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돈(Дон)의 고려인들과 그들이 설립한 한글학교 사명들
구분
교육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4.14

1994년 12월, 생애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다.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은 열정이 충만한 20대 초반이었다. 러시아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러시아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러시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중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데이비드 린 감독의 '닥터 지바고(1965)'를 가장 좋아하셨다. 어린 시절, 영화 속에서 감상한 러시아 겨울 풍경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이 영화의 겨울 풍경은 핀란드, 여름 풍경은 스페인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 후다.


12월에 직접 만난 러시아 겨울 풍경은 영화와는 사뭇 달랐다. 모스크바 국제 공항에는 진짜 무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외국인을 검열했다. 최악의 긴장감 속에서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 겨울 현실은 낭만은 커녕 뼈까지 시린 추위뿐 이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약 1시간 30분을 남쪽으로 날아 도착한 도시가 바로 로스토프나도누였다.


로스토프나도누에서 2년 반 동안 거주했다. 어릴 때 영화에서 감상한 겨울 풍경과 달랐지만 이 도시는 다른 의미에서 아름다웠다. 30년 세월이 흘렀어도 이 도시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모스크바에서 정남쪽으로 1,100km 정도 떨어진 북캅카스 지역 최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가 선물한 가장 큰 아름다움은 그 땅에 거주하는 한인들, 즉, 돈(Дон)의 고려인들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낯선 이방인을 완전한 가족으로 품어주었다.


행사사진


2022년 10월 21일, 한러대화 주최로 제4회 박경리 문학제가 온라인 세미나로 열렸다. 당일 러시아국립인문대 동양어학부 조교수 M.V. 솔다토바는 『박경리와 미하일 숄로호프의 창작에서 '대지'의 형상』이란 제목으로 매우 인상적인 주제 발표를 했다. 미하일 숄로호프는 '고요한 돈강'의 저자다. 이 작품은 1925년부터 1940년까지 15년에 걸쳐 쓰여졌으며, 숄로호프는 이 소설로 196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러시아 혁명에 저항하는 돈 지방 인생들의 불가피한 몰락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대서사시다. 작품 곳곳에서 전쟁과 혁명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아름답고 유유히 흐르는 돈강이 대조되어 묘사된다. 비참한 전쟁을 경험하고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주인공 그레고리는 돈강을 향해 독백한다. '돈강이다. 우리들의 돈! 고요한 돈강이다. 우리의 친아버지, 우리를 길러 준 어버이여 오라!' 숄로호프는 표면적으로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인간 그레고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본 작품 주인공은 결국 자연, 삶의 젖줄이 되는 강, 돈이다. 혁명과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무심히 흘러가는 돈강이 작품에서 아름답고 처연한 시처럼 묘사된다. '고요한 돈강' 덕분에 돈강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돈강을 자랑스러워하며 어머니와 같은 정서적 안식처로 인식한다.


로스토프나도누 본래 이름은 '로스토프'다. 모스크바 근처 황금 고리를 구성하는 오래된 고대도시 중 하나인 야로슬라블주의 '로스토프'와 구별하기 위해 도시 이름 뒤에 '나도누'를 덧붙여 그대로 도시 이름이 되었다. 러시아어로 '돈강에 있는'이라는 의미다. '돈강에 있는 로스토프'라는 이름처럼 로스토프나도누는 돈강 하류 아조프해 연안에 있다. 이 지역은 농사에 적합한 '검은 땅' 지역으로 곡물 생산량이 러시아 4위 수준이다. 2020년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맞아 로스토프나도누 고려인협의회가 출판한 『Корейцы Дона(돈의 한인들)』에 의하면, 이 도시 고려인의 거주 역사는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에 85명의 한인이 로스토프나도누주에 살았고 그중 68명은 도시에 거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규모 단위로 이 지역에 고려인들이 정착하게 된 시기는 1951년부터 1953년이다. 고려인 거주 지역 제한이 해제된 이 시점부터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던 다수의 고려인들이 러시아 남부 쌀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돈강 지역으로 영구 이주했다. 현재 7만여 명에 이르는 고려인들이 돈 지역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동포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단체사진


지난 12월 3일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한 '돈의 한국 문화 축제'가 로스토프나도누주 고려인협의회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본 행사에는 로스토프나도누주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한인 지도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또한 한국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 단체들 공연과 학생들의 현대와 전통을 넘나드는 화려한 춤과 노래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행사를 앞장서서 주관한 고려청년학교 엄 알렉산드르 교장은 축사를 통해 돈의 고려인들의 협력과 화합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


