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된다. 석정은 약사
구분
문화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3.10

몇 해 전 큰 도전을 통해 인생이 바뀌고 새 삶을 살아가고 계신 자랑스러운 한국인 '석정은 약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살림과 육아 가운데 오랜 공부 끝에 약사가 되셔서 행복하게 약국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었는데요. 그다음 목표로 병원에서의 약사를 또 꿈꾸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석정은 선생님이 떠올라 지금은 어떤 도전과 삶을 살아가고 계실지 궁금했고, 많은 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 시작을 하며 많은 한인에게 도전과 힘이되는 이야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미국 텍사스 달라스의 파크랜드 병원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석정은이라고 합니다. 저는 두 아들의 엄마이고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약사에 도전해 큰 노력 끝에 약국을 거쳐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어요.


Q. 살림과 육아를 하면서 시간을 내어 전문적인 공부를 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 도전이 궁금합니다.

약사 공부를 시작한 건 서른두살 때입니다. 저는 마케팅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나름 큰 대기업 회사에서 평탄하게 직장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하다가 임신, 육아휴직을 하면서 다시 회사에 복귀하려니 부담스럽더라고요. 또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었는데 육아휴직을 다시 신청해야 하고 돌아가 적응해야 하고 어린아이들을 두고 가는 마음이 어렵고 여러 마음으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당시 약사로 일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어요. 우연히 친구 하루 급여명세서를 보게 됐는데 제 일주일 주급이랑 비슷한 거예요. 정말 놀랐죠. 그 친구도 아이를 키우면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날 저는 어디서 생겨나는지 알 수 없는 담대한 마음으로 공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알아보니 약대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2년 과정을 공부해야 했어요. 우선 저는 끝을 보지 않았어요. 시작은 그냥 육아휴직이 지루하고 심심해서 뭐라도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에 시작했지만, 시작과 동시에 의료선교라는 비전을 보게 되고 그 비전이 끝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인생을 계속해서 돌아보면 동기부여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약국 약사로 일하시던 석정은 약사의 모습, 새로운 도전과 꿈을 향해 매일 성실히 사는 아름다운 한국인입니다.]

[약국 약사로 일하시던 석정은 약사의 모습, 새로운 도전과 꿈을 향해 매일 성실히 사는 아름다운 한국인입니다.]


Q.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등록해서 기초과목부터 시작했죠. 주변에서 많이 말렸어요. 친구들이 대놓고 제게 말했습니다 "정은아 그건 아니야… 아닌 거 같아." 화학 공부를 하던 동생도 약사의 길을 준비하다가 포기를 했었다며 저에게 포기하라고 권유하면 저는 "그래? 그렇구나.." 정말 이런 반응이었어요. 신기하게도 걱정 없이 당연한 길을 가듯이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학생으로 긴장과 떨림 속에 시작했죠. 이과적인 교실 분위기도 다르고, 수업 첫날에 아이 이유식 만들다가 밥풀 튀고 시간이 돼서 서둘러 학교에 가서 맨 뒤에 앉아있었어요. '저건 영어일까? 숫자일까?' 모르겠는 칠판 글씨… 수학 문제는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죠. 저도 모르게 계산기를 챙겨가긴 했는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게 수업 첫날의 제 추억이고 기억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매일 학교 끝나고 튜터링 센터에 가서 추가 공부를 했죠. 당연히 과제는 미리 도움을 받아 검사받고 내야 했고요, 유모차 끌고 간 적도 있어요. 참 쉽지 않았죠?

한번은 생물 수업 후 튜터링센터에서 열심히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데, 한 반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방금 시험 끝나고 나왔는데 너는 왜 안 왔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시험 날짜를 착각했던 거예요. 바로 달려가 시험을 봤어요. 이미 끝난 시간이었죠. 내일 아침에 시험 볼 기회를 다시 준다는데 저는 시험이 다음 주인 줄 알았기 때문에 공부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정말 막막했죠. 집에 가서 공부를 시작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꼬박 다음 날 아침까지 공부했어요. 그리고 결과는? 100문제 중 99개를 맞았답니다.

