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러시아서 한국 현대 미술 알리는 이훈석
구분
문화
출처
KOFICE(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작성일
2016.11.29

러시아 유력 일간지 로시스카야 가제타(РОССИЙСКАЯ ГАЗЕТА)에 소개된 한국 현대 미술전 기사

<러시아 유력 일간지 로시스카야 가제타(РОССИЙСКАЯ ГАЗЕТА)에 소개된 한국 현대 미술전 기사>

 

문화의 국경을 넘나드는 유무형의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는 다양하다. 기업형 엔터테인먼트가 양산하는 대중 콘텐츠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다. 소비자는 브라운관, 스크린, 인터넷, 프로모션 등을 통해 일군의 '스타 시스템'를 향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각각의 문화콘텐츠는 대규모 자본과 노동력이 결합된 초정밀 반도체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한류의 흐름 역시 반도체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말 그대로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특성을 가진 물질이다. '한류가 세계적인 유행으로서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말에는 동감하지만 '도체'처럼 전세계인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다.

 

6대륙 가운데 유럽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한류 바람이 가장 늦게 일기 시작한 곳도 유럽이며, 가장 다양한 한국 문화 장르가 소개되고, 점차적으로 확산되는 곳도 이곳이다. K-pop과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 대중적 요소와 스타 시스템을 갖춘 문화콘텐츠를 선호하는 만큼 유럽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나 문학, 음악, 연극 미술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본 재단 통신원들의 전해오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문학이 TV 브라운관을 통해 소개되고, 미술교류가 이어지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주빈으로 초청돼 전시 및 공연이 이뤄지는 지역의 대부분은 유럽이다. 물론 대중문화콘텐츠에 비해 파급력은 미비하나 엔터테이먼트 산업처럼 자본과 노동력이 집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순수예술 지향성이 높고 인문학적 성향이 강한 대륙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반도체에 대해 거론했었다. 반도체의 전기 흐름을 결정짓는 것은 자유전자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는 이런 자유전자의 역할을 하는 여러 그룹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국 유학생이다. 모스크바의 경우 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학생들이 적다. 그렇지만 특히, 차이코프스키 음대를 비롯해 쉐프킨, 슈우킨 연극대학,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등 예술전공 학생들이 대내외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 박사과정에서 러시아 현대 미술사를 전공하고 있는 이훈석(32세, 사진). 그는 러시아 현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더불어 한국 현대 예술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를 만나봤다.


이훈석 씨 : 통신원 촬영

<이훈석 씨 : 통신원 촬영>

 

Q 10년 이상 러시아 관련 예술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 이훈석 큐레이터가 바라본 러시아는 어떤 나라인가

A 러시아는 예술 공부를 하고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러시아 클래식 음악 연주와 발레의 높은 교육수준은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어 따로 첨언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전공 분야인 미술에 대해 말하자면 러시아에서 미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300년 가까이 이어진 아카데미즘에 기반을 둔 기본기를 철저히 훈련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테크닉보다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튼튼한 기본기 없이 좋은 미술가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복권 당첨과 같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입시에서 실기를 없앤 국내 미술대학에서도 신입생들에게 기본기를 오히려 예전보다 더 철저하고 부지런히 익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전통적 아카데미 예술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라면 러시아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큰 강점이 있는 나라다. 다만 현대미술의 개념에 대한 대중의 관심 및 이해 부족과 함께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러시아의 약점이다.

 

Q 한러 간 예술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A  학부 때부터 늘 러시아와 한국 상호간의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다. 적게나마 존재하는 교류 내용들도 대부분 자원 수입이나 극동 개척 등 경제 부문, 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교류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문화예술분야의 교류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상대방을 지나치게 실리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늘 불만이었다. 실리를 목표로 한 정치적 경제적 교류는 국제 정치 지형이 변하거나 상대가 나에게 더 이상 이익을 주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그 즉시 단절되고 만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을 통한 교류는 제한 없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


부산 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경력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석사과정에 재학하던 중 2012년 봄에 부산 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고향인 부산을 시작으로 러시아 미술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동안 배운 지식을 이용해 지원서를 작성하여 운 좋게도 합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러시아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서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Q 러시아 예술인들과 공동 작업을 시작한 시기와 계기는


