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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시]"왜지"나무
작성일
2020.12.15

[대상 - 시 부문]


"왜지"나무


황연 / 중국



주말 오전이면 아버지는 딴사람이 된다.
평생 빨랫감은 뒤집은 채 산더미처럼 쌓아놓으시고
설거지 한 번 도와주신 적 없던 아버지가 딴사람이 된다
자차로 반 시간이 걸려서 도시와 한참 떨어진 외진 마을에는
간혹 지나가는 누군가의 자동차 타이어에 깔려 터지고 말라붙은
산 구렁이 껍데기가 한여름의 길바닥 복판에 종종 널려 있다
돌길을 지나 작은 강을 건너 조금 걸어가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으셨고 아버지가 태어나신 낡은 벽돌집이 보인다.
그곳엔 해가 들지 않는 앞마당과
오래도록 잡초만 무성했던 뒷마당이 있고
함경도에선 “왜지”나무라고 부르는
몇십 년 전의 이 계절 할아버지께서 심으신 자두나무가 있다
아버지는 앞뒤 마당에서 무너진 담장을 다시 쌓고
작은 밭에 파를 심고 오이 모종을 고정하고 무 싹을 솎아낸다
잔디를 다듬고 잡초를 뽑는 긴 시간 동안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네 세 형제자매가 그 집을 떠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거의 이십 년 동안 비워진 집 마당에서
아버지는 대가 없는 노동을 사명감을 안은 듯이 열중하신다
그저 티셔츠가 흥건해질 정도로 그렇게 땀을 흘리시며
당신의 아버지께서 그러셨듯 수걱수걱 농사일에 열중하신다
볕에 데어 벌게진 팔뚝에 찬 수건 하나 올리시고
새참도 드시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나는 늘 생경하다
집에서나 엄마 일 좀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시라
야채는 사 먹으면 되니 몸 혹사시키지 마시라 철없이 굴면
아버지는 그저 늘어난 옷섶을 만지며 웃는다
시골 동네와도 한참 떨어진 외진 그곳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심고 키우신 “왜지”나무 밑에서
과거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께 그러셨듯이
탐스럽게 달린 열매 하나를 따 내게 건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