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온 청년, 메리다 한인 후손
전 세계 65개국을 여행한 이원희 씨는 멕시코 한인 첫 이주 정착지인 유카탄 지역 메리다를 방문해 "젊은 한국인, 동포 국가의 이민 역사를 배웠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멕시코 언론(PorEsto) 보도에 등장했다. 그는 메리다에서 활동하는 한인 후손 청년 리더들을 만나고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120년 전의 한국과 메리다의 뗄 수 없는 끈끈함이 지금도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다.
< 유카탄 신문에 실린 여행가 이원희 씨와 한인 후손 기사 - 출처: 'PorEsto' >
메리다를 방문한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단지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유로도 자신의 가족이 온 것처럼 메리다 한인 후손들이 따뜻하게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메리다에 오기 전 통신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메리다 한인 후손들과의 만남은 감동일 것이다." 그리고 이 씨는 메리다에서 한인 후손들의 따뜻한 마음을 경험했다. 또한 이 씨는 나라 없는 민족의 지난 과거를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인들이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도 보았을 것이고, 이들이 모진 삶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왔는지도 느꼈을 것이다. 과거 한인들이 노예처럼 일했던 아시엔다 레판(Hacienda Lepán) 농장에 한인 후손들과 방문해 아직도 우뚝 서 있는 검은 에네켄 농장 굴뚝을 대면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 에네켄 농장 굴뚝 사진 - 출처: 통신원 촬영 >
고향이자 조국인 한국에서 온 한 청년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한 메리다 한인 후손들과 메리다 지역 한인 후손 청년 리더들. 이들은 대한민국 재외동포협력센터 초청으로 한국에서 온 한인 후손들을 맞이한 것처럼 이 씨의 메리다 방문을 따스한 마음으로 맞이했을 것이다.
이 씨는 통신원에게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메리다 공항에 도착하자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저무는 해를 보며 생각했다. 2억 만리 유카탄에 도착해 처음 보는 석양은 120년 전 조상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한인 후손 2세대 시스토 킴옹의 댁에서 겸손한 집안에 강한 가풍이 느껴졌다. 그의 부친을 대신해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건국포장, 역사가 느껴지는 일가의 사진들이 한인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고령임에도 친절히 응대해 주신 킴옹에게 감사와 함께 작별 인사를 함께 건네고 근처의 옛 에네켄 농장에 들렀다. 처음 보는 에네켄(henequen). 가까이서 보니 가시가 매우 날카롭다. 한 번 찔리기라도 하면 푹푹 찌는 유카탄의 날씨에 금방 상처가 곪아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농장 숙소에서 고되었을 노동의 고통을 생각하면 서글프다가도 일과 후 우물에서 시원하게 멱을 감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래도 작은 미소가 지어지고는 했다.
< (좌)한인 후손 2세대 시스토 킴옹과 이원희 씨, (우)에네켄을 처음 본 이원희 씨 - 출처: 통신원 촬영 >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프로그레소(progreso) 항구에 도착했을 1,000여 명의 조상들은 그때까지 조선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근면 성실하게 생활하며 희망을 품고 살았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도 지원했다. 인천 제물포 출발부터 현재 한인 후손들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메리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의 수많은 자료와 박물관장 돌로레스 킴의 해설로 이와 같은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부터 여행을 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러시아를 횡단할 적 연해주 우수리스크 고려인 마을과 고려 국수를 마주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메리다에서 느꼈다. 원치 않았던 디아스포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거기에 따라오는 비감. 그리고 애국심. 짧게 여행하더라도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마음이 커지는데 하물며 평생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사람들의 애끓는 마음은 감히 재단할 길이 없다. 그래도 그들은 희망을 남겼다. 그 희망은 후손들로, 이들이 특히 밝게 웃을 때면 그 웃음에서 선조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여전히 뿌리를 생각하고 지켜나가는 후손들. 멕시코인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긍정적인 미래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 한인 후손과 이원희 씨 - 출처: 통신원 촬영 >
120년 전 그리고 현재, 양국 청년들의 만남을 흐뭇하게 바라볼 당시 우리의 선조들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 메리다에서 접할 수 있는 한인 후손의 역사와 관련된 특별한 체험은 멕시코와 한국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민족의 끈끈함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PorEsto》 (2024. 6. 6). joven coreano explora conexion yucateca, https://issuu.com/poresto/docs/poresto_canc_n_edicionimpresa_06dejunio2024
성명 : 조성빈[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멕시코/멕시코시티 통신원]
약력 : 전) 재 멕시코 한글학교 교사 현) 한글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