다름없으니까.


- 이참에 불면증 고치면 되겠네, 완전 캄캄해야 멜라토닌인가 뭔가 생긴다며.


남편은 얄밉게 말했다.


몇 년째 생리가 오락가락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렸다. 날이 훤히 새는 걸 보고 잠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도로 양옆으로 언덕처럼 높이 쌓인 눈을 보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눈에 물기가 생겨 드문드문 있는 집들과 나무들이 여러 개로 겹쳐 보였다.


- 자동차로 세 시간 거리면 캐나다에선 바로 옆집이나 마찬가지야. 답답하면 잠시 도시로 내려와 코에 바람 넣으면 되지.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속에서 열이 확 올랐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목덜미와 등에 눅진하게 땀이 뱄다. 나는 자동차 창문을 끝까지 쭉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안으로 훅 들어왔다. 남편이 애지중지 수첩 갈피에 끼어 놓은 신문 광고의 스크랩이 바람에 흩어졌다.


자동차는 8차선 외곽순환도로에서 빠져나와 2차선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지루하게 달렸다. 페트로 캐나다 간판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하이웨이 씩스 간판을 아차, 하는 순간 놓치고 몇 분 더 달려 유턴해 돌아왔다. 나는 차에서 내려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 하이웨이 씩스가 뭐야. 촌스럽게.


남편도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 좋은데 왜. 길 이름이랑 같아서 외우기도 쉽고.


우리는 지붕이 불그스름하고 외관이 허름한 직사각형 건물의 메인 출구로 들어갔다. 조그만 공간에 식당과 펍의 출입문이 분리돼있었다. 중간 벽면에 오크 나무 게시판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 간이 게임기가 놓여있었다.


게시판에는 사냥 협회 모임, 결혼식 피로연, 컨트리 가수 공연에 대한 공고와 송유관 건설 반대 집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팀홀튼 종업원와 간병인과 건설 노무자 구인 광고도 있었다. 중고 소파와 티 테이블 판매 광고, 방 두 칸짜리 지하실 렌트 광고, 가라지세일 광고, 고양이 페트리샤를 찾는 광고까지 다양했다. 셜록 홈즈가 아니더라도 마을의 일을 손바닥 보듯 훤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당 벽에는 북극곰과 들소의 흑백사진이 걸려있었다. 유니크했으나 보고 있자니 왠지 식욕이 떨어졌다. 식당은 작고 평범했다. 4인용 테이블이 여섯 개 있었고 메뉴판의 음식 가짓수는 단출했다. 그러나 오픈식 주방은 완전 딴판이었다. 널찍한 냉장 저장고가 보였고, 업소용 대형 냉동고와 냉장고의 모터 소리가 거인의 신음 소리처럼 주방에 울려 퍼졌다. 벽에는 다양한 조리기구들이 일렬로 걸렸고 선반에는 깡통과 식재료가 수북이 쌓였다. 어디에 쓰는 건지 도통 가늠도 되지 않는 것들 천지였다.


남편은 조금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길게 빼고 주방을 기웃거렸다. 낯선 동양인 부부가 여기저기 기웃거리자 서빙하던 종업원이 May I help you, 했다. 남편은 넉살 좋게 The kitchen is very nice, 했다. 머리를 양 갈래로 예쁘게 땋은 중년의 종업원이 탱큐, 하고 나서, 혹시 펍을 찾는 거라면 쭉 가면 된다고 주방 옆 통로를 손으로 가리켰다. 종종 식당으로 들어와 펍의 입구를 찾는 손님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통로를 따라 걷던 남편이 걸음을 늦추며 벽에 걸린 그림을 턱으로 가리켰다.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형상화된 연어 두 마리가 물살을 타고 올라가는 그림이었다. 연어는 당장이라도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남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손가락을 턱밑에 대고 그림을 감상했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위스키, 와인, 맥주 등의 술병과 칵테일 잔이 놓인 진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긴 스탠드에 스툴 예닐곱 개가 배치되었고, 대각선으로 맞은편에 대형 스피커와 마이크 장치가 구비된 공연 무대가 있었다. 식당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홀이 넓었다.


남편은 대형 스피커 앞 테이블의 의자를 뒤로 뺐다. 나는 창가 구석 자리로 가려다 말고 남편을 따라 스피커 앞 테이블에 앉았다. 홀에 있는 손님들이 미어캣처럼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뒤통수 옆통수 앞통수까지 따가웠다. 밴쿠버에서는 싸이가 공연도 하고 관객들이 칼춤까지 따라한다는데. 외지인이라 경계를 하는 건지 동양인이라 신기해하는 건지. 나는 역주행하는 수레바퀴에 꽉 끼어 버린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퉁퉁하고 무뚝뚝한 중년의 남자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내가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스텔라 아르투아를 찾고 있는데, 남편은 자기가 마실 것도 아니면서 캐나다 맥주를 마셔야 한다며 코카니를 시켰다. 그리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코카니는 코카니 빙산에서 흐르는 빙하수로 양조한 맥주이므로 청정한 빙하 결정체를 생각하면 건강에 무지 좋을 거라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남편은 음식 맛이 궁금하다며 북미 음식의 대표 격인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음식은 먹을 만 했다. 두어 시간 앉아 있는 동안, 손님도 그럭저럭 있었다. 남편은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먹으며 이 정도면 괜찮아. 나쁘지 않아, 했다.


