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문화정책/이슈] 터키 한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찾아가 그 의미를 묻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19.10.02

한국 드라마 및 케이팝은 터키 내 한류 형성에 효자 역할을 해 왔다. 현재 한국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터키어로 번역이 되고, 자체 자막까지 함께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터키인들은 배우들의 목소리 듣기를 선호해서 주로 더빙보다는 자막으로 방송을 시청하며, 케이팝 팬덤은 노래뿐만 아니라, 가수들이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 현재 근황까지 국내 팬 버금가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한류가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요소로는 한국 가수들과 배우들의 실력이 좋기 때문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6.25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터키 내 한류 붐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그 밑바탕이 존재하는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터키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은 첫 해외 파병이었다. 이후 이를 계기로 세계 평화를 위한 조건으로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된다. 그러니 한국전쟁에 대한 터키 국민들의 자부심은 아주 높다. 터키군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2만 2천여 명을 파병했다. 휴전 이후에 4차로 파병된 인원을 제외하면 1만 6천 312명 규모이다. 2만 2천여 명 가운데 741명이 전사하고 163명이 실종됐다. 통계만 보더라도 한국전쟁 이후 잃은 것이 많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전쟁을 통해서 나토 회원국 지위를 얻었고 해외 첫 번째 파병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훨씬 더 컸다.

 

터키 국민들은 한국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매해 9월 19일 추모한다. ‘터키 참전용사의 날’이라 불리는 이 추모식에는 도지사 및 시장, 군사령관, 참전용사협회 회장 등 국가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다. 추모식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외에도 1974년 있었던 키프로스 전쟁 참전 용사, 그리고 2016년 터키 군부 쿠데타로 목숨을 잃은 장병 유가족들에게도 함께 애도를 표한다.

 

1921년부터 지켜온 9월 19일 추모 행사는 터키인들에게 의미가 크다. 1차 세계 대전 패망 이후 하고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기로에 서게 되는데, 지금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무스타파 캐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가 그리스와의 대전투를 승리로 이끈 날이 9월 19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키인들에게 첫 번째 참전용사는 터키 공화국을 건립한 무스타파 캐말 아타 튀르크이다. 참전 용사들이 흘린 피와 희생은 그 자체로도 고귀하다. 하지만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가 여느 국가들보다 더 각별한 것은 터키 공화국을 건립한 무스타파 캐말 아타 튀르크가 첫 번째 참전용사로 터키를 구했기 때문이다. 터키인들에게 한국 전쟁 의미가 더 없이 중요한 이유도 이것이다.

 

참전용사의 날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진행됐으며, 통신원은 터키 81개 주 중 가장 많은 한국 전쟁 참전용사를 파병한 지방자치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다. 인구 13만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는 당시 340명의 젊은 장병들을 파병했다. 이들 중에는 한 날 삼 형제가 모두 전사한 장병도 있었고, 두 형제가 모두 실종되어 유골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19일 진행된 참전용사의 날 행사 시작 전, 참전용사협회에 방문한 통신원을 반겨 준 것은 태극기와 터키 국기였다. 협회 사무실 안쪽에서는 한국전쟁과 키프로스 전쟁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었고, 바깥쪽에서는 사무실 주변으로 한국참전용사들과 키프로스 참전용사들이 서로 섞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작은 한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참전용사의 가족이란 점은 참 놀라웠다. 기념식장에서 만난 한 지역 신문사 부부 기자는 서로 사돈끼리도 한국참전용사라고 전했다. 작은 동네에서 340명이 파병됐으니 당시 젊은 청년들은 거의 다 한국전쟁에 파병됐던 것으로 파악된다.

 

<9월 19일 참전용사의 날, 어데미쉬 지역 한국참전용사들 – 출처 : 통신원 촬영>

<9월 19일 참전용사의 날, 어데미쉬 지역 한국참전용사들 – 출처 : 통신원 촬영>


터키 국영 TRT 어데미쉬 지사 신문기자 부부 – 출처 : 통신원 촬영<터키 국영 TRT 어데미쉬 지사 신문기자 부부 – 출처 : 통신원 촬영>

 

본인 역시 키프로스 참전용사이면서 90세가 모두 넘은 한국참전용사들을 한 분 한 분 찾아가 돌보고 있다는 참전용사의 소식 역시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장병 340명의 상황 조사를 위해 1,500장 분량의 한국전쟁 사진을 수집해서 매년 사진 전시회를 열어온다고 한다. 또 자신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이지만, 지역에서 수집한 자료를 가지고 한국참전용사의 책도 직접 집필했다고 한다. 기념행사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돌봐 드리는 한국참전용사가 있다며 통신원을 인도했다. 인도를 따라 만난 한국참전용사 두 명은 모두 93세로, 현재 알차이머를 앓고 있었다. 한 분은 치매를 앓은 지 3년 동안 말도 하지 못했는데, 통신원이 한국인인 것을 보셨는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후손들은 전쟁 트라우마라고 알려주었다.


키프로스 참전용사 셀라틴(좌) - 출처 : 통신원 촬영

<키프로스 참전용사 셀라틴(좌) - 출처 : 통신원 촬영>


키프로스 참전용사 셀라틴이 어데미쉬 지역 340명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상황을 직접 조사하여 만든 책자 – 출처 : 통신원 촬영

<키프로스 참전용사 셀라틴이 어데미쉬 지역 340명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상황을 직접 조사하여 만든 책자 – 출처 : 통신원 촬영>


셀라틴 키프로스 참전용사가 돌보는 알츠하이머 참전용사들 – 출처 : 통신원 촬영

<셀라틴 키프로스 참전용사가 돌보는 알츠하이머 참전용사들 – 출처 : 통신원 촬영>

 

터키 한류의 기저에 큰 기초를 이루고 있는 한국참전용사 이야기를 다루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깨달음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만, 터키 한국참전용사들은 전쟁의 아픔이 있던 그 자리에 가서, 터키 공화국의 첫 번째 참전용사였던 아타튀르크가 그랬던 것처럼 한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참전한 것만큼 평생에 더 큰 자랑은 없다고 할 것이다. 터키 한류는 이렇게 국민 모두 마음에 한국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시작됐다.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터키/이스탄불 통신원]
   -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터키/이스탄불 통신원]

   - 약력 : 전) 해외문화홍보원 대한민국 바로 알림단 현) 대한민국 정책방송원 KTV 글로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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