A 석사학위 취득 후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하여 공부하던 중 2014년 초 한국 미술에 관심이 많은 석사과정 후배인 다샤를 알게 되었다. 열정과 추진력이 아주 뛰어난 친구다. 그 친구와 함께 러시아에서의 한국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여 에르미따주에 제안서를 보냈다. 이번에는 아쉽게도 기획안이 채택되지 않았고 반 쯤 체념한 상태로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샤가 2015년 초 한국 현대미술을 러시아 대중에 소개하기 위한 소책자 제작을 제안하였고 한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다른 두 동료인 아델과 옐례나와 함께 2015년 2월부터 제작에 착수하였고 한국국제교류재단(모스크바 소장 문성기)의 지원을 받아 올 해 11월 출간 발표를 할 수 있었다. 책을 제작하던 중 모스크바 비엔날레의 안드레이 마르티노프 디렉터와 중앙대학교의 김영호 교수가 공동으로 기획한 한국 현대미술 전시에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얻어 2016년 여름 모스크바에서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Q 러시아 현대미술사 (소비에트)에 대해 알고 싶다


A 러시아 현대미술은 1950년대 흐루쇼프가 스탈린의 독재와 공포정치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소련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자유화를 진행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해빙기라고 부른다.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전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도 매우 진보적인 예술이었으나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소련 내에서 거의 말살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해빙기를 맞아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재평가되고 동시에 서구 현대미술이 소개되면서 이에 영향을 받아 소련에서도 현대미술의 씨앗이 싹트게 된다. 다만 당시 소련에서는 사회주의리얼리즘에 따른 선전미술만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개인의 감정과 정서의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실험적 현대미술은 ‘진짜미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은 반대로 당시 승승장구하던 사회주의리얼리즘 미술은 ‘진짜미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Q 공동 작업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보람은


A  전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산 확보이다. 주최 기관에서 기본적으로 확보한 예산으로도 여의치 않은 경우 큐레이터가 자력으로 대기업이나 기타 기관으로부터 추가로 협찬을 부탁해야 한다. 올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 미술 전시의 경우 갑자기 어려워진 러시아 경제 상황으로 인해 예상보다 매우 적은 협찬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러시아 문화부로부터 처음부터 지원받기로 되어있는 예산이 너무 늦게 확정되는 바람에 생긴 커다란 공백을 메꾸기 위해 몇 몇 매우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을 포기해야 했다. 자칫하면 전시 자체가 무산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400평 규모의 전시장에 작게는 2미터, 크게는 7미터 크기의 사진, 회화,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작품 25점을 선보일 수 있었다. 물론 처음 기획에서보다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양국 문화교류 규모를 생각하면 러시아에서 이 정도 규모로 한국 현대미술을 단독으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기에 큰 보람도 느낀다.

 

Q 한국 현대 미술에 대해 러시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데 현지인들의 반응,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A 대체로 아직까지는 러시아 미술계와 대중에게 한국의 현대미술을 알린다기보다는 처음부터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어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를 통해 일부 한국 작가들과 러시아 주요 미술관, 갤러리 인사들 사이에서 앞으로의 전시 계획 및 작품 구입에 관해 이야기가 오가는 등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을 통해 러시아 대중에게도 한국 미술에 대한 이해가 한 층 넓어지리라 기대하며 앞으로도 더 큰 성과가 차차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대대적인 투자와 홍보가 필요하다.

 

Q 한러 현대 미술 교류를 평가하자면


A  다른 국가들과의 교류에 비해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문화교류, 특히 미술 교류는 매우 작은 규모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국에서 서로의 현대미술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들도 적은 수이긴 하지만 점점 늘어나고 있고 전시의 질과 규모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체감된다. 앞서 말했듯이 문화교류는 양국민이 서로를 이해하고 우호를 다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교류의 장이 더 늘어나길 바란다.
 

Q 한국인이 바라보는 러시아는 날것이 아닌 서구의 시선을 통해서다. 러시아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하나.


A  한러 문화교류 영역의 확대와 더 많은 국내 러시아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내의 러시아 관련 교육기관과 연구기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미 적지 않은 국내 대학들에 러시아 관련 학과들이 존재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업준비에 밀려 학과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는 전문성의 저하로 이어진다. 나의 경우는 러시아 정부초청장학생과 한국정부 국비유학생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는 드물게 운이 좋은 경우였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문성을 키우고 싶더라도 졸업 후 실용성이 보장되지 않아 이내 포기하게 되고 만다.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러 교류 규모를 더 키워야 하고, 여러 어려움이 산적하여 답보상태에 이른 정치 경제 부문의 교류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 부문에서의 교류 규모를 늘리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국내의 러시아 전문가 수 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국내에서의 러시아에 대한 주체적, 당사자적 시각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모스크바 트리움프 박물관에서 이훈석 씨가 러시아 예술가들과 함께 연출한 한국 현대 예술전 사진 및 홍보 동영상 출처 : 로시스카야 가제타https://rg.ru


<모스크바 트리움프 박물관에서 이훈석 씨가 러시아 예술가들과 함께 연출한 한국 현대 예술전 사진 및 홍보 동영상 출처 : 로시스카야 가제타https://rg.ru>

최승현 러시아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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