겨우내 우리는 하이웨이 씩스에 갔다. 제설용 소금으로 얼룩덜룩 허옇게 바랜 별로 예쁘지 않은 북위 48도의 도로를 세 시간씩 달려서. 코카니, 쿠어라이트, 몰슨 같은 캐나다 맥주를 시켰고, 특별할 것 없는 메뉴판 음식들을 섭렵했다. 사전답사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다.


어느 날 무뚝뚝한 주인 남자가 미소 비슷한 것을 띠며 알은 체를 했다. 새로 이사 오셨습니까? 남편은 노우, 하며 뜬금없이 악수를 청했다. 리, 라고 합니다. 노우, 라는 대답에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짓던 남자가 금세 표정을 풀고 남편의 손을 맞잡았다. 빌이라고 합니다. 자주 오시네요. 고맙습니다.


하이웨이 씩스에 가는 일이 루틴이 되어갈 즈음, 5월이나 되어야 온다는 봄은 아직 멀었는데 갑자기 기온이 올라갔다. 빙하처럼 켜켜이 얼어붙은 눈이 한꺼번에 녹아 물난리가 났다. 그 바람에 6번 고속도로 일부가 물에 잠겼고 마을이 고립되었다. 남편은 종일 티브이 날씨 채널을 켜놓은 채 밥을 먹고 신문을 읽고 소파에 웅크리고 선잠을 잤다.


보름 만에 길이 뚫리자 남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이웨이 씩스에 갈 채비를 했다. 짧은 이별 동안 연인을 향한 마음을 확인하고 고백하러 가는 사람처럼 조바심치며 흥분했다. 이제 겨우 뜨뜻미지근한 상태가 된 나도 조바심이 났다. 남편이 당장 계약서라도 쓰자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우리가 홀에 들어서자, 빌의 무뚝뚝한 얼굴에 반가움이 드러났다. 남편은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경쾌한 목소리로 We are back, 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물난리의 후폭풍 때문인지 홀에는 손님이 한 명밖에 없었다. 꾀죄죄하고 눈이 퀭한 게 낯익은 얼굴이었다. 남자는 카운터로부터 멀찌감치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눈동자를 굴렸다. 쟤는 뭐하는 앤데 맨날 저러고 있어. 나는 남자의 퀭한 갈색 눈을 흘끗 보며 말했다.


빌은 코카니 한 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for free. 남편은 대단히 감동받은 얼굴로 점심은 먹었습니까?, 했다. 빌이 아직, 이라고 하자 남편은 하이웨이 씩스 시그니처 햄버거 세 개를 주문했다. 다른 햄버거보다 값이 비싸서 맛보기로 시킨 후 한 번도 주문하지 않았던 햄버거였다.


빌이 주문 전표를 주방에 갖다 주러 간 사이에 퀭한 눈의 남자가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대뜸 물었다.


- 니네 어디 리저브에서 왔니?


- 리저브?


나는 남편을 봤다. 남편은 휴대폰과 돋보기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 spelling, please.


- r..e..s..e..r..v..e...


입 속에서 반쯤 녹은 알파벳이 헤벌어진 이빨 사이로 흐물흐물 비어져 나왔다.


- 리저브가 예약하다 보류하다 말고 뭐 다른 뜻이 있나.


남편은 휴대폰의 네이버 영어사전을 맨 아래까지 내렸다.


- 마땅한 뜻이 없네.


- 없을 리가 있어? 어디 구석에 쪼그맣게 있겠지.


- 없어. 안 보여.


- 아, 답답해.


나는 남편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 자기 거 보면 되지. 꼭 이러더라.


남편이 툴툴댔다. 나도 남편처럼 스크린을 위아래로 터치했다.


- 이상하네, 왜 없지.


나는 휴대폰을 남편에게 돌려주었다.


주방에서 돌아온 빌이 남자를 불렀다. 샘.


- 이 커플은 아시안이야. 리저브 사람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니 자리로 돌아가.


- 리저브 사람 아니야? 비슷하게 생겼는데.


빌은 다시 한 번 샘, 하고 단호하게 부르며 손가락 두 개를 나란히 붙여 남자의 테이블을 향해 까딱했다. 샘은 떡진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 리저브가 뭡니까?


남편이 빌에게 물었다.


