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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꿈을 사진첩에 기록하는 이스탄불 기술공대 김익환 교수,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가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4.12.27

[문화정책/이슈] 꿈을 사진첩에 기록하는 이스탄불 기술공대 김익환 교수,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가다


1773년에 개교한 이스탄불 기술공대(Istanbul Technical University)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5대 공대 중 하나로 공학 및 건축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학교다. 이곳에서 한국인 최초 사이버 조경 김익환 교수가 가상공간에서의 조경과 공간 설계, 가상공간에서의 인지학이라고 하는 학계에서도 아직은 낯선 새로운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통신원이 김익환 교수와 처음 닿게 된 건 '튀르키예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사업회' 행사 취재 중에서였다.


이스탄불 기술공대의 한국인 교수가 튀르키예 81개 주를 다니며 생존해 계신 참전용사 노병들의 마지막 모습과 생생한 증언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궁금했다. 역사와 문화 관련한 학문도 아닌 사이버 조경 가상 공간이라고 하는 학문을 가르치는 공대 교수로서 학기 중 주말에도 한국전쟁 참전용사 노병들을 직접 방문해 당시에 관한 증언과 사진을 수집하고 이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통신원은 김 교수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이스탄불 기술공대로 향했다.


현재의 이스탄불 기술공대는 1773년 술탄 무스타파 3세가 설립한 왕실해군기술학교가 모태다. 설립 초기에는 선박 제작자와 지도 제작자 훈련에 주력했다. 1795년 군사 인력의 기술 훈련을 통해 왕립군사공학교가 되고 1847년 건축 교육 프로그램이 추가되면서 공학대학교로서 역할이 강화됐다. 그 후 튀르키예 건국 및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건축대학과 전기전자공과대학, 경영대학, 해양대학 등 13개 단과대학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이 상기 대학교 건축학과 졸업생이다.


< 이스탄불 기술공대 건축학부 건물 - 출처: 통신원 촬영 >


김익환 교수가 수년에 걸쳐 공들여 만들어 가고 있는 '연구소 문화(Lab Culture)'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김익환 교수가 강의하는 사이버 조경 가상 공간 과목도 이스탄불 기술공대에서 처음 시도하는 학문으로 현재 순수 건축학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신(新)학문이다. 학계에 처음 선보였을 때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여러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학문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학생들은 처음으로 접하는 학문을 경험하면서 어느새 교수와 제자 그 이상으로 하나의 끈끈한 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다. 이는 김익환 교수가 이스탄불 기술공대에 와서 매해 포기하지 않고 학교에 요청해 온 연구소를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 대학에서는 연구소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지만 김 교수가 이스탄불 기술공대에 오기 전까지 튀르키예에서는 공대에서조차 연구소를 갖춘 곳은 한곳도 없었다. 처음 김익환 교수가 연구소의 필요성을 제기했을 때도 학교에서는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김 교수는 연구소에 대한 필요와 당위성을 매해 제기하면서 지금의 작은 컨테이너 하나를 학교로부터 지원받았다.


< 이스탄불 기술공대 김익환 교수의 연구소 - 출처: 통신원 촬영 >


김익환 교수가 얻은 컨테이너 연구소는 이스탄불 기술공대는 물론 튀르키예 모든 대학 중에서도 유일한 시설로 지금은 모든 교수들의 부러움을 사는 곳이 됐다. 김 교수는 이곳에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학문에 대한 고찰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사회에 나갈 실질적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학부생이 학기 중에 석사 논문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석사과정도 먼저 박사 논문을 마쳐 놓도록 한다. 김익환 교수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 같은 열정을 갖고 장래의 길까지 함께 고민하게 된 데는 그가 교단에서뿐만 아니라 책임 디자이너(MIMIC.US)로 근무한 경력, 국내외 기업(슈타켄/XLGAMES/넷마블)과 디지털 게임 내 공간 설계에 관련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IT 관련 글로벌 견문을 넓게 쌓았기 때문이다.


현재 튀르키예에는 IT 관련 직업군에 대한 진로의 길이 넓지가 않다. 이에 자신의 경험에 비춰 제자들의 장래의 길을 넓혀 주고 싶었던 것이다. 튀르키예에만 머물지 말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큰 영향력을 가지라고 독려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학교 수업과 논문 준비까지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의 진심을 잘 알기에 수업이 끝난 후에도 이 작은 연구소에 들러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학생들이 사이버 조경 가상 공간의 이론과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때마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게임을 함께 즐기기도 한다.


학문에 열중하는 제자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기록하는 김익환 교수

김익환 교수가 이곳 연구소에서 자신의 강의 외에 공을 들이는 것이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사진을 기록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에 집중하며 미래의 꿈을 이뤄가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보통은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래서 김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꿈을 이뤄가고 있는 지금,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도록 강의시간 제자들의 모습을 틈틈이 카메라에 담아낸다. 제자들은 김 교수가 담은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인생의 목표를 이뤄가는 길에 큰 힘을 얻는다.


< 김익환 교수가 카메라에 담은 제자들의 모습 - 출처: 김익환 교수 제공 >


튀르키예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마지막 생존 모습을 카메라에 기록하는 김익환 교수

이는 사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튀르키예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세계 10대 강국의 반열에 당당히 서며 한국의 기술과 학문을 전 세계에 널리 전하게 됐는데, 김 교수는 튀르키예의 미래가 될 자신의 제자들에게 한국전쟁에서 받은 희생에 대한 사랑을 보답해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튀르키예는 대한민국보다 8배나 면적이 넓어서 웬만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꼬박 24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때로는 낯선 지역에서 괴한을 만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외길 절벽을 만나기도 한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하는 일도 아닌데 올겨울 김 교수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 급하다. 이제는 94세가 모두 넘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은 튀르키예 전역에 100여 명 남짓, 한 분이라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찾아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 연구소에서 튀르키예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을 기록하고 있는 김익환 교수 - 출처: 통신원 촬영 >


< 김익환 교수가 기록한 튀르키예 한국전쟁 참전용사 방문 사진들 - 출처: 김익환 교수 제공 >


제자들에게도 그랬듯, 김익환 교수는 튀르키예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두 명의 제자들과 한 팀을 이뤄 참전용사를 방문하는데 이 작업 역시 김 교수의 연구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획한다. 김익환 교수는 지금까지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모아온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과 동영상 증언을 짧은 다큐 영화로 제작해 이스탄불 국제영화제에도 출품할 계획이다. 김익환 교수가 현재 서 있는 자리는 이스탄불 기술공대지만 그가 한국인으로서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그 이상의 영역임이 틀림없다. 튀르키예에서 펼치는 김익환 교수의 수고들이 가까운 미래에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길 기대한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 김익환 교수 제공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튀르키예/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현) YTN Wold 리포터 전) 해외문화홍보원 대한민국 바로 알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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