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인터뷰] 수묵담채화로 유럽인들을 매료하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3.01.25

몇 년 전 우연히 동양적인 감성이 가득 담긴 전시 포스터가 통신원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스위스 뉴샤텔의 자연박물관에서 알프스산맥 배경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 포스터였다. 유럽인의 작품과는 다른 느낌을 전해 사람의 마음을 잠재우는 듯한 고요함과 평안함을 선사하는 포스터 하단에는 한글로 '드몰 박지영'이 기재돼 있었다. 통신원은 한국인으로서 반가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이후 스위스 불어권 공영방송 RTS의 프로그램 <망원경을 건네줘(Passe-moi les jumelles)>에서 드몰 박지영 화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물, 잉크, 그리고 오리진(L’eau,l’encre et l’origine)'이란 타이틀로 30분가량 그녀의 작업, 작품 등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한국에서 온 작은 체구의 그녀는 유럽의 알프스 산에 매료돼 산을 오르며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산과 나무, 호수를 중심으로 자연의 모습을 표현해냈다.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을 마주한 지역인 제네바와 샤모니 사이에 위치한 아이즈(Ayse)에 거주하고 있는 드몰 박지영 작가는 'Ji-Young Demol Park'이란 이름으로 2013년부터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스위스 체르마트 마테호른(Le Cervin, 2020, 70 x 150cm)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 스위스 체르마트 마테호른(Le Cervin, 2020, 70 x 150cm)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디에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늘 그림을 그렸다고 말씀하세요. 6살 무렵 아버지께서 유럽 여행을 마치고 오시면서 미술 역사책과 명화 슬라이드를 사다 주셨는데 그 길로 유럽 미술에 매료됐습니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4년간 회사와 교직 생활을 하던 중 일 년 동안 유럽의 박물관들을 관람해 보고자 1996년 유럽 땅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작품을 직접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던 초심은 어느덧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돼 안시미술학교로 편입했습니다.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비디오 설치, 사진, 조형 영역을 공부해 조형예술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교수님 소개로 헤드제네바에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고 한국에서의 교편 경력으로 프랑스 학교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약 18년간 교편생활을 병행했습니다. 2007년에는 프랑스 안시에서 열린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해 '위안부(Wi han bou)를 알립니다.'라는 타이틀로 남편 로돌프 드몰(Rodolph Demol)과 함께 비디오 아트전을 선보였습니다. 2년 동안 준비했던 작업은 당시 유럽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유럽 땅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굉장히 뿌듯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제가 어릴 적부터 그렸던 데셍 노트들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어릴 적 기억과 함께 제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다시 스케치북과 연필을 늘 가지고 다니며 스케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스케치입니다. 여행 스케치로 시작해 레만호수와 알프스산맥의 경관 등 자연의 모습을 그리게 됐습니다.


 < 스위스 마테호른 맞은편 고흐너그라트(Gornergrat) 및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모습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 스위스 마테호른 맞은편 고흐너그라트(Gornergrat) 및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모습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 스위스 마테호른 맞은편 고흐너그라트(Gornergrat) 및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모습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작가님 화풍의 특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 작품은 동서양의 화법이 조화된 형태입니다. 서양의 수채화를 동양의 수묵담채화 기법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수묵담채는 불어로 '라비(Lavis)'라고 불립니다. 먹으로 그린 후 모노톤으로 색을 넣는 방식을 말합니다. 동양화에서는 선과 여백 그리고 음영을, 서양화에서는 명암으로 양감을 주고 원근감을 강조합니다. 저는 크로키(속사화, 감흥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기법)를 한 후 명암을 넣어 초안을 작업합니다. 이후 작업실에서 먹으로 뉘앙스 넣기, 간단한 채색하기 등 후처리 과정을 거칩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유럽에서 흔히 보는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유럽인들에게 어떤 호평을 듣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에서 동서양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습니다. 주로 여백을 두고 알프스산맥과 호수, 그리고 자연의 모습을 많이 그리는데 유럽인의 눈에는 여백의 미가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여백의 미가 전하는 메세지에 감탄하면서도 늘 볼 수 있는 산과 호수의 모습이 제 작품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프랑스 에베흐박물관(MuséeHébert) 전시를 여섯 차례나 관람하신 분도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 스위스 레만 호수몽트뢰에서 본 전경(Vue depuis Montreux 2019, 50 x 150cm)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 스위스 레만 호수몽트뢰에서 본 전경(Vue depuis Montreux 2019, 50 x 150cm)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작가님에게 산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국에서도 산을 오르긴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린 나이였기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생각을 하거나 마음을 비우기 위해 산을 올랐습니다. 산을 감상하기보다는 극기 훈련식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홀로 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산을 감상하고 묵상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제가 느낀 그 감정을 화지에 펼쳐가면서 매번 정말 행복합니다. 산은 제게 힘과 영감을 전해 줍니다.

