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문화정책/이슈] 시니어의 지혜를 문화에 녹여낼 공간, 젠스페이스 아넨버그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9.07

전 세계에서 인구 고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나라로 꼽히기도 했다. 2035년에는 인구 10명 중 3명이 만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될 전망이며, 2070년에는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역시 한국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 내 65세 이상 인구수는 2010년 4,030만 명에서 2019년 5,410만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는 불과 20년 안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인들이 어린이들보다 더 많아질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구 고령화 현상에 따라, 시니어들의 웰빙은 전 세계 거의 대부분 국가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가운데 LA의 한인타운 한복판에 고령화를 재해석하는 새로운 공간, 젠스페이스 아넨버그(GenSpace Annenberg)가 문을 열어 시니어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지하철역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지점(윌셔와 하버드 코너)에 위치한 관계로 통신원은 젠스페이스 아넨버그 건물이 새로 지은 지하철 역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중, LA 한인타운 인근의 길거리에 붙은 '시니어를 위한 새로운 공간, 젠스페이스 아넨버그'의 홍보물을 본 후 '시니어 아파트를 광고하는 건가?'라고 궁금증을 가졌다.


< 자선사업가 월리스 아넨버그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젠스페이스 아넨버그의 외관 - 출처: 통신원 촬영 >

< 자선사업가 월리스 아넨버그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젠스페이스 아넨버그의 외관 - 출처: 통신원 촬영 >


통신원은 어느날 산책을 하던 중,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젠스페이스 아넨버그의 외관을 보며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이지?'하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그제야 해당 건물이 지하철 역도, 시니어 아파트먼트도 아닌, LA의 저명한 자선사업가인 월리스 아넨버그(Wallis Annenberg)가 창립한 ‘시니어를 위한 새로운 공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웹사이트에는 장소에 대한 소개와 함께 현재 방문 신청을 받고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아직 시니어 센터에 갈 나이는 아니지만 궁금한 마음에 온라인으로 방문 신청을 한 후, 그 다음날 젠스페이스 아넨버그를 찾았다.


입구부터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어 아무나 접근할 수 없었다. '예약 하셨죠?'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이름을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태블릿의 카메라로 방문자의 사진을 찍은 후 이름표를 인쇄해 건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문을 열고, 3층으로 올라갔더니 젊은이들이 '어서오세요.'라며 방문자를 반기는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남가주대학(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노인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현장 학습을 위해 한 달간 이곳에서 안내하며 업무를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통신원의 방문을 안내한 여성 역시 USC 학생이었다. 그녀는 젠스페이스 창립자의 비전을 알려주었고, 곳곳을 함께 걸어다니며 자세한 안내를 해줬다.


젠스페이스 아넨버그를 설립한 월리스 아넨버그는 2009년 아넨버그 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무려 2,700개 이상의 비영리 단체와 기타 단체에 20억 달러 이상의 금액을 기부한 저명한 자선사업가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시니어가 한낮에 공원, 영화관 등의 장소에 혼자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시니어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갖춘 활기가 넘치는 장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러한 추세가 곧 폭발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시니어가 얼마나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혼자 생활을 해결할 수 없는 시니어가 찾는 요양원, 혼자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노인 아파트, 두 시설 모두 척박한데다 좁고 어두운 공간이라는 것이다.

소비지향적인 미국 문화에 의해 노인들이 사회의 중요하고 가치 있는 부분임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시니어의 중요성과 영향력, 지혜를 논하는 국가적 대화는 없다. 월리스 아넨버그는 나이든 어른들을 위해 설계된 장소들은 모두 접근성과 창의성이 떨어지고, 시니어가 필요로 하는 편의시설도 부족한 것을 보며 해결책을 구상했다.