- 원주민만 모여 사는 곳이에요. 옛날에 정부에서 만든 거죠.


- 그건 레저베이션 아닌가요?


남편은 인디언 레저베이션이라는 팝송이 기억난다면서 물었다.


- 미국에선 그렇게 부르죠. 여기선 리저브라고 해요.


빌은 마을의 토박이 중 토박이였다. 빌의 증조부는 1860년대 비버 모피 상인으로 캐나다에 온 영국인이었다. 증조모는 원주민이었다. 두 분이 결혼해서 이 마을에 정착했는데, 라고 말하다 빌은 결혼해서 정착했다는 표현이 실은 적절하지 않다고 정정했다. 당시 영국 법이 원주민과의 결혼을 금지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빌의 증조부는 마을의 유일한 백인이었다. 그가 마을에 눌러 살게 된 건, 마을이 강과 숲으로 둘러싸여 외지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고 사냥과 낚시로 생계를 꾸리기에 충분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이웨이 씩스는 빌의 조부가 시작한 비즈니스였다. 조용했던 마을에 사냥꾼들이 몰려들었을 때였다. 사냥꾼들은 비버, 사향쥐, 여우, 스라소니 등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했고, 전리품을 싣고 가는 길에 하이웨이 씩스에 들려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사냥이 법으로 규제될 때까지 비즈니스는 엄청나게 번창했다.


그러나 빌의 조부가 떼부자가 됐을 거라는 우리의 예상은 안타깝게도 빗나갔다. 자세한 연유는 모르지만, 비즈니스를 갑자기 백인에게 넘겨야 했었는데, 조부가 원주민이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빌은 짐작했다. 사냥 규제법이 시행되어 더 이상 떼돈을 벌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하이웨이 씩스는 비로소 조부에게 넘겨졌다. 백인들이 떠난 후 마을 사람들은 마을과 사냥터를 되찾은 기쁨에 축제를 열었다. 축제가 끝난 뒤, 사냥 시즌을 제외하고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다.


빌이 조부 때부터 이어온 가업을 처분한 이유는 식당을 도맡아 했던 그의 아내가 몇 년 전 유방암으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빌의 비즈니스 운영 방식과 사람을 묘하게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고려하면 어떻게든 꾸려나갈 수 있었지만, 빌은 아내의 부재가 참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벽에 조리기구가 매달린 순서, 식재료가 놓여있는 모양, 테이블보가 깔려있는 방식, 바닥의 대걸레질 자국, 심지어 싱크대에 낀 물때조차도 아내의 부재를 상기시켜 준다고 했다.


술집이라고 별 달라. 열심히 하면 되지. 이런 자세로 일관했던 남편은 몇 달 동안 비즈니스가 돌아가는 걸 지켜보고는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특히 손님들 나사가 한두 개쯤 풀리는 주말이 그랬다. 손님들 사이에 서로 시비가 붙다가도 빌이 눈에 보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다른 술집처럼 입구에 경비 요원을 배치할 필요가 없었다. 술집이 그렇듯, 자잘한 사건 사고는 있었지만, 빌이 하이웨이 씩스에 버티고 있는 한, 역주행이든 뭐든 바퀴가 수월하게 굴러갔다.


남편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만 했다. 쌀쌀한 날씨에 티셔츠 바람으로 아파트 발코니를 왔다 갔다 하더니 밤에 기침까지 콜록거렸다.


- 그렇게 부담되면 안하면 되지. 도대체 뭣 땜에 그렇게 집착해, 거기에.


- 그러게 말이야. 안 하면 그만인데........ 나도 잘 모르겠어. 이 마음을.


- 그 마음이 뭔데?


- 생김새 비슷한 사람도 많고.


- 마음이 뭐냐니까. 웬 생김새 타령이야.


남편이 조금이라도 허튼 소리를 하면 이번에야말로 강하게 밀어붙일 작정으로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팔짱을 낀 채 남편의 뒷말을 기다렸다.


- 눈동자 색깔도 그렇고. ‘한국인의 밥상’에 나오는 노인들 눈 같잖아.


남편은 그곳에 있으면 맘이 느슨하게 풀어져 좋다고 했다.


- 아니 그럼, 뭐 하러 이민을 왔어. 그냥 한국에서 살지.


- 그 얘기가 아니잖아. 이민은 이민이고.


-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백인처럼 말 안 통하는 건 똑같은데, 생김새가 좀 비슷해서 좋단 말이잖아. 그러니까 말도 통하고 생김새도 같으면 훨 좋을 거 아냐. 그럴 바엔 이민을 왜 왔어, 한국에서 그냥 살지.