돈의 고려인들이 긴 세월 속에서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 전통, 역사를 계승하고 지킬 수 있는 중심에는 각 지역 고려인협의회에 의해 설립된 한글학교가 있다. 2023년 현재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에 등록된 로스토프나도누주 한글학교는 총 6개다. 이 학교들 특징은 그 지역 고려인협의회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점과 한국에서 이주한 한인들이 아닌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려인 교장들에 의해 설립 혹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 로스토프나도누주 한글학교 교장들과 전 교육원장의 만남. (좌측부터) 바따이스크꼬이숙 한글학교, 올긴스까야 한글학교 유 유리 교장, 고려청년학교 엄 알렉산드로 교장,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 전  행정원 베로니까,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 윤영아 전 원장, 꿀리쇼프카 한글학교 유 따찌아나 교장, 금강산문화학교 최 알뜨나이 교장, 바따이스크 한글학교 전 블라지미르 교장. 돈 고려인의 한인 정체성을 지켜주는 한국어 교육자들의 의미 있는 만남이다. (사진 출처 :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

▲ 로스토프나도누주 한글학교 교장들과 전 교육원장의 만남. (좌측부터) 바따이스크꼬이숙 한글학교, 올긴스까야 한글학교 유 유리 교장, 고려청년학교 엄 알렉산드로 교장,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 전  행정원 베로니까,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 윤영아 전 원장, 꿀리쇼프카 한글학교 유 따찌아나 교장, 금강산문화학교 최 알뜨나이 교장, 바따이스크 한글학교 전 블라지미르 교장. 돈 고려인의 한인 정체성을 지켜주는 한국어 교육자들의 의미 있는 만남이다. (사진 출처 :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


1. 금강산문화학교 (교장 : 최 알뜨나이)

금강산문화학교는 모스크바 한국대사관과 로스토프나도누 한국문화원 지원으로 2008년 2월 개교했다. 한국어를 통해 많은 학생이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 문화와 전통에 대한 강의와 전통 무용 수업이 시작되었다. 최 알뜨나이 교장은 크라스나다르 국립대학에서 문화와 전통춤을 전공한 재원이며, 로스토프나도누주 한국 무용 앙상블 '금강산' 대표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전통에 대한 관심보다 현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그러나 금강산문화학교는 전통과 문화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배우며 전통 무용을 발전시키고 보존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은 매년 열리는 한국 문화의 날 축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 문화와 관련된 도시 행사에 참석 및 출연하면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금강산문화학교는 코로나19 이전에 활발한 대회 활동을 통해 학교 인지를 높였다. 2019년에 사물놀이 창립자인 김덕수 마스터 클래스에 학생들이 참석했다. 2018년에 FIFA WORLD CUP 축구 대회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열렸을 때, 금강산문화학교는 콘서트를 주최해 한국 대표팀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기다.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낸 금강산문화학교가 한국 전통문화 계승에 대한 학교의 설립 동기와 사명을 더 효과적으로 감당하기를 기원한다.


행사사진


2. 꿀리쇼프카 한글학교 (교장 : 유 따찌아나)

꿀리쇼프카는 로스토프나도누 시내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인구는 약 15만 명이다. 꿀리쇼프카 한글학교는 꿀리쇼프카 고려인협의회에 의해 2000년 9월에 개교했다. 유 따찌아나 교장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한국학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본교는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성인으로 구성된 [초급],[중급 1],[중급 2] 3개 반에 30여 명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와 직장을 다니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초등학생 중에는 부모님이 이미 한국으로 이주한 경우도 있다. 러시아에서 9학년을 마친 고려인 가정 자녀들도 부모님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할 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고려인 집단촌이 형성되어 있는 꿀리쇼프카에는 잃어버린 모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고려인 어르신들도 많다. 어르신들을 위한 한국어반도 개설하였으나 학교에서 몇 학기를 공부한 후에 영구 이주를 위해 한국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꿀리쇼프카 한글학교에는 매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새로운 고려인들이 찾아오지만 동시에 떠나는 경우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현재 고려인 한글학교의 전반적인 추세이며 현실이다. 그런데도 꿀리쇼프카 한글학교는 한국어, 한국 전통과 역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이 학교의 사명이다.


