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뉴질랜드의 다문화 정책과 크라이스트처치 ‘2023 컬처 갈로아’에서 펼친 한국문화의 진수
구분
문화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3.10

해마다 2월에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작은 세계 축제가 열린다. 이른바 '컬쳐 갈로아(Culture Galore)'라는 다문화 행사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인구가 37만 명 정도에 불과해 소도시로 연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뉴질랜드 전체 인구가 약 515만 명이므로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또 전 세계에서 유입된 이민자들로 구성돼있다. 그러므로 인종·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런 면에서 이 도시에서 열리는 '컬쳐 갈로아' 행사는 각 국가의 전통음식, 음악·무용 공연, 공예품 전시, 페이스 페인팅, 활쏘기, 바운스 캐슬, 경찰의 스피드 건 체험 등이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경찰, 소방서, 뉴질랜드 암 협회 등 여러 기관과 사회단체들의 홍보 부스도 설치된다.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좋아하는 연중행사 중의 하나다. 그래서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가족 단위, 친구 단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평소 볼 수 없었던 놀이기구를 선보이는가 하면, 레포츠도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컬쳐 갈로아 2023에서 무대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들

컬쳐 갈로아 2023에서 무대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들


이런 행사가 열리는 이유는 뉴질랜드가 200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는 점에 기인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많은 민족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크고 작은 인종·문화 간 충격·갈등이 있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기에 이르렀다. 몇 해 전 크라이스트처치의 가장 큰 공원인 해글리(Hagley) 공원 근처에서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 간의 논쟁이 벌어졌는데 지나가던 백인 남자가 서로 간의 말을 들은 후 상호 화해를 하게 하여 다행히 잘 마무리된 사건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도처에 문화 차이로 인한 여러 가지 갈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해소하는 일이야말로 국가 발전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다양한 이민자로 구성된 뉴질랜드는 다문화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 남태평양의 섬 뉴질랜드로 이주해 왔다. 이주 이래 1600년대까지는 다른 민족의 유입이 없었으나 1700년대부터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인들이 뉴질랜드로 이주가 시작됐고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300여 년이 넘는 동안 유럽인의 이민만 허용한 셈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뉴질랜드 문화의 축은 마오리 문화와 백인 문화 양축이었다. 1800년대에 중국인들의 유입이 한동안 있었으나, 이들은 이민자의 신분이 아닌 오타고 지역 금광 개발 노동자 신분이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권역에서 이민자의 유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이민자 유입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1990년대 초부터였다.

이렇듯 여러 민족 유입이 이뤄지자 뉴질랜드는 정부 부처 소속의 이민자 지원 정책 업무를 담당할 기구인 소수민족 사무처를 2001년 설립한다. 다민족 사회에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야 궁극적으로 공영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국가 성장의 동력으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다. 뉴질랜드는 이민자들에게 뉴질랜드 문화만을 일방적으로 흡수하거나 동화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각 민족의 언어·역사·문화·전통·관습을 존중한다. 이해심과 배려심이 선행되어야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문화 행사 '컬처 갈로아'는 지난 2001년부터 개최한 이래 올해로 23년째를 맞이했다. 행사라기보다는 다 함께 즐기는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이 축제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족 우월주의를 지양하는 동시에 인종 간의 이해를 돕고 사회적 통합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문화 축제는 지역민과 이민자가 함께 노력하는 상생과 평화의 축제라 할 수 있다.

지난 2월 18일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크라이스트처치 아일람에 있는 레이 블랭크(Ray Blank) 공원에서는 컬처 갈로아 2023(Culture Galore 2023) 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레이 블랭크 공원은 평소 접근이 용이하고 넓어서 야외활동을 하는 데 적합한 장소다. 행사가 열리는 당일 행사장을 찾았다. 계절적으로 여름인 탓도 있지만 낮 최고 기온이 무려 30도 이상까지 치솟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 주변은 몰려든 인파와 차량으로 혼잡했다. 행사장으로 가는 사람도 많지만, 행사장 입구부터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경찰차와 경찰관들이 눈에 띈다. 경찰관 한 명이 잔뜩 웅크린 자세로 손에 들고 있는 뭔가를 유심히 본다. 정면을 응시하고 어린이가 경찰관을 향해 뛰어왔다가 다시 오던 길로 뛰어간다. 경찰관의 손에 든 것은 스피드 카메라였는데, 이를 이용해 어린이들의 달리기 속도를 측정해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컬쳐 갈로아 2023에 참여한 경찰과 어린이들

컬쳐 갈로아 2023에 참여한 경찰과 어린이들


행사장에는 크라이스트처치 지역민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30여 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여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번 행사에는 35개의 국가 전통 먹거리 판매대가 마련됐으며 20개 이상의 공연이 이뤄졌다. 비좁은 사람들 틈 사이로 행사장을 지나고 있는데 '불고기', '비빔밥'이라는 친숙한 우리말이 들려온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크라이스트처치한인회'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인다. 한인회 앞쪽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반가워서 가까이 다가가니 자원봉사자들이 비빔밥과 불고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주문하는 많은 지역민이 '비빔밥'. '불고기'를 영어 번역이 아닌, 우리말로 주문을 하는 게 아닌가. 한국어가 크라이스트처치 일부 지역민들에게까지 뻗어가고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한국어로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아지자 한인회 자원봉사자들도 덩달아 신이 난 기분이다. 우리말, 우리 문화의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와 반면에 다른 국가의 음식 주문은 여전히 영어로 주문하는데 말이다. 한국 전통 음식이 이제 우리만이 아닌, 뉴질랜드 현지인, 세계인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됐다.


컬쳐 갈로아 2023에서의 크라이스트처치 한인회

컬쳐 갈로아 2023에서의 크라이스트처치 한인회


음식의 판매 목적이 한국문화센터를 건립하는 데 필요한 기금 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참 유의미한 일이다. 그동안 한국문화센터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 문화를 즐기고 계승해 왔다. 문화센터 건립은 분산된 우리 민족의 문화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린 무대 공연도 있었다. 사물놀이팀과 한국학교 무용팀이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사물놀이 의상을 입고 참가한 사물놀이팀은 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관중과 함께 호흡하는 장단을 연주했는데, 관중들은 장단에 맞춰 함께 박수를 쳤다. 부채춤 또한 한국문화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인의 자긍심을 갖고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를 높이며 한류의 토대를 쌓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슴이 뭉클하였다.


컬쳐 갈로아 2023'에서 사물놀이 공연, 출처: 코리아리뷰(2023.2.21.자)

컬쳐 갈로아 2023'에서 사물놀이 공연, 출처: 코리아리뷰(2023.2.21.자)





박춘태
 뉴질랜드 박춘태
 한글세계화운동 뉴질랜드 본부장
 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국제교류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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