솔직히 말하면, 처음 하이웨이 씩스에 갔을 때 나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도시의 다운타운에서 구걸하고 술에 취해 배회하는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백인에 비해 그들이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물증은 없었지만, 이민자들 사이에서 그들은 피해야 할 사람들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맘이 느슨해진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적극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들의 생김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백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 후 쭉 그래왔던 영어가 모국어인 백인에게서 느끼는, 뭐랄까, 기본적으로 한 수 지고 들어가는 느낌. 그런 게 하이웨이 씩스에선 없었다. 샘의 퀭한 눈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한 수 위에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그만두자고 계속 밀어붙여야 하는 건지.


2

지역 신문에 실린 곰 이야기로 마을이 떠들썩했다. 아침에 부엌으로 들어가던 한 삼십대 주부가 냉장고 문을 여는 블랙베어를 목격했다는 기사였다. 기겁한 그녀는 후다닥 이층으로 올라가 곰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곰이 뒷마당을 통해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티라미슈 케이크와 과일 타르츠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시 당국은 블랙베어들이 먹을 것을 찾아 주택가 쓰레기통 뒤지는 사례가 많으니 뚜껑을 꼭 닫으라고 당부했다. 남편은 곰이 냉장고 문을 열어 케이크까지 꺼내어 먹는 판국에 쓰레기통 뚜껑 운운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다며 코미디네, 했다. 하지만 초보 이민자의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심히 쓰레기통 뚜껑을 닫았다.


펍에 오는 손님들 중에도 곰과 마주쳤다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샘은 아무개네 집 마당에서 개똥을 줍다가 덩치가 하키 선수 두 배만 한 블랙베어와 맞닥뜨렸다면서 남편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남편이 신기해하며 감탄사를 연발하자, 그는 흐물거리는 발음으로 공기 빠진 타이어처럼 푸식푸식, 소리를 내며 주워섬기지도 못할 말을 지껄였다.


남편이 칵테일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을 때도 샘은 퀭한 눈을 남편 코앞에 들이대고 곰 얘기를 했다. 그러다 빌에게 들키면 마지못해 스툴에서 내려와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엉덩이를 반쯤 걸친 채 눈치를 살폈다. 빌은 칵테일 잔에 스트로를 꽂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 적당히 무시해요. 금방 제 풀에 꺾이니까. 다 받아 줬다간, 사우스 코리아는 물론이고 노스 코리아까지 쫓아가 곰 얘길 해댈 거예요.


빌은 무뚝뚝한 표정 그대로인데 남편 혼자 껄껄 웃었다. 빌과 남편의 눈치를 보며 맥주를 홀짝이던 샘이 태평양만큼이나 벌어진 앞니를 드러내며 히죽히죽 웃었다.


동네 사람들 마당에서 개똥 줍는 일을 하는 샘은 오후 두 시면 개똥 치우는 일을 끝내고 하이웨이 씩스로 퇴근했다. 그는 저녁까지 맥주 한 병을 들고 홀을 어슬렁거리며 다른 손님에게 말을 걸거나 남편을 졸졸 쫓아다니며 횡설수설 지껄였다. 개 짖는 소리만 들어도 뉘 집인지 훤히 꿰고 있는 마을에서 샘의 얘기는 새로울 것 없었고, 설사 새로운 것이 있다 해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직 남편만이 놀랍다 대단하다 멋지다, 등의 추임새를 넣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샘의 창백하고 시들시들한 얼굴은 남편을 마주대했을 때 활짝 폈다. 그는 펍에 오기가 무섭게 두리번거리며 남편을 찾았고, 갈색 눈을 웃어 보이며 하이 리, 하고 정답게 인사했다. 남편을 도와준답시고 테이블의 빈 술병도 치웠다. 그때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빈 술병에 깔린 마지막 한 방울의 술까지 톡톡 털어 마셨다. 가끔 창틀 먼지나 의자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를 자신의 기름때 찌든 옷소매로 닦다가 남편과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었다.


샘은 여섯 살 때 조부모와 강제로 떨어져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그러다 양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열 살 때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는 고아원에서 뛰쳐나와 약물에 절어 십 대와 이십 대 초반을 거리에서 보냈다. 샘의 조부가 수소문하여 샘을 찾아냈을 때, 그는 자기 부족의 언어도 가족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 채 보호 시설에서 지내고 있었다. 재활 시설에서 치료를 받은 뒤 조부 곁으로 돌아왔을 때 샘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조부가 죽은 뒤, 그의 생전 부탁으로 먼 친척 형인 빌이 샘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개똥 치우는 일은 빌이 소일거리로 주선해 준 것이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부 보조금이 나오는 날이면 샘은 맥주 세 병을 한꺼번에 시켰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것은 샘이 하이웨이 씩스에서 마실 수 있는 일일 최대량이었고 남편과 빌의 계약조건 중 하나였다. 빌의 카리스마가 절실했던 남편은 최소 삼 개월 동안은 빌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한다는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빌은 흔쾌히 받아들이는 대신, 샘에게 하루 맥주 세 병 이상 주지 말 것, 같은 매우 사적인 조건 몇 가지를 제시했다.


