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종이로 엮은 독립의 기억
2025년 10월 28일, 중국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 진열관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한글 서예 작가 강병인과 종이 예술가 김수진이 함께한 이번 전시는 '독립운동의 기억과 문화의 힘'을 주제로 서예와 종이 조형예술을 통해 한·중 양국의 역사적 연대를 예술적으로 재조명했다. 진열관이 자리한 충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0년부터 광복까지 활동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이번 전시는 그 역사적 맥락 속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이번 전시는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진열관이 주최하고 '운마·학예당(云马·学艺堂)'이 협력한 가운데 진행됐다. 개막식에는 충칭 한국인 상회, 서남 대학, 충칭 시민맹특원 지부 등 한·중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해 두 작가의 예술 세계를 함께 축하했다. 전시는 '서예'와 '종이 예술'이라는 전통적 표현 매체가 만나 과거의 독립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한글 서예 작품들이 전시장 벽면을 따라 힘 있게 걸려 있었고, 그 앞에는 김수진 작가의 종이 조형물이 공간을 감싸며 마치 흔들 흔들 '바람처럼' 흐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 이번 전시 기획을 맡은 임시정부 진열관 오란 주임이 전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두 작가의 프로필이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강병인 작가는 서예가이자 글꼴 연구자로, 한글의 조형미를 바탕으로 현대적 서체 디자인에 활발히 참여해왔다. 그는 '서예가 단지 전통 예술에 머물지 않고 문자와 디자인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소통의 매개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그의 작품 속 한글은 단순한 기록의 수단을 넘어 '예술적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 강병인 작가의 작품들은 한글 자모의 형태미를 살리면서도 단어 하나하나에 정신적 메시지를 담았다. '문화의 힘', '문자기', '새로운 길' 등의 문구가 굵고 단단한 필획으로 표현되어 있었는데 이는 문화가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을 지탱하는 원동력임을 상징한다. 그의 서체는 단순한 필법을 넘어 독립운동가들의 신념과 '문화적 항거'의 정신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 김수진 작가는 현재 중국사천미술학원 교수로 유창한 중국어로 사람들에게 강병인 작가의 작품 설명을 통역해주고 있다 - 출처: 통신원 >
김수진 작가는 종이 예술가이자 디자인 교육자다. 한국과 중국,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며 종이를 통해 공간과 인간, 감정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그녀의 작품은 언뜻 가볍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결의 층이 쌓여 강인한 생명력을 발산한다. 김수진 작가의 종이 설치 작품은 위아래가 나뉜 태극 문양으로 천장에 걸려 있었는데 하나의 시간은 독립운동의 시간, 다른 하나는 현재의 시간으로 80년의 역사적 시간차가 있다. 단 각각 흔들리던 위아래 태극문양은 어느 순간인가 하나의 태극 문양으로 합쳐지며 앞으로의 하나 된 대한민국을 보여준다.

< 전시 현장 모습. 김수진 작가의 반반 나뉜 태극 문양의 조형작품은 독립운동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나타낸다 - 출처: 임시정부 진열관 >
< 강병인 작가(좌), 김수진 작가(우)가 전시 개막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전시는 단순히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정신을 매개로 한·중 양국이 공유한 역사적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이기도 했다. 중문 전시 서문에는 '서예와 예술의 융합을 통해 중한 양국이 함께 항전했던 역사를 되짚고, 역사와 예술의 대화를 펼친다(重温中韩两国并肩抗战的历史,呈现历史与艺术的对话)'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는 이번 전시가 단순한 미술 행사를 넘어, 역사적 공감과 문화적 교류를 지향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개막식에서는 두 작가가 각각 작품 제작 과정과 주제 의식에 대해 발표했으며, 진열관은 두 사람에게 '예술작품 소장증서(艺术作品收藏证书)'를 수여해 이 전시가 한·중 문화 교류의 상징적 계기가 되었음을 확인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진열관 씨야 서기가 작가에게 예술 작품 소장증서를 수여하고 있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진열관은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한국과 중국의 예술가들이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고 새로운 문화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문화의 힘'이라는 메시지처럼 예술은 시대를 넘어 기억을 잇고, 사람을 연결한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종이의 가능성을 통해 역사와 예술이 만난 이번 전시는 한국 문화가 지닌 깊은 내면의 힘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앞으로도 충칭에서 이러한 예술 교류가 꾸준히 이어져 한·중 양국의 우정과 문화적 연대가 더욱 공고히 다져지길 기대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대한민국 임시정부 진열관 제공

성명 : 한준욱[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충칭)/충칭 통신원]
약력 : 일사광선(一丝光线) 스튜디오, 아트노벰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