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영문으로 출간된 김금숙의 만화소설 『풀』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19.09.25

김금숙 작가의 『풀』. 영국 서점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 출처 : Drawn & Quarterly

<김금숙 작가의 『풀』. 영국 서점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 출처 : Drawn & Quarterly>


영국에서 손꼽히는 대형서점 체인 중에는 워터스톤즈(Waterstones)가 있다. 런던 시내 곳곳에는 물론이고 작은 타운 규모의 동네에 가면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이 서점은 보통 3~4층 이상의 규모를 갖추고 있어 카페는 물론 층마다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소파나 의자 등이 놓여 있다. 눈치를 주지 않아 편안하게 여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저녁에는 베스트셀러 작가 등을 초청하는 이벤트나 지역 독서 모임 등이 주최하는 각종의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통신원도 시간이 나면 종종 들러서 근래의 동향을 살펴보곤 하는데, 가끔 한국 작가들의 이름을 발견하면 반갑기 그지없다. 한강 작가의 소설이나 장하준 교수의 경제 서적을 보고 반가웠던 적이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들른 동네 워터스톤즈에 있는 ‘Graphic Novel’(장편 만화 소설) 코너에서 한국 작가의 책을 발견하고 단숨에 수십 장을 읽는 성과를 냈다. 2018년에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출간되었던 만화작가 김금숙 씨의 장편 만화 소설 『풀』 (보리출판사, 2018)이 바로 나의 유난히 아름다운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주말의 몇시간을 훔친 주인공이다.


김금숙 작가의 『풀(Grass)』 - 출처 : 통신원 촬영<김금숙 작가의 『풀(Grass)』 - 출처 : 통신원 촬영>

 

‘Grass’라는 영문 제목으로 출간된 이 그래픽 노블은 약 480쪽 분량으로 자넷 홍(Janet Hong)이 번역하여 Drawn & Quarterly 출판사를 통해 2019년 6월에 출간되었다. 이미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 만화 소설이 미국, 캐나다에 이어 영국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문학 번역원으로부터 번역 지원을 받은 이 만화 소설이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물론 혹자에게는 그 자체로 특이한 사항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나 소설 등을 좋아서가 아니라 연구를 해야 한다는 직업적인 이유로 보아야만 하기 때문에 읽거나 보는 편이 많은 통신원이 단숨에 앉아서 많은 분량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 더욱이 사실 만화가 통신원에겐 그다지 선호하는 매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흥미로웠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 노블이 담은 비주얼 이미지가 따스하고 그야말로 ‘comic book’이라는 매체의 성격에 맞게 ‘재미있게’ 그려졌다는 점 때문이다.



<『풀(Grass)』의 내지 – 출처 : 통신원 촬영>

<『풀(Grass)』의 내지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 만화책은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별나게 학교에 가고 싶어했던 시골 여자아이가 가난 때문에 학교 대신 우동 가게와 술집으로 팔려 간 어린 시절부터,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지내야 했던 시간, 전쟁이 끝나고 55년 만에 할머니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싣고 있다. 흑백의 색채로 구성된 만화의 주제가 무겁고 어두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평온한 동화적인 이미지, 또 전쟁 묘사와 현재의 이옥선 할머니의 삶 등을 다룬 이 만화 소설은 읽고 보는 재미가 있어 소비자를 만족시킬 요소들을 다분히 담고 있는 것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더욱이 '사회 계급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었던 차에 위안부 문제를 접하게 되어 작품화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후기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다.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재미있게 슬픈 역사, 즉 거대한 역사와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김금숙 작가는 『풀』과 『미자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작품을 비롯해 제주 4·3 항쟁을 다룬 『지슬』, 우리나라 원폭 피해자를 다룬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 등 소외된 피해자들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작품들을 꾸준히 그려왔으며 장애인인 자폐 소년의 삶을 다룬 차기작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세계 위안부의 날'인 2018년 8월 14일을 기념하며 출간된 만화 소설 『풀』은 이옥선 위안부 할머니를 모델로 위안부를 소극적 피해자로만 바라보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주체적 의지를 강하게 갖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당당히 살아가는 여성으로 묘사하여 이미 한국, 프랑스 등에서 주목을 받았다. 정확하게 1년 전인 2018년 9월 프랑스 델쿠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만화 비평가협회(ACBD)가 주관하는 'ACBD 아시아 만화상'의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고 한다. 이 상은 ACBD가 매년 아시아권 만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상으로, 『풀』을 제외한 4편의 후보 작품들이 모두 일본 만화다.

 

긴장이 팽팽한 현재의 한일관계를 염두에 두고 세계문학, 특히 여행과 여행 문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블로그 ‘Books and Bao’에서 활동 중인 영국의 여행 문학작가 윌 해리스는 “『Grass』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한국 강제 점령 기간동 안 살았던 한국인 위안부 이옥선 할머니의 실제 삶을 다룬 강렬하게 아름다운 만화 소설로, 아주 시사적이며 소름끼칠 정도로 감동적인 만화책”이라고 평했다.

 

※ 참고자료 : https://booksandbao.com/2019/08/27/grass-graphic-novel-keum-suk-gendry-kim/



이현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영국/런던 통신원]
   - 성명 : 이현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영국/런던 통신원]

   - 약력 : 현)SOAS, University of London 재직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