빌이 계약 파기까지 언급하면서 심하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보조금이 나오면 갚을 테니 맥주 한 병만 달라는 샘에게, 맥주 한 병에 야박하게 굴 거 있냐면서 남편이 외상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 이런 식으로 운영할 거면 계약은 없던 일로 합시다. 위약금은 물겠소.


남편은 고작 맥주 한 병에 터무니없이 화를 내는 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빌은 황당해하는 남편을 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 이민자들은 원주민을 안 좋게 생각한다면서요. 마약에 알코올에 일은 안 하고 세금이나 축내고 더럽고 구걸이나 한다고요. 신문 오피니언에서 그러더군요. 원주민 때문에 새로운 이민자들이 다운타운을 맘 놓고 다닐 수 없으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빌은 혀로 입술을 적셨다.


- 리저브가 뭐냐고 물었었죠.


빌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 거기선 통행증이 있어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자식 결혼식도 부모 장례식도 생필품을 사러 갈 때도 백인 관리인에게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했었죠. 백인 관리인에게 밉보이면 아무 데도 못 갔어요. 다 지난 일이라고 하지만,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으니 무조건 옛일이라 치부할 순 없겠죠.


북한의 통행증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백인과 원주인의 갈등은 ‘늑대와 춤을’ 이나 ‘라스트 모히칸’ 같은 영화에서 본 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온전히 미국 얘기인 줄 알았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투명한 푸른빛 하늘에 한 무리의 캐나다 구스가 브이 모양을 이루며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 리에게는 그저 맥주 한 병일 뿐이지만, 우리에겐 알코올 중독이라는 오명을 안겨주죠. 맥주 한 병이든 뭐든, 사람들은 그런 거 따윈 신경 안 써요. 외상술 마시는 원주민이라는 것에만 관심을 두죠.


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편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 부탁합시다. 샘뿐 아니라 동네 사람 누구에게든 외상술은 절대 안돼요.


남편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빌은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때 건물 모서리의 쪽창으로 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유리창에 코를 대고 눈동자를 굴리며 홀을 들여다보았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한손을 치켜들어 줄에 매달린 물고기를 흔들었다. 빌이 힐끗 쳐다보자 재빨리 물고기를 아래로 내렸다. 빌은 못 본 척 밖으로 나갔다.


빌이 떠나자마자 샘은 물고기를 흔들며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직접 잡았다면서 역도 선수 장딴지만 한 물고기를 남편에게 들이밀었다.


- 가져. 리에게 주는 거야.


샘은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 중간을 가리키며 요만할 때 할아버지가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샘이 자랑스럽게 물고기를 건네자 남편은 물고기를 받아 요리조리 보았다.


- 어이구, 크네 아주.


남편은 샘에게 엄지척을 해주었다. 그러곤 받아도 되나 모르겠네, 중얼거리면서 뒷마당으로 나가 숯불 바비큐를 피웠다. 남편은 물고기를 통째로 얹은 뒤 지글지글 타는 연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 어릴 때 냇가 가서 물고기 참 많이 잡았는데. 나뭇가지에 불 피워 구워 먹고 나면 입 주위가 까매서 형이랑 서로 많이 놀리기도 하고… 다 옛날 일이지 뭐.


남편은 일 년 전 형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후 처음으로 형 얘기를 꺼냈다.


- 내가 중학생 때 형이 서울로 대학을 갔는데, 어쩌다 고향 내려오면 꼭 딴 사람 같았어. 개울가에 누워 구름만 보더라구.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 그랬어. 흐르는 건 저 구름처럼 다 변하게 되어있다고. 내가 강물은 매일 똑같던데, 했더니, 어려서 그렇다는 거야. 어제의 강물은 오늘의 강물이 아니고 내일의 강물과도 다르다면서. 겉으로만 똑같아 보일 뿐이라고.
남편은 잘 타고 있는 숯을 괜히 이리저리 쑤시더니 연기가 맵다며 눈을 비볐다.


물고기는 제법 맛있었다.


- 금방 잡아서 구워 먹는 물고기 맛은 여전히 좋네.


- 좋으면 됐지, 뭐.


남편은 생선살 몇 점을 발라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외상술도 아닌데 뭐, 하면서 맥주 한 병을 꺼내어 생선 접시와 함께 홀에 있는 샘에게 갖다 주었다. 샘은 입을 귀까지 걸며 좋아했다. 그는 생선 접시는 손도 안 댄 채 술병만 핥다시피 깨끗이 비웠다. 


샘은 짬만 나면 물고기를 남편에게 들이밀었다. 그리고 공짜 맥주에 한껏 행복해했다. 남편이 맥주를 주지 않을 때면 샘은 저공으로 선회하며 착륙 신호를 보내는 경비행기처럼 남편 주위를 맴돌았다. 아무런 사심 없이 증여된 선물이 어느 순간 대가를 바라는 교환으로 바뀐 것이었다. 남편은 더 이상 물고기를 받지 않았다. 샘의 애원하는 듯 처량한 눈동자를 외면했다. 샘은 남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축 늘어진 물고기를 들고 돌아섰다.


