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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애든버러까지... 10000km 러시아 순회공연 중인 극단 '낯선 사람'
구분
문화
출처
KOFICE(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작성일
2018.06.08

대학로에서부터 모스크바까지 1000km를 달려온 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극단 ‘낯선 사람’ 단원들


<대학로에서부터 모스크바까지 1000km를 달려온 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극단 ‘낯선 사람’ 단원들>


만물이 푸른 봄철을 청춘(靑春)이라 부른다. “묻혀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 있는 하늘이여 / 피가 잘 돌아 …/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미당 서정주의 시 <봄 >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미당이 젊은이 (가시내)에게 보내는 봄의 찬가로, 첫사랑처럼 이제 막 세상 앞에 선 청춘들이 맞이해야 할 숙명은 자기비하나 고통이 아닌 희망이며, 그곳에는 설렘과 아픔이라는 양가감정을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니트(NEET)족, 노(老)포세대 등 절망의 끝에서 자기비하에 빠져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읽힌다.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다행인 줄 알아라.’ 긍정 없이 맞이하는 계절 앞에서 형형색색(形形色色) 만발한 봄꽃의 향연은 절망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어지럽지 않으면 다행이다. 절망이나 고통을 함의한 ‘헬조선’이나 ‘삼포세대’와 달리 '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를 딴 신조어 ‘욜로(YOLO, 인생은 한 번뿐)’란 말이 있다. ‘긍정의 힘’을 함축하며 ‘욜로’ 지향적 삶을 사는 젊은이 중에는 비교적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많다. 통신원이 진흥원을 통해 소개한 ‘레이브릭스’, ‘바이올렛트리’ 는 청춘들의 무기인 열정과 패기, 당돌함, 근기로 15000km를 달리면서 돈도 안 되는 순회공연을 했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한국 극단으로서는 처음으로 극단 ‘낯선 사람’이 한국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치타, 울란우데,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카잔 등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 순회공연하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6월 4일 모스크바를 떠나 목적지인 영국 에든버러로 향하는 청춘들을 만났다.


모스크바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공연 중인 극단 ‘낯선 사람’


<모스크바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공연 중인 극단 ‘낯선 사람’>


러시아 순회공연을 하게 된 계기는


서울시 지원 2018년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참가가 결정됐다. 비행기 타고 갈 수도 있었는데 평범한 프로젝트는 원치 않았다. 단원들에게 버스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통해 가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제안했고 모두 동의했다. 특히 러시아는 문학 종주국으로서 연극배우라면 누구나 다 아는 작가 체호프, 트루게네프, 스타니슬랍스키가 태어난 곳이다. 이들의 고국인 러시아를 통해 목적지인 에든버러까지 가고 싶었다. 유라시아 여정 가운데 에든버러에서 무대에 올린 작품에 대한 구상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러시아를 2주 만에 통과하려고 계획했으나 벌써 두 달이 다 돼 가고 있다. 다음 주면 비자가 만료된다. 이렇듯 오랜 기간 러시아에 머문 이유는 현지인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공연을 보고 싶어하고 우리를 기다려주는 러시아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 돌고 돌다 보니 이렇게 늦게 됐다. 그들과의 조우는 한국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에든버러 도착보다 유랑 과정에 더욱 치중하게 됐다.


왜 버스인가? 무섭지 않았는가?


버스는 우리의 극장을 옮겨주는 발과 같다. 극장이 우리를 불러주지 않으면 우리가 극장을 가지고 가자는 슬로건을 갖게 됐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 지인들이 이 계획을 들었을 때 만류했다. 마피아에게 총 맞고 스킨헤드에 맞아 죽을 수 있다고 겁을 줬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순회공연 가운데 사라졌다. 러시아인들은 매우 순박하다. 시골은 더욱 그랬다. 러시아어를 아는 단원은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단원 가운데 2명이 대형 1종 면허를 취득했다. 한국에서 중고 대형버스를 1500만 원에 구매했고 숙식 등이 가능하도록 유랑버스로 개조했다. 운전은 두 단원이 교대로 했다.


평균 나이가 28살이다. 돈은 어떻게 마련했고 어디서 공연했나?


우리 극단은 영세하다. 대형 극단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경력도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설 수 있는 극장은 한계가 있다. 특히 재정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단원들은 막일부터 편의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이 돈으로 순회공연 경비를 마련했다. 당연히 여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각각 도시에서 공연을 현지인들에 선보이고 숙식을 해결했다. 러시아 전역에 있는 한글학교에서 도움을 받았다.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현지인들이 주 관람객이었다. 특히 카잔이나 예카테린부르크에서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연극 대사의 경우 한글학교 관계자들이 자막을 제작해 줬다. 자막 덕분인지 우리 연극에 대해 공감하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보다 반응이 더 좋은 곳도 있었다.


남다른 소감이 있나?


한국에서는 애써 극단을 홍보하고 관람객들의 호응을 이끌어야 하는데,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와서 공연해달라는 단체가 많았다. 특히 공연 가운데 춤으로만 20분이 구성된 장이 있었는데 끝나는 내내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


작품에 담긴 의미는?


작품명은 <슬기로운 생활>이다. 초등학교 때 배우는 과목 가운데 하나다.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슬기롭게 사는 것일까’란 질문에 대한 우리만의 통찰을 담았다. 관객들에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작품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보다는 상징과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표현극이다. 예를 들면 오늘 모스크바에서 선보인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 오브제는 냉장고였다. 박민규의 작품 <카스테라>에서처럼 냉장고 안에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부패해버린 것들, 즉 사회악을 냉장고 속에 가두고 그들이 슬기로운 생활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아직 갈 길도 멀고 돌아갈 길은 더 멀다.


라트비아 넘어가고 리투아니아, 폴란드, 독일 등을 거쳐 갈 예정이다. 한국에서 떠날 때부터 다들 작정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돈은 없다. 지금처럼 경유지에서 순회공연하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우리는 젊다. 1%의 가능성으로 왔지만 돌아갈 때의 가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높다.


버스에 적힌 응원 메시지


<버스에 적힌 응원 메시지>


버스에 러시아 학생이 그린 단원 캐리커쳐


<버스에 러시아 학생이 그린 단원 캐리커쳐>


※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


최승현 러시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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