약대 진학 후, 긴장의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전체 과목에서 F가 2개면 퇴학 처리가 됩니다.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죠. 영어를 제2외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모든 수업이 토론과 스터디그룹으로 진행됐습니다. 한번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아프다며 데리고 가라고 연락이 왔어요. 한 교수님이 자신의 방에서 아이를 봐주시고 저는 시험을 본 적도 있답니다. 정말 마음이 힘들었지만, 그날 본 시험이 졸업할 때까지 제가 잘 본 시험이에요. 제가 평생 공부를 재미있게 안 해봤는데 그때는 참 재미있게 했어요. 아이들이 자면 그때 공부를 시작해 새벽까지 매일 공부하면서 참 공부가 꿀맛이라고 느꼈어요. 육아에 대한 무료함에서 무언가 탈출하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피곤하지 않았어요. 짜증이 날 때가 있었다면 그건 빨리 책을 봐야 하는데 애들이 안 자서 나는 짜증이었어요. 어려움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저의 자랑이 되어버렸네요.

Q. 이제껏 일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들이 있다면?
미국에서 약사로서 일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최근에 경험하고 깊은 깨달음의 시간은 가져다준 사건이 있습니다. 큰 병원에서 많은 직장 동료들과 일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특히 미국인 사회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몰랐던 문화적인 차이 그리고 인종마다 다른 가치관의 차이 같은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중 어디를 가나 피할 수 없이 겪게 되는 일이 인간관계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병원은 24시간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하루에 3번의 근무 교대가 있습니다. 교대하는 시간에는 때에 따라서 전 근무 시간에 처리하지 못 한 일들이 다음 근무 시간 약사에게 넘어가는 일이 있습니다. 모두 최대한 근무 교대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담당 시간에 일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어쩌다 가끔은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제 생각에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종종 저에게 내려오는 일들에 전혀 아무런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약사가 제가 어쩌다 한두 번 저의 일을 마무리 못 하고 넘어갔을때 매니저에게 그것을 스크린 캡처까지 해서 매번 항의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매니저는 회사 규정상 반드시 당사자에게 언급해야하기에 저에게 이야기했고 그런 일이 저에게는 너무나 큰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매니저는 저도 다른 약사가 하듯이 전 시프트에서 넘어오는 일을 다 기록하고 매니저에게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마음에 화가 치밀어서 똑같이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캡쳐했지만, 매니저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태도가 너무 유치하고 솔직히 제 마음에는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약사를 긍휼히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작은 것도 배려하지 못하고 마음을 저리 걍팍하게 살아가는 본인은 정작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지금 어떤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지나가고 있는 과정인지도 몰라. 사람이 힘들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기도 하지.. 그런 마음이 들면서 그 동료의 일을 더 도와주고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더 따뜻하게 대해 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차가운 얼음 같았던 우리 둘 사이에 공기가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지만 관계가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을 느끼며 사랑과 용서, 이해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파크랜드 병원, 소아병동에서 약사로 일하는 선생님의 모습,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자리에 있는 약사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파크랜드 병원, 소아병동에서 약사로 일하는 선생님의 모습,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자리에 있는 약사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Q. 약사로서의 행복하고 보람된 부분이 있다면?
지금 제가 근무하는 병동은 신생아응급실 병동입니다. 미숙아들이 장기들이 완전히 형성되지 못한 채 나오게 되면 자가 호흡이 어렵고 그러면 항상 시각과 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이 대부분입니다. 몇 분 안에 호흡하지 않으면 살 가망이 없고 심장도 스스로 힘차게 뛰어 주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정상적인 아기는 39주를 채우고 나와야 하는데 제가 그동안 받아본 아기 중에는 22주 23주도 있었습니다. 정상 몸무게가 4,000g인데 그런 아기들 몸무게는 400~600g으로 나옵니다. 눈도 아직 붙어서 떨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고 심장이 다 형성이 안 돼서 심방 심실막이 아직 다 안 만들어져서 심장 기능이 안 되는 아기들. 솔직히 현실적으로 22주의 태아는 태어나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가장 어린 태아가 살아난 것이 23주가 현재 기록에는 최소이니까요. 그런데도 의료진, 의사들이 그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의료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서 살려내려고 분투를 벌이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고 제가 그 일에 작은 한 부분이나마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보람됩니다.

