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빈 공간이 주는 백자의 아름다움 - 런던에서 열린 '여백' 전시회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19.03.27

‘여백’ 전시장 전경

‘여백’ 전시장 전경

 

지난 3월 16일 토요일 런던 시내 중심가 그린 파크의 근처에 있는 메이슨스 야드(4 Masons Yard, St James’s, London)를 찾았다. 명성있는 갤러리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서는 역시 세계적으로 저명한 크리스티안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의 비디오 설치 미술 작품들이 3월 15일부터 오는 5월 1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그다지 크지 않고 아담한 규모의 현대적인 양식의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된 2층짜리 공간으로 현대 미술을 사랑하는 관람객들이 심심치 않게 찾는 곳이다. 화이트 큐브를 찾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줄 만한 맞은편 건물에 있는 작고 아담한 규모의 한 갤러리 룸에서는 낯익은 한국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하얗고 커다란 백자들이 전시된 진열대가 눈에 띄고 비슷한 크기의 한국 도자기 여러 편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도자기 전시회 ‘여백’이 열린 갤러리 입구도자기 전시회 ‘여백’이 열린 갤러리 입구

 도자기 전시회 ‘여백’이 열린 갤러리 입구

 

이곳에서는 서울 근교에 기반을 둔 갤러리 WE PRESENT와 한국공예디자인재단(Korea Craft & Design Foundation/KcdF)이 주최를 하고 한국 문화 체육 관광부가 후원한 도자기 전시회 〈여백〉(‘Yeo-baek’, Without Words)이 3월 6일부터 17일 일요일까지 진행되었다. 

 

‘여백’ 전시회는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사치(Saatchi Gallery London) 갤러리에서 열렸던 〈Collect 2019. The International Art Fair for Modern Craft and Design〉에 출품되었던 한국 도자기 작품 중 세 작가의 15편이 선별되어 선보인 팝업 전시로 마련된 것이다. 한국공예디자인재단 주최로 한국 문화 체육 관광부의 지원하에 이 아트페어에 〈Lost in Tradition〉이란 주제로 한국 팀의 전시를 큐레이팅한 ‘WE PRESENT’의 큐레이터 로이드 최(Lloyd Choi) 씨는 사치 갤러리에서 한국 도자기들에 대한 반응이 좋아 팝업 전시회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공예디자인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한국의 공예 디자인을 장려하고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한국의 풍부한 공예와 디자인 유산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WE PRESENT 갤러리는 그동안 한국의 현대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 세계에 있는 주요 도시들의 예술적 중심부에서 팝업 전시회를 기획해왔다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런던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관으로 명망이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 명소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사치 갤러리에서 열리는 The International Art Fair for Modern Craft and Design에 수년째 참가해 왔다는 로이드 최 씨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세 작가의 작품들이 한눈에 보인다

세 작가의 작품들이 한눈에 보인다

 

‘여백’ 전시회의 특징은 문자 그대로 전시된 작품들이 제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국어로 '공백', '빈 공간'을 뜻하는 '여백'은 수 세기에 걸쳐 수묵화의 전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현재 세라믹 작업을 하는 현대 작가들에게도 여백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여 도자기나 화병, 백자 등을 생산해낼 때에도 여전히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으며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장식을 할 때에도 많이 응용된다고 한다. 최 씨는 여백이 한국 철학에서 '말할 필요가 없는 단어들'이란 의미로도 번역된다며 이번 팝업 전시에서 선보인 작가들은 그들의 작업을 지나치게 개념화하지 않고 있으며 '여백'이란 타이틀은 작품에 사용된 재료 자체에서도 자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수종, 허상욱, 박성욱 작가들은 말 없는 작품들에서 그들 자신만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정신의 쉼터로서의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백’ 전시에서는 한국의 현대 도자기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위 세 작가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었다. 이수종 작가의 작품은 하얀 표면에 그어진 한 줄의 어두운 붓 선이 생명력과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전통적인 자기를 비롯해 여타의 장식이 없는 깔끔한 백자 또한 선보였다. 

 

깔끔함과 단순함이 눈에 띈 이수종 작가의 백자 깔끔함과 단순함이 눈에 띈 이수종 작가의 백자

 

이수종 작가의 또 다른 백자는 다소 화려하다

이수종 작가의 또 다른 백자는 다소 화려하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박성욱 작가는 현대적인 백자들을 제작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깔끔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조선 시대의 백자 제조 기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응용하여 아주 독특한 분청사기 작품들을 선보였다.

 

 박성욱의 백자들 박성욱의 백자들

 

허상욱 작가의 박지 백자. 벽에 걸린 작품들은 박성욱의 작품들 허상욱 작가의 박지 백자. 벽에 걸린 작품들은 박성욱의 작품들

 

허상욱 작가는 달항아리를 생산하는데 전통적인 박지(Park-ji) 기술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해낸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크고 넉넉한 여백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 도자기 작품들을 거실에다 들여놓으면 아주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연출되리라는 것은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한 점을 사려면 최소한 15,000파운드(한화 약 2,250만 원)가량이 든다고 한다.



성명:이현선[영국/런던] 약력:현)SOAS, University of London 재직.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원 연극 영화 TV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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