한국의 산과 유럽의 산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처음 레만호수 부근을 기차 여행하며 마주했던 알프스산맥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웅장함과 강인함이 제가 알던 한국의 산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유럽에는 강한 남성성을 머금은 높고 뾰족한 봉오리들이 군데군데 솟아 '이빨(Dent)'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산봉우리가 수없이 많습니다. 반면 한국에는 길고 부드럽게 이어져 여성적인 유함을 머금은 듯 잔잔하고 평안한 모습을 갖춘 능선들이 많이 있죠.


< 설악산 공룡능선 전경(2022, 160 x 65cm)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 설악산 공룡능선 전경(2022, 160 x 65cm) - 출처: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한국의 산을 배경으로 작업하신 작품도 소개하실 예정이신가요?
사실 2016년부터 한국의 산을 많이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몇 년 전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낭시(Nancy) 전시의 기획을 위해 보주산맥(Vosges Montain) 근처를 여행하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경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한국 산들과 많이 비슷했습니다. 지난 가을에는 한국의 설악산과 서울 부근의 산을 여행하며 작업했습니다. 특히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면서 크로키를 할 때에는 많은 것을 느꼈어요. 개인적으로 겸재 정선을 참 좋아하는데 그가 내금강과 해금강을 유람하며 그렸다는 '금강산전도'를 보는듯 했거든요. 지금은 그곳을 여행하지 못하지만 언제가 꼭 산행하면서 작업하고 싶습니다. 이번 2월에 한국에 방문해 철원을 여행하며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철원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그린 곳이기도 합니다.

전시 및 출판하신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2013년부터 프랑스에서 전시를 시작했는데요. 2015년 스위스 자연주의 잡지인 《라 살라망드(La Salamandre)》 기사를 통해 스위스에도 알려졌습니다. 행사에 초대받고 제네바와 레만호수 부근에서 여러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최근에는 스위스 니옹에 위치한 레만박물관(Muséedu Léman) 전시와 프랑스 이제르(Isère)의 에베흐박물관(Musée Hébert)에서 여러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 스위스 공영방송 RTS에서 방영한 드몰 박지영 작가 - 출처: 유튜브(@Passe-moi les jumelles) >


2023년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2023년에는 도서 출판과 함께 세 곳에서 전시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6월에는 스위스 몽트뢰(Montreux)에 위치한 19세기에 유명했던 한 빌라에서 전시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특히 10월에는 2023년 한국과 스위스의 수교 60주년을 맞이해 큰 전시를 기획 중입니다. 또한 12월 모르쥐에 위치한 미드나이트썬갤러리(Midnight Sun Gallery Morges)와 제네바의 오리엔탈박물관(Musée des Artsd'Extrême-Orient)에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더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전시 오프닝, 출판 기념 사인회 등을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나면 한국과 일본, 중국 문화가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주시는데요. 저는 예술을 중심으로 작품을 통해 한국을 설명합니다. 김흥도, 신윤복, 강세황 등 많은 조선시대 화가들을 소개하기도 했어요. 특히 겸재 정선은 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과 삶을 더 공부했고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관련된 박물관은 꼭 다녀옵니다. 지난 가을에도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에 올라 작업을 하는데 겸재 정선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를 통해 중국의 산수화에서 벗어난 한국의 첫 화가입니다. 이번 11월 제네바 전시에 그의 작품을 소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저의 알프스 진경산수화와 아름다운 한국 산을 소개할 예정인데 겸재 정선에 대한 오마주가 될 듯합니다. 주제도 '300년의 시간의 차, 사는 대륙을 넘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정신적으로 표현한 세계관을 투영시킨 작업'으로 정하고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사진출처
- 드몰 박지영 화가 제공
- 유튜브(@Passe-moi les jumelles), https://www.youtube.com/watch?v=0En9xgRCmJc

참고자료
- 드몰 박지영 화가 개인 홈페이지, https://www.jiyoungdemolpark.com/




박소영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약력 : 현) EBS 스위스 글로벌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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