Q. 아이들이 두 명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아들인가요?

제가 녹록지 않은 인생을 살다 보니 일인삼역, 사역, 멀티 테스킹은 그냥 기본이 되었고 웬만한 노력과 열심은 저의 기준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다 보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준도 저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일 분, 일 초의 시간도 의미 없게 보내는 것을 용납할 수 없고 한 시라도 그 시간이 생산적으로 쓰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여유를 부리며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태도를 잘 용납하지 못합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참 착하게 자라줘서 엄마의 이런 숨 막힐 수 있는 양육 태도를 이해해 주고 있기는 한데 가끔 생각해 보면 제가 우리 아이들 나이 때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억해 보고 저의 아이들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가끔 아이들에게 내가 너무하는 것 같다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저 주신 귀한 시간을 한시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Q. 이민세대로 이국땅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선생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저의 이러한 타이트한 양육에도 아이들이 반항하지 않고 잘 따라와 주는 것은 제 생각에 많은 대화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 친밀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엄할 때는 엄격하게 그러나 아이들과 친구같이 보낼 때는 가끔은 아이들이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친밀한 엄마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Q. 아이들에게 특별히 교육해오거나 고수해오는 한국의 문화, 글, 언어 등 한국적인 것이 있으신가요?
제가 한국인 1세이다 보니 거의 모든 부분이 한국식으로 양육되는 것 같습니다. 음식도 거의 한식으로 하게 되고, 모든 생활 태도, 예의범절 등 한국적인 요소가 많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이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알려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Q. 병원에서의 약사를 꿈꾸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약사로 일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크리스쳔으로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간다'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발 한발 인도해 주시고 문을 열어 주시는 대로 기다리며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약사로서 아픈 아이들을 돌보려면 그냥 약만 짓는 일로 경력을 쌓는 것보다 실제로 아픈 아이들을 보고 치료에 참여하는 병원 클리니컬 약사의 일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약대를 다닐 때부터 졸업 후 커리어를 찾는 때까지 항상 병원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했었는데 저의 모든 상황과 여건이 일반적인 병원 약사의 길에서 점점 벗어나는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달라스라는 메트로플렉스에서 병원 약사의 일반적인 커리어의 길을 걷지 않은 저에게 병원에 들어간다는 소망은 마치 그저 꿈과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잃지 않고 약국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함으로 기쁘게 기다리고 있는 저에게 달라스에서 가장 큰 병원, 가장 혜택이 좋은 국가기관 병원으로 재정적, 학자금 융자, 미래에 대한 재정까지 모두 한번에 해결받을 수 있는 '파크랜드병원'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파크랜드는 저소득층을 위한 카운티병원이고, 그리고 더 놀라운 인도 하심은 제 담당 병동이 신생아 응급실 담당(NICU) 이었습니다. 사실 NICU는 일반 약사의 진로와 조금 특별하게 그쪽을 애초에 목표로 하고 따로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저는 그냥 이렇게 하나님 낙하산으로 뚝 떨어뜨려 주셔서 기대하지 못했던 신생아, 소아과를 전문으로 일을 배우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를 만들어서 사용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 기대됩니다.

Q. 한국에서 혹은 미국에서 약사님의 새로운 삶처럼 어려운 도전을 앞둔 분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우선은 지금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일이 진정 내가 꿈꾸고 소망하는 일인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꿈꾸고 있는 그 꿈의 너머에 있는 꿈의 의미를 마음에 진정한 꿈으로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보이는 현실적인 성취보다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치에 목적을 둘 때 우리는 더욱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또 지치지 않으며 끝까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이 먼저 가슴에 깊이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백하영
 미국 백하영
 아리랑TV,KBS1TV 예능,휴먼다큐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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