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인터뷰]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품 활동을 펼치는 이현희 작가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3.02.16

2023년 음력설(Lunar New Year) 행사가 1월 중순부터 2월 초에 걸쳐 연이어 개최되고 있다. 시드니 시 카운슬(City of Sydney)은 음력설을 축하하기 위해 아시안 작가들이 제작한 다양한 거리 배너를 설치했다. 2022년부터는 배너 제작에 한국계 이현희 설치작가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인 상권이 몰려 있는 코리아타운에 이현희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코로나19로 한국 방문이 통제됨에 따라 고국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도 배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한글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았다.


올해도 이현희 작가의 배너 작품이 거리에 등장했다. 올해 작품은 토끼의 해를 맞아 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을 담았으며 시드니 중앙역(Central Station) 맞은편 공원의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현희 작가는 윌로비 시티카운슬이 토끼의 해 축제의 일환으로 채스우드 콩코스에서 주최한 '이너엣지드리프팅(Inner Edge Drifiting)' 전시회에 작품 <하얀 눈물(White Tears)>을 출품했다. 통신원은 이처럼 시드니의 미술계에서 활약 중인 이현희 작가를 만나보았다.


< '이너엣지드리프팅'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 '하얀 눈물(White Tears)' 옆에 선 이현희 작가 - 출처: 통신원 촬영 >

< '이너엣지드리프팅'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 '하얀 눈물(White Tears)' 옆에 선 이현희 작가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채스우드 설 축제에는 어떤 작품을 출품하셨나요? 해당 작품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나요?
채스우드 콩코스 윌로비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그룹 전시 '이너엣지드리프팅(Inner Edge Drifiting)'에 설치 작품 <하얀 눈물(White Tears)>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현대 사회는 문화와 종교 그리고 전통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고 생각해요. 태어나고 성장한 한국과, 현재 제가 거주하고 있는 호주에서 영향을 받아 가치관과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작품 공유를 통해 또 다른 사회를 이해하며 감사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기 위해 가치와 전통을 강조하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작품의 콘셉트는 여러 국가의 이민자들이 그들의 전통과 가치를 교류하고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실 이는 어린 시절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했는데요. 어렸을 때 새해가 되면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갔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소망을 적어 나뭇가지에 매는 모습들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기억을 토대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하얀 눈물(White Tears)>입니다. 종이에는 부디스트 페이퍼 프레이 리추얼(Buddhist Paper Prayer Ritual), 그리고 이민 후 가톨릭 영향을 받았기에 기도문을 적었습니다. 즉 <하얀 눈물(White Tears)>은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올해 시드니 시 카운슬(City of Sydney)의 배너 갤러리에 초청된 이현희 작가의 배너들 - 출처: 이현희 작가 제공>

< 올해 시드니 시 카운슬(City of Sydney)의 배너 갤러리에 초청된 이현희 작가의 배너들 - 출처: 이현희 작가 제공>


설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배너를 디자인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시드니 시티(City of Sydney) 웹사이트에서 공지를 보고 지원하게 됐어요. 사실 해당 공모전은 지난해 처음 열렸고 지원을 통해 선정돼 작업을 진행했죠. 올해는 주최 측에서 지원해 보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주셨어요. 그렇게 이번 공모전에도 참여해 두 번째 배너를 제작하게 됐습니다.

작년 작품은 간단하게 색연필로 드로잉했어요. 한국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고 다른 하나에는 'Happy Lunar New Year'라고 적었죠. 당시 설치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요. '코로나19 시기였기에 한국에 가지 못하는 분들이 보시고 많은 위로를 받으시겠구나'하는 마음으로 한글로 디자인했죠. 총 6가지의 배너 디자인을 진행했고 시드니 시내 코리아타운 리버풀스트릿에 13개가 걸렸어요.

올해는 달나라 토끼를 주제로 했어요. 한국인이라면 관련 전래동화를 듣고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더불어 호주에서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호주에서 보는 달에도 토끼가 방아 찧는 모습이 보이나?'라는 생각하며 한국을 그리워할 때가 있었거든요. 달나라 토끼를 콘셉트로 하고 설날에 입는 색동저고리에서 색에 대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하게 됐습니다.

2016년에 열린 제4회 한호예술재단 미술공모전(The 4th Korean Australian Art Foundation Art Prize)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Infinity>라는 작품입니다. 324개의 한지를 빨갛게 물들이고 그 위에 자수를 놓았어요. 다 같은 빨간색이 아니라 비슷하지만 다른 색들이 나왔어요. 이 작품을 본 외국인 관람객들은 'M'를 보더라고요. 사실 한국어로 '사'를 쓴 것입니다. '랑'까지 쓰려다가 생략했어요. '사랑'이라는 어휘를 활용한 것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 경험을 의미합니다. 어느 날 딸과 함께 저녁으로 치킨을 먹던 중 딸이 저에게 서운한 것들을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저희 둘 다 눈물을 흘렸고 이 일은 며칠 동안 가슴에 남았어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결국에는 사람들은 사랑이 필요한 거구나.'였어요. 제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을 주어야 하고 상대방도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지요. '인간적인 사랑이 가장 중요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작품의 제목을 <Infinity>라고 지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끝없는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이 작품을 만들게 됐습니다.