그렇게 월리스 아넨버그는 자기 자신이 가고 싶은 공간을 이 세상에 선물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갈 수 있는 곳, 세상과 연결되는 곳, 노인들의 관심을 참여시키고 연결시킬 수 있는 최첨단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아름답고 현대적인 공간 말이다. 외로움, 고독의 반대되는 개념은 연결과 참여일 것이다. 젠스페이스는 연결과 참여의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시니어의 삶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창립자의 비전을 건물과 시설, 그리고 프로그램을 통해 구체화한 공간이다. 안내자와 함께 찾아본 실내 공간은 쾌적하고 아름답고 밝고 세련돼 종일토록 머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 젠스페이스 아넨버그 내 전자기기 사용법을 배우는 공간 - 출처: 통신원 촬영 >

< 젠스페이스 아넨버그 내 전자기기 사용법을 배우는 공간 - 출처: 통신원 촬영 >


< 아트 스튜디오에 전시된 시니어의 점토 작품 - 출처: 통신원 촬영 >

< 아트 스튜디오에 전시된 시니어의 점토 작품 - 출처: 통신원 촬영 >


< 젠스페이스 아넨버그의 정원 가꾸기 클래스룸 - 출처: 통신원 촬영 >

< 젠스페이스 아넨버그의 정원 가꾸기 클래스룸 - 출처: 통신원 촬영 >


< (좌)동영상 작품이 계속 돌아가며 뇌를 일깨운다, (우)편히 앉아 쉴 수 있는 공간 - 출처: 통신원 촬영 >

< (좌)동영상 작품이 계속 돌아가며 뇌를 일깨운다, (우)편히 앉아 쉴 수 있는 공간 - 출처: 통신원 촬영 >


젠스페이스 아넨버그는 푸른색 세련된 디자인의 소파가 놓여진 쉬는 공간, 비디오 아티스트의 작품이 쉬지 않고 돌아가며 변화하는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대형 모니터가 있는 열린 공간, 요가와 줌바 등 시니어의 건강을 위한 클래스가 진행되는 스튜디오, 핸드폰과 태블릿 등 시니어에게 낯선 디지털 기기 다루는 법을 배우는 클래스룸, 지점토와 유화 등 내면의 예술혼을 일깨울 수 있는 아트 클래스 스튜디오, 함께 노래부르며 치유를 경험하는 공간, 정원 가꾸기를 직접 배우고 실습해볼 수 있는 클래스룸 등의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특히 옥상에 올라가면 LA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옥상 정원이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이고 오래전에 사라졌던 꿈과 희망 용기가 되살아 나는 느낌이다.

현재 젠스페이스 아넨버그에서는 정원가꾸기 클래스, 아트 클래스, 스트레칭과 밸리 댄스 클래스가 제공된다. 앞으로 자서전 쓰기 클래스, 요가와 명상 클래스, 함께 노래부르기 클래스 등을 더욱 보강할 계획이다. 첫 달 이용은 무료이고 두 번째 달부터 10달러의 회비를 지불하면 이 모든 공간을 이용할 수 있고 모든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다.

피카소와 빅토르 위고는 노년기에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을 창조했다. 그럼에도 현대의 대중 문화는 여전히 시니어를 약한 주변 인물로 묘사한다. 월리스 아넨버그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고정 관념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대로부터 노인들은 그들의 지혜를 사회에 물려줬다. 노인들이 요양원과 노인 아파트에 고립될 때 이러한 소통은 일어날 수 없다. 젠스페이스 아넨버그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수행해 세대 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커뮤니티의 허브가 될 것이다. 공간을 통한 사회적 연결과 교육은 시니어는 물론 모든 세대가 활력을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삶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다.

더 많은 한인 시니어가 이렇게 멋진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된 통신원은 언어라는 장벽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 이민 1세대는 한국어만 구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원활한 공간 이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젠스페이스 아넨버그가 여러 다양한 언어를 통한 교육을 마련해주길 기다리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공간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공간을 통해 자칫 끊길 수 있는 한국의 전통 문화를 후세대에게 자연스레 물려줄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박지윤

  •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4시엔 스텔라입니다.' 진행자 전)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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