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디아스포라의 한인 여성, 돌아올 수 없는 여성들 사진전 아르헨티나 관객과의 만남
구분
문화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3.30

62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체감 온도 40도를 웃도는 날씨로 인해 기상청은 폭염 적색경보를 발동했고 학교는 수업을 단축하거나 중단하기도 했다. 이런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1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시 누녜스 지역에 위치한 '기억과 인권의 공간(Espacio Memoria y DDHH)' 내에 있는 '정체성의 집(Casa por la identidad)'에서는 '디아스포라의 한인 여성, 돌아올 수 없는 여성들, 위안부' 사진전이 성황리에 개막했다.


행사장소


이번 사진전은 재아한인회와 '5월의 광장 할머니회(Abuelas de Plaza de Mayo)'가 함께 주관해 5월 31일까지 진행한다. '5월의 광장 할머니회'는 NGO 비정부 기구로, 50여 년 전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 군부가 무고한 시민 3만여 명을 납치, 고문 살해한 사건의 희생자 자녀들이 강제 입양되었는데 '할머니회'는 그 시절 강제 입양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 설립됐다.


전시된 사진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아시아의 정치와 인권 테마에 대해 사진 작업을 해오며, 위안부 생존자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에서 근무했던 야시마 츠카사(Yajima Tsuksa) 사진작가가 촬영한 한인 여성 위안부, 고인이 되신 네 분(故 김의경, 박서운, 이수단, 박우득)에 관한 사진을 전시했다.


행사현장1


개막식은 현지에서 '위안부'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30여 분간의 패널 좌담으로 시작됐다. 이번 사진전을 후원하고 패널로 참가한 동포 기업 피보디(Peabody)의 최도선 대표는 "여기 참석하신 모든 분께 '공감, 한 그리고 여유'라는 단어 3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첫 번째 단어인 '공감'에 대해서 아이들이 엄마의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배려와 공감을 통해 배워나가듯, 우리 또한 법을 통해, 서로 다른 가치를 통해 그리고 공감을 통해 성장하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어는 '한'인데요, 정확하게 스페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는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어로 '한'이란 의미는 오랫동안 그게 몇십 년일 수도 혹은 몇 세대가 줄곧 겪으며 차곡차곡 축적된 슬픔에 대한 커다란 감정, 걱정이나 고통에 대해 겪는 아픔 또는 분노 등이라 말할 수 있는데요. 한국은 강대국들 사이에 껴서 침략받았던 나라이기에 많이 참고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본인들을 '한이 많은 민족이다'라고 합니다."라며 서문을 열었다.


행사현장2


그 후 사진전의 큐레이터를 맡은 마리아 델 삘라르 알바레스(Maria del Pilar Alvarez)는 "'위안부'는 일본어로 사용하던 한자 '이안후'의 직역으로 일본이 아시아 점령 기간 식민지에서 일본군에 의해 여성을 대상으로 가해진 성범죄 행위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명칭이며 대략 20~40만 명의 여성이 식민지에서 납치되어 인신매매로 착취되었으며, 이는 현대사에서 가장 거대한 전쟁 범죄입니다. 전시된 사진 속의 희생자분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두려움, 공포, 가난을 겪으면서 고향인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직도 군부 시절 실종된 자녀의 손주들을 찾고 있는 '5월의 광장 할머니회' 대표 에스뗄라 데 까를로또(Estela de Carlotto)는 "제가 현재 92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군부 시절 희생된 자녀의 자식들인 300여 명의 손주를 여전히 찾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정신이 옳지 않다, 미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이자 할머니이기에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예전 한국에서 일어났던 아픈 일들이 절대로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기억이 남겨져 더 이상 아픈 과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저희 '5월의 광장 할머니회'는 위안부 희생자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사진전을 둘러보던 동포 현귀애 씨는 "너무 뜻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여성의 달인 5월에 아픔이란 주제로 현지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감동적입니다. 같은 여자로서 그녀들이 겪었을 슬픔과 아픔을 생각하면 뭐라 감히 말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저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보면서 그녀들의 아픔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라며 동포로서 느낀 감정을 전해 주었다.


또 다른 동포 최 리카르도 씨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알 수 있게끔 사진을 찍고 그런 운동을 하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이 전시회를 열어 사람들이 널리 알 수 있도록 하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요. 제가 그간 동참하지 못했음에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1,300km 떨어진 곳에 있는 뚜꾸만주에서 이번 사진전을 보기 위해 온 현지인 관람객 베로니카 모그로(Veronica Mogro)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예전에 들어본 적 있습니다. 저에게 딸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예전 한국 여성들에게 일어났던 역사를 잘 알고 이를 토대로 현재 우리 여성들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전시회가 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지방에서도 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는 소망을 전달했다.


행사현장3


국립 과학 기술 연구회(CONICET)의 연구원이며 아르헨티나 내의 한국 연구회 회장인 셀레스떼 까스띠리요네(Celeste Castiglione)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해 연구를 진행해와서 알고 있던 주제였습니다. 재아한인회가 이번 주제로 아르헨티나 정치계와 연계를 갖게 되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도 아픈 역사(군부 시절의 민간 희생자들)가 있기에 어느 정도 공감되는 포인트도 있다고 보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잊고 있던 슬픈 역사에 대해 상기되는 점은 훌륭하다고 보입니다."라고 전했다.

생전에 김의경 할머니는 "아직도 그 당시의 남대문이 기억나는데, 중국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이제 한국말도 못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박서운 할머니는 "저는 11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내 형제들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나는 가족을 돕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업소개소에 팔렸고 중국의 위안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수단 할머니는 "아직도 중국 음식보다 한국 음식이 더 좋은데, 더 이상 한국어가 기억이 안 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박우득 할머니는 "2005년 4월, 전쟁 이후로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였습니다. 나의 나라인 한국 생활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있는 가족이 너무 그리워 다시 가족한테로 돌아갔습니다."라는 말을 남겨 주셨다.


행사현장4


이번 전시회를 통해 고향을 떠나 중국에서 생활하다 생을 마감한 故 김의경, 박서운, 이수단, 박우득 할머니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우지 말고 마음속에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덕주
 아르헨티나 정덕주
 부에노스한글학교 교사
 프리랜서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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