 꿀리쇼프카 한글학교  학생들


3. 바따이스크 한글학교 (교장 : 전 블라지미르)

바따이스크는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남쪽으로 약 15km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고려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다른 한글학교와 마찬가지로 본교도 바따이스크 고려인협의회에 의해 1993년에 설립되었다. 현재 러시아한글학교협의회에 소속된 33개 한글학교 가운데 비교적 초창기에 세워진 학교이다. 처음 설립 시에는 바따이스크 2번 중학교에서 수업했다. 초창기에는 6개 한국어 반이 있었고, 사할린에서 온 한인들과 한국에서 온 교사들이 즐겁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들이 개인적 사유와 대학 진학 등으로 한국으로 귀국한 상황이라 교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사 수급의 어려움과 고려인 학생들 감소는 현재 고려인들로 구성된 러시아 한글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현실적 문제들이다. 현재 바따이스크 한글학교는 바따이스크 문화회관에서 일요일에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일요일 하루 동안 세 개 수업을 3년 동안 이수해야 한다. 바따이스크 한글학교는 로스토프나도누 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 블라지미르 교장은 지난 2022년 11월에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교사 연수에 처음 참석했다. 모스크바에서 로스토프나도누까지 왕복 2,400km를 차로 운전해서 연수에 참석했다. 열정과 사명감 덕분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바따이스크 한글학교는 돈의 고려인들과 자녀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바따이스크 한글학교  학생들

4. 바따이스크꼬이숙 한글학교, 올긴스까야 한글학교 (교장 : 유 유리)

꼬이숙은 로스토프나도누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20km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그 지역에도 많은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유 유리 교장은 2006년에 고려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바따이스크꼬이숙 한글학교를 설립했으며, 현재까지 교장과 교사로 학교를 운영하며 가르치고 있다. 본 학교는 3명 교사가 각각 반을 맡아 지도하고 있으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이 한국 요리와 한국 전통 의복에 관심이 많아 특별 문화 수업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유 유리 교장은 2021년부터 두 개 한글학교 교장이다. 올긴스까야 한글학교는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 지원으로 2006년에 개교했다. 이전 학교 교장이 사임하면서 2020년 4월 폐교 위기를 겪었으나 학생들 요청으로 2021년 9월부터 유 유리 교장이 본교를 맡아 학교를 운영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긴스까야 지역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동쪽으로 약 30km에 위치한 고려인 집단 거주 지역이다.


바따이스크꼬이숙 한글학교, 올긴스까야 한글학교 학생들


5. 고려청년학교 (교장 : 엄 알렉산드르)

고려청년학교는 돈의 고려인들과 자녀들 정체성 교육에 앞장서는 로스토프나도누주의 가장 대표적인 학교이다. 본 교는 2001년 9월에 개원한 로스토프나도누 한국문화원에 등록된 한글학교로, 2010년 엄 알렉산드르 교장에 의해 설립되었다. 엄 알렉산드르 교장은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그 후 가족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하였으나 대학 교육을 위해 로스토프나도누로 다시 이주했다가 이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2010년 당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던 한국문화원에 한국어 어린이반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교장 본인 집에서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고려청년학교 설립 동기가 되었다. 수업은 주 중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주말에는 오전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어반]은 나이에 따라 6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외에도 [노래반], [케이팝 댄스반], [한국무용반]이 나이별, 성별로 구분되어 있다. 고려청년학교는 로스토프나도누주에서 가장 많이 한국 관련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한국 명절과 국경일에 크고 작은 행사를 개최한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즐겁게 한국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습득할 수 있도록 고려인들을 독려하고 있다. 이것이 고려청년학교의 사명이다.


고려청년학교


지난 12월 3일, 로스토프나도누주 고려인협의회가 주최한 돈 지역 한국 문화 축제에서, 엄 알렉산드 교장은 고려인 정체성 교육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장을 받았다. 엄 알렉산드르 교장은 수상 소감과 축사를 통해 돈의 고려인들과 그들이 설립한 한글학교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경이로운 우리 고유 문화를 직접 접하고 만질 수 있는 한국 문화 축제를 개최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감사합니다. 로스토프나도누 지역은 민족 관계 측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지역 중 하나입니다. 돈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민족의 전통, 모국어, 민족적 가치를 잃어버릴 위험을 피하고자 우리 고유의 언어, 문화, 예술을 연구하고 기념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노력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돈의 고려인들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러시아 사회와 문화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동시에 우리 고유 문화를 보전하면서 영적 통합을 강화하는 긍정적 다민족 문화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이 땅에 한글학교가 존재하며 더욱 그 사명을 다해야 할 시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일치와 인내 그리고 자비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시국에 직면해 있지만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랑스러운 돈의 고려인으로 계속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건강, 번영, 평화를 기원합니다."


▶ 사진 출처 : 고려청년학교 엄 알렉산드르 교장(문화행사) 및 각 한글학교 제공







서지연
 러시아 서지연
 재외동포재단 해외통신원 3~8기
 러시아 바로네즈 한글학교 교장
 러시아한글학교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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