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독일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기습 철거 - 위기에 놓인 평화의 목소리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4.04.11

독일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기습 철거 - 위기에 놓인 평화의 목소리


독일 카셀대학에 설치됐던 평화의 소녀상이 지난해 여성의 날(3월 8일) 다음 날 기습 철거됐다. 이에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 e.V.)를 비롯한 현지 시민단체는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 인적이 드문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前설치 장소 - 출처: 통신원 촬영 >

< 인적이 드문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前설치 장소 - 출처: 통신원 촬영 >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은 왜
독일에는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반성하자는 의미의 추모비가 수도 베를린 한가운데 있다. 독일에서는 유대인 학살 희생자의 거주지, 생존 기간 등 정보를 새긴 황동판을 희생자의 주거지 앞에 설치하는 '걸림돌 프로젝트(stolpersteine project)'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 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되는 일이 일어났을까.

소녀상이 설치돼 있던 공공부지는 카셀대학 총학생회가 관리하던 곳으로 학생회는 학교 본부로부터 국제현대미술축제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를 위한 소녀상 설치를 위한 공식 허가를 받았다. 소녀상은 2022년 7월 8일 공식 허가와 함께 세워졌다.

이후 독일 카셀대학 소녀상은 주프랑크푸르트 일본 총영사의 철거 압력을 받았다. 주프랑크푸르트 일본 총영사는 소녀상 설치 3일 만에 카셀대 총장을 만나 "소녀상이 반일 감정을 조장해 카셀 지역의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소녀상은 대학 본부의 결정에 의해 철거됐다.


< 수요모임 현장 '평화의 소녀상은 유지되어야 한다(Die Friedenstatue muss bleiben!)' 문구 - 출처: 통신원 촬영 >

< 수요모임 현장 '평화의 소녀상은 유지되어야 한다(Die Friedenstatue muss bleiben!)' 문구 - 출처: 통신원 촬영 >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의미 있는 주제"
2023년 4월 26일 '소녀상 지킴이 수요모임'에 참석한 홍소현 씨와 토비아스 슈누어 독일 카셀대 총학생회장은 소녀상에 관해 묻는 질문에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먼저 카셀 근교에 거주 중인 홍소현 씨는 "카셀대 측에서 소녀상을 창고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딘지 정확하게 모른다. 아스타(AStA, 독일 학생자치단체)도 모른다. 다시 소녀상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기약이 없다."라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 설치 기획을 주도한 토비아스 슈누어 독일 카셀대 총학생회장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굉장히 의미 있는 주제"라며 "이 사안을 상징하는 소녀상은 카셀대 학생들이 연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라고 밝혔다. 독일 카셀대 캠퍼스 내 소녀상이 있던 장소에서는 매주 수요일 소녀상을 되찾기 위한 모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소녀상이 철거된 뒤 남아있는 빈 의자 - 출처: 통신원 촬영 >< 소녀상이 철거된 뒤 남아있는 빈 의자 - 출처: 통신원 촬영 >


< 소녀상이 철거된 뒤 남아있는 빈 의자 - 출처: 통신원 촬영 >평화의 소녀상은 반일인가 탈식민주의인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군은 점령지와 주둔지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여성을 강제 동원했다. 방법은 '약취 및 유괴', '모집'으로 나뉘었다. 전자는 민간업자, 관리, 경찰, 군 등에 의해 납치당하는 경우였다. 후자는 조선총독부가 직접 관여하는 관 알선 혹은 민간업자가 위탁받아 행한 취업 사기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6개국에서 수많은 여성이 성 착취의 피해자가 됐다.

첫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앞에 세워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000회차 수요시위를 기념해 건립한 것이다. 2015년 한일 외교부 장관의 합의문에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관련 문제가)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는 시민단체의 거센 저항을 불러왔다. 이 저항은 국내외 120개가 넘는 소녀상 설치로 이어졌다.

시로타 스즈코(가명)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처음이자 마지막 일본인 피해자다. 한국인 위안부 첫 증언자인 김학순 할머니보다 7년 앞서 증언했다. 그의 증언을 들은 후카쓰 후미오 목사가 역사상 첫 기림비를 세웠다. 이 기림비는 일본 지바현 다테야마시 '가니타 부인의 마을'에 있다.

평화의 소녀상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은 식민주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상징적인 행동이다. 특정 국가에 반대한다거나 국적을 기준으로 진영이 나뉠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에 남은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는 2024년 3월 기준 9명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한겨레 신문》 (2023. 3. 13). 독일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철거…일 정부는 집요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83235.html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023. 4. 4). 평화의 소녀상(平和의 少女像),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9679

- 《한겨레 신문》 (2023. 4. 5). [이사람] 위안부 피해 첫 증언 시로타를 아시나요,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36257.html#ace04ou

- 《오마이뉴스》 (2022. 7. 27). '소녀상 전시' 독일 박물관에 걸려온 이상한 전화,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3118

- 《서울신문》 (2016. 3. 11). 기억합니다 반성합니다, https://amp.seoul.co.kr/seoul/20160312018003





최경헌

  • 성명 : 최경헌[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프랑크푸르트 통신원]
  • 약력 : 주프랑크푸르트 대한민국 총영사관 현장실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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