< 제4회 한호예술재단 미술공모전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Infinity' - 출처: 이현희 작가 제공 >

< 제4회 한호예술재단 미술공모전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Infinity' - 출처: 이현희 작가 제공 >


<Infinity>는 저의 개인적 경험과 문화적 영향을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했어요. 한국문화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서양문화는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문화를 이야기하자면 뿌리를 무시할 수 없었죠. 한국은 불교, 유교, 샤머니즘 등 세 가지가 잘 융합돼 문화가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반면 서양문화에는 기독교 사상이 깊게 뿌리박혀있죠.

호주에서 한국계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려운 점이 있나요?

한국계 아티스트라서 어렵다기보다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오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을 나름대로 영어로 했는데 엉뚱하게 전달이 돼 오해가 생기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죠. 이민의 역사가 긴 중국계 아티스트 선배들이 멘토 역할을 해주고 서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죠. 그렇지만 저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니 제가 열심히 해서 후배들을 이끌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큽니다.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작가님께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정체성'을 강조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하고 계시나요?
저는 한국에서 성장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호주에 왔어요. 그렇기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해요. 가끔 호주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호주에 온 한국 친구들을 보면 정체성의 혼란을 겪더군요. 저는 정체성에 혼란은 없어요. 호주에 거주하면서 예술 활동을 하더라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확고한 것 같습니다. 어느 작품을 표현하더라도 한국인의 예술 감각은 어느 정도 표현되는 것 같아요. 배너 갤러리에 걸려있는 저의 작품도 색이 화려하잖아요. 색이 화려한 중국 예술가들의 색과는 또 다르다는 말을 듣고는 해요.


< 이현희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Homage' - 출처: 이현희 작가 제공 >

< 이현희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Homage' - 출처: 이현희 작가 제공 >


작가님의 대표작을 말씀해 주세요.
<Homage>이라는 작품입니다. 한지에 한글을 빼곡하게 적어 실로 꿰맨 작품입니다. 요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마태복음을 포함한 신약성서의 4권의 책을 쓴 것입니다. 4권을 썼더니 분량이 이만큼 나왔어요. 완성하기까지 4개월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 작품은 아무 이유 없이 작업하게 됐어요. 2012년 '블레이크 프라이즈(Blake Art Prize)'라는 큰 규모의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불교와 가톨릭교 즉 동서양의 요소가 모두 들어있어 양 문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고 높게 평가를 해주셨어요. 전시 작가 중에는 故백남준 작가님과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김수지 작가님도 포함돼 있습니다.

작품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또는 재미있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열린 한국 공식 이민 120주년 기념사업 '코리안 디아스포라-한지로 접은 비행기'라는 특별전에 초청돼 다녀왔어요. 세계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17명의 아티스트들을 초청한 전시입니다. 영광스럽게도 제가 호주를 대표해 초청을 받아 참가하게 됐는데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특히 고국에서 전시하게 된 것에 대한 의미가 컸습니다.


< 이현희 작가의 '하얀 눈물(White Tears)'과 '고백(Confession)' - 출처: 이현희 작가 제공 >

< 이현희 작가의 '하얀 눈물(White Tears)'과 '고백(Confession)' - 출처: 이현희 작가 제공 >


케이팝,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 한국문화에 관한 관심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작가님께서 실감하시는 한류는 어떤가요?
학창 시절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반 친구가 저에게 "너 싸이 아냐?"라고 묻더라고요. 그러면서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유명한 가수인데 너도 아마 그만큼 유명해질 거야"라며 농담을 하더군요. 사실 저는 학창 시절에 TV를 잘 안 봤어요. 당시 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상을 받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아는 친구가 제게 이렇게 말했나 봐요. 그때부터 조금씩 한류의 힘을 실감하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에는 "<오징어 게임> 봤냐?"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딸의 도움을 받아서 이틀에 몰아서 시청했죠. 시청하는 내내 한국문화가 정말 전 세계적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고 어떤 작가로 남고자 하시나요?
봉준호 감독님이 하신 말씀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기억에 남네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다(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이 문장이 저의 작품관과 일맥상통합니다. 정체성을 가지고 저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2023년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2023년 3월 시드니문화원에서 열리는 한호예술재단(KAAF) 전시에 참여할 예정이에요. 7월에는 시드니에서 아트리얼갤러리(Artreal Gallery) 개인전, 9월에는 서울에서 카라스갤러리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에 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작품 활동에 전념할 예정이에요.

작품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를 아우르며 본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내면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더불어 작품에 나타나는 작가의 성실함에 고개를 숙이게 됐다.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호주에서 당당하게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현희 작가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통해 또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된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 이현희 작가 제공



김민하

성명 : 김민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호주/시드니 통신원]
약력 : 현) Community Relations Commission NSW 리포터 호주 동아일보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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