- 그러게, 술은 왜 줘가지고.


나는 물이 흥건한 바닥을 대걸레로 북북 문질러 닦았다.


3

강으로 이어지는 건물 뒤쪽은 사방으로 뾰족하게 팔을 벌린 침엽수와 서로 기묘하게 얽혀 손바닥만 한 이파리를 떨구는 활엽수들이 에두르고 있었다. 하늘 중간까지 쭉쭉 뻗은 나무들은 매일 밤 창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우리가 침실 겸 거실로 쓰는 열 평 남짓 공간을 기웃거렸다. 때때로 바람이 검객처럼 나뭇가지 사이를 수평으로 수직으로 휘휘 가르는 소리에 뒤척뒤척 부대끼다 잠이 들었다.


이민 생활의 시작은 당연히 녹색 잔디가 깔린 이층집에서 하게 될 거라는 기대에서 ‘당연히’라는 단어를 지우고 나니, 불빛이 없어도 길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 만해졌다. 바람의 칼날에 뒤척뒤척 부대끼는 밤의 횟수도 줄었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곰인가 싶어 아주 잠깐 쓰레기통 뚜껑을 걱정하다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유일하게 잠을 깨우는 게 있다면 그건 테니스 엘보우 증세로 시큰거리는 팔꿈치뿐이었다.


주말 사냥협회모임에서 잡채를 서비스로 선보일 요량으로 당근 수십 개를 채 썰었다. 양 갈래 머리 아줌마는 이십 년 베테랑이라 허드렛일을 시킬 수 없었고 다른 종업원들은 햄버거는 잘 만들었지만 칼질이 서툴렀다. 야물지 못하고 어눌한 손놀림으로 당근 채 써는 걸 보고 있자니 저러다 손가락 자르지 싶어 보는 내내 애가 탔다. 내가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팔꿈치를 쿡쿡 누르며 잠에서 깼다. 밖에서 쓰레기통 뚜껑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곰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이제 남편은 쓰레기통 뚜껑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곰도 먹고 살아야지, 너스레만 떨었다. 남편은 푸우, 푸우, 팥죽 쑤는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코를 골았다.          

         
나는 남편의 코를 살짝 잡았다 놓으며 모로 돌아누웠다. 코고는 소리가 잦아든 순간 건물 입구 쪽에서 우당탕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잠결에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또르르르. 타일바닥에 금속성 물건 굴러가는 소리도 들렸다. 남편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편이 손전등을 꽉 쥐고 식당을 가로지르는 동안 나는 등 뒤에 바싹 붙어 따라갔다. 남편이 식당 문을 열고 손전등을 비추자, 새우처럼 웅크린 시커먼 물체가 불빛에 잡혔다. 엎어진 게임기와 아무렇게나 흩어진 동전들이 보였다. 검은 물체가 움찔하며 형광 불빛에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푸석한 손등에 기름때 찌든 낡은 옷소매가 보였다.


- 거기 누구냐.


남편이 소리쳤다.


검은 물체가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렸다. 남편은 손전등 불빛을 얼굴에 비췄다.


- 샘? 여기서 뭐 해?


남편이 놀라서 물었다.


샘은 눈이 부신지 양손바닥을 이마께로 올려 쫙 폈다. 눈가와 입가에 주름이 짜글짜글했다. 노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것 같았다. 여러 갈래로 뻗은 손바닥 주름에 때 같은 게 새까맣게 끼어 있었다. 샘은 멋쩍게 한번 씨익 웃더니 이마에 얹었던 양손을 내려 다시 더듬더듬 바닥을 훑었다. 손마디마다 허연 각질이 피었다. 그는 동전을 주워 샌드위치용 비닐봉지에 넣었다.


- 너, 뭐하니? 게임기 털었니?


남편이 언성을 높였다.


- 돈 훔치는 거야?


- 아니야, 훔치는 거. 보조금 나오면 갚을 거야. 잠시 빌리는 거야.


마치 남편이 꾸어 준 돈을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린 것처럼 샘은 천연덕스럽게 동전을 주웠다. 남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샘을 노려보았다.


- 갚는다니까. 걱정 마. 근데 말이야, 니네, 쓰레기통 뚜껑 안 닫았드라.


중대한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샘은 목소리를 깔고 남편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 너, 알지. 저기 삼거리, 빨간 대문 집. 내가 그 옆집에서 개똥 줍잖아. 그, 왜, 배 뿔룩하구, 성질 드러워서 소리만 지르는 늙은이 말이야.


모를 리가 있나. 하이웨이 씩스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반쯤 마신 술병을 카운터에 턱하니 내려놓더니 값이 리커스토아보다 두 배나 비싸다고 환불을 요구했던 노인이었다. 남편이 도시에 있는 술집은 세 배나 비싸다고 달랬으나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손님들은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쳐다볼 뿐 관여하지 않았다. 샘만 노인에게 어눌하고 웅얼거리는 말투로 뭐라 뭐라 했다. 노인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이놈아, 너는 개똥이나 치워.


결국 남편의 전화를 받고 달려 온 빌이 사태를 종결시켰다. 빌은 맥주 값의 절반을 노인에게 돌려주며 앞으로 펍에 오지 말고 리커 스토아에 직접 가서 사 마시라 했다.


- 그 늙은이가 쓰레기통 뚜껑 안 닫아서, 맨날 곰이 내려왔대. 그래서 누가 신고했나봐.


남편은 현행범을 잡은 자신의 본분을 까맣게 잊은 채 샘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 어떻게 됐는데?


- 니들도 알지. 벌금 무지 쎄다는 거.


알다 뿐인가. 남편은 이민 온 지 두 달 만에 교통 신호를 세 번 위반했고 백만 원 상당의 돈을 범칙금으로 냈다. 한 달 생활비를 그렇게 날리고 남편은 한동안 운전대만 잡으면 새가슴이 되었다.


- 늙은이가 벌금 고지서 들고 옆집 가서 길길이 날뛰었대. 경찰이 오고, 막 난리가 났었어.


- 옆집에서 신고했나?


샘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간다 싶어 팔꿈치로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정신 차려. 어물쩍 넘어가면 안 돼. 남편이 갑자기 정색하며 샘에게 말했다.


-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건 도둑질이야, 샘.


- 갚을 거야. 보조금 나오면 갚는다니까. 꼭 쓸 데가 있어서 그래. 내일 당장.


남편은 나를 보며 갚는다는데?, 했다. 나는 남편의 팔을 툭 쳤다. 무슨 소리야. 단단히 단도리를 해야지.


- 갚는다잖아. 몇 푼 되지도 않는데, 경찰에 신고하면 괜히 번거롭기만 하고. 그리고 얼마나 급하면 게임기 털 생각을 했겠어, 저 순한 애가. 내일 꼭 쓸 데가 있어서 그랬다고 하니까 한번만 봐주자.


- 아유, 못 살아 내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 나셨어.


나는 가자미눈으로 남편을 흘겼다.


- 그럼, 빌한테 전화라도 해. 다신 이런 일 없게.


- 알았어. 내일 오전에 할게.  


샘은 동전을 다 줍고 동전 통을 게임기에 끼운 뒤 엎어진 게임기를 바로 세웠다. 그는 불룩한 샌드위치 봉지를 들고 더러운 바지에 손바닥을 쓱쓱 문지르며 일어섰다.


- 니네 쓰레기통은 걱정 마. 내가 아까 닫았어.


샘의 목소리가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해맑았다. 그는 샌드위치 봉지를 남편에게 주며 세어보고 다시 달라고 했다. 남편은 비닐봉지를 받아 들고 어이가 없는 듯 웃었다. 동전은 대략 30불이었다. 샘은 동전 봉지를 들고 아이처럼 좋아하며 돌아갔다.


남편은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어 한 모금 마셨다.


- 웬 술이야. 자야지.


- 맥주 반 병 정도는 괜찮아, 이제.


남편은 식탁에 앉아 손가락을 병 주둥이에 대고 계속 원을 그렸다.


- 그때 형이 나를 믿어줬으면 여기까지 안 왔겠지.


- 글쎄… 그랬겠지 아마. 근데 누가 알겠어. 일이 어찌저찌 흘러서 결국 왔을지도 모르지.


남편은 도시에서 스시 레스토랑을 인수할 계획이었다. 뜻하지 않은 외적 변수로 자금이 부족했을 때 남편은 형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던 형의 말을 한 톨도 의심하지 않았다.


- 집이세요?


- 밖이야. 영수가 와서 밥 먹으러 나왔다.


몇 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막내 조카였다. 남편이 유난히 예뻐했던 조카는 용돈이 필요할 때마다 남편에게 연락했다. 재수할 땐 갑자기 목돈이 필요하다며 남편에게 이백만 원을 부탁했다. 형과 형수에게는 영원히 비밀이라며 남편은 돈을 해주었다.


- 잠깐 영수랑 통화 좀 해도 돼요? 목소리라도 듣게요.


야, 삼촌이다. 인사해. 형이 말했다. 삼촌,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데면데면했다. 응 그래. 잘 지내지. 공부는 잘 되고. 네. 잠시 침묵 후 수화기가 형에게로 건너갔다. 남편이 소심하게 물었다.


- 나중에 다시 전화할까요.


- 아냐, 괜찮아. 말해.


- 지난번에 말씀 드린 거…


- 지난번에 말한 거?


- 돈… 말이에요.


- 아, 그거.


형은 잠시 뜸을 들였다.


- 그게 말이다. 안 되겠다. 여기도 형편이 좀 그래서.


누가 이민을 가래. 아니, 왜 이민을 가서 돈을 해 달래, 해 달래길. 수화기 너머에서 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핸드폰만 보지 말고 푹푹 좀 먹어. 이게 얼마짜리 장언 줄 알아.


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참 시끄러워 통화를 못하겠네. 너도 그 핸드폰 치우고 어서 푹푹 먹고.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얼른 스피커폰을 껐다.


-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으로 담보 대출만 해주세요. 이자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장사가 잘 되는 가게니까 원금도 금방 갚을 수 있어요. 갑자기 환율이랑 주식시장이 안 좋아서 그런 거지, 무리해서 크게 벌리는 거 아니에요. 갚아요. 갚을 거예요.


남편이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형은 미안하다, 한 마디 한 뒤 아무 말 없이 수화기만 붙들고 있었다고 했다. 상대가 먼저 끊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공허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고 남편은 말했다.


이튿날 남편이 빌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전날 밤의 일 을 문자로 간단히 보냈다. 정오께, 샘은 kokanee가 파란색 물결 모양으로 새겨진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리커 스토아 사은품인데 남편이 샘에게 준 것이었다.


- 손님 없네. 굿.


남편이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빈 술병을 정리하며 한국어로 녀석이 지 가게 아니라고 막말하네, 했다.


- 손님 없는 게 뭐가 굿이야.


나는 샘을 쳐다보기가 민망했으나,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샘은 카운터에 코카니 가방을 올려놓고 남편을 도와 술병을 박스에 넣었다. 술병 바닥에 깔린 술을 털어 마시면서.


- 야, 더럽다. 그것 쫌 하지 마라.


남편이 술병을 빼앗아 박스에 넣었다. 샘은 히죽 웃으며 빈 술병이 가득 든 박스를 번쩍 들어 창고로 옮겼다.


- 이게 뭐야?


남편이 코카니 가방을 보며 샘에게 물었다.


- 어제 그 돈으로 산거야.


샘은 가방 덮개를 열었다. 은색 호일로 된 가방 안에는 낡은 낚싯줄과 갈고리 같이 생긴 낚시 바늘과 노네임 딸기잼 병이 들어 있었다. 요즘 물고기는 딸기 잼을 먹나 보네. 남편이 샘을 놀리며 딸기잼 병을 집어 올렸다. 병 안에 미끼용 노래기가 꿈틀거렸다.


- 함께 갈래? 물고기 잘 잡히는 데 내가 알아.


- 함께?


- 물고기 맛있다며 좋아했잖아.


샘은 남편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 맥주 달라고 안 할게.


샘의 퀭한 갈색 눈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동자가 아련하게 젖었다. 나는 괜히 술병 진열대의 먼지를 떨며 말했다. 바람도 쐴 겸 다녀 와. 바로 요 뒨데 뭐.


한 시간 후 남편과 샘이 각각 물고기 한 마리씩을 들고 나타났다.


- 손님 없었어?


-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어. 술집 주인 낚시 간 거 알았나봐.  


남편은 건물 입구가 보이도록 창고 문을 앞뒤로 활짝 열어젖히고 샘을 불러 함께 뒷마당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숯불 바비큐에 불을 피우고 물고기 두 마리를 나란히 석쇠에 올려놓았다. 물고기가 지글지글 익으며 기름이 숯불에 떨어지자 연기가 피어올랐다. 샘은 남편과 내 쪽으로 연기가 가지 않도록 손을 쫙 펴고 부채질을 해댔다. 손이 큼지막했다. 할머니가 여름이면 부치던 한복 차림의 윤정희가 웃고 있는 타원형 종이부채만큼이나 컸다.


- 빌한테 고맙다고 문자가 왔어. 이따 저녁에 들른대.


남편이 냉장고에서 코카니 세 병을 꺼내오며 내게 말했다. 샘은 무슨 얘긴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맥주병을 애써 못 본 척하는 샘의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남편이 짓궂게 양손을 흔들어 연기를 샘 쪽으로 날렸다. 샘이 마른기침을 콜록, 하자 남편은 에구 뭐 좀 마셔야겠네, 하며 맥주병을 건네주었다.


흐르는 건 변한다고 형이 말했을 때 남편은 아니라고 부득부득 우겼다고 했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렇지 않다고 대들었다고 했다. 형은 남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한번 쓰윽 훑더니 말했다고 했다.


- 그래, 너 편한 대로 생각해라. 결국 선택은 둘 중 하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든가. 그래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든가.


모처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우리는 가볍게 맥주병을 부딪쳤다. Cheers.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