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마흔 개의 나이테를 가진 튼튼한 나무, 칠레한국한글학교 40주년 기념행사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19.10.21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 익숙한 문장은? 통신원이 칠레에 와서 처음 들어보는 국기에 대한 맹세였다. 봄이 한창인 산티아고의 파란 10월 하늘 아래, 10월 5일(토) 11시에 칠레 한국 한글학교에서 한글의 날 4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한 기념행사는 한경희 교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어 정인균 주칠레 대한민국 대사의 축사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한글학교의 교장을 맡아 지낸 역대 선생님들도 연이어 소감을 밝혔다. 한글학교 40주년을 축하하며 기억을 반추하고 나아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칠레 한국 한글학교 개교 40주년기념 축하영상 - 출처 : 칠레 한국 한글학교>

 

통신원의 눈시울을 가장 뜨겁게 한 것은 21년 전 한글학교 졸업생이자, 지금 한글학교에서 가장 어린 반인 병아리반(만 4세)에 재학 중인 딸을 둔 남윤정 씨의 축사 낭독 시간이었다. 남윤정씨는 ”매주 토요일 엄마가 싸 주시는 도시락을 들고 한글학교에 와서 아침 조회와 국민체조로 토요일을 시작했다. 그때 만난 친구들이 지금은 모두 어른이 되어 칠레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고 고민을 나누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한글학교가 없었더라면 제가 이렇게 제 마음을 한국어로 표현할 수도, 이 글을 읽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도 많이 부족했을 것 같다. 이제 저도 아이를 한글학교에 보내면서 그때 부모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성장하는 우리 자녀들이 분명 저처럼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때도 있겠지만 그 고민을 한글학교 선생님들, 또래 한국친구들과 나누고 의지하며 함께 잘 이겨낼 것이라 생각한다.”고 한글학교에 감사를 전하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칠레 한글학교의 역사가 현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축사가 끝난 후, 병아리반 이수지 어린이가 풍선 꽃을 들고 나가 엄마를 안아주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뭉클함을 느꼈다.


졸업생 남윤정 씨와 딸 이수지 양(좌), 다 함께 40주년 케익 촛불을 부는 사진(우) - 출처 : 통신원 촬영

<졸업생 남윤정 씨와 딸 이수지 양(좌), 다 함께 40주년 케익 촛불을 부는 사진(우)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후 재학생들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토요일 수업마다 수업 일부를 연습에 할애한 학생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진지한 모습으로 공연에 임했다. 가장 어린 병아리반 아이들의 율동부터 핸드벨 연주, 우산춤, 악기 연주, 케이팝 댄스에 이어 소고춤과 부채춤이 이어졌다. 특히 통신원은 학생들의 공연 중 소고춤과 부채춤이 인상적이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곳 칠레에서 한복을 입거나 소고를 손에 들고 연주하는 기회가 매우 드물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이런 통신원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학생들은 제법 여러 번의 연습을 거쳐서인지 아주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관객들 또한 소고춤의 박자마다 박수를 치며 흥을 돋웠고, 부채춤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큰 환호를 외쳤다. 


2부 한글학교 행사 중 학생들의 공연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

<2부 한글학교 행사 중 학생들의 공연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

 

행사 후 한경희 한글학교 교장과의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우선 한글학교 40주년 행사를 잘 치러낸 것에 대해 “큰 행사를 준비하며 여러 가지 준비로 밤잠을 설치며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교사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학부모님들의 음식 준비, 그리고 대사관과 한인회 등 교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준비한 공연이 무대에서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내빈들을 보고 우리 자녀들의 대견한 모습을 한마음으로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음이 느껴져서 뿌듯했지만, 많은 분들이 생업으로 인해 시간을 낼 수 없어 함께 기쁨을 나누지 못한 점이 슬프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글학교 행사장에 전시된 학생들의 작품. 교사들의 정성이 돋보인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한글학교 행사장에 전시된 학생들의 작품. 교사들의 정성이 돋보인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40년 전에 뿌리내린 한글학교의 뿌리는 이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 마흔 개의 나이테를 가진 튼튼한 나무가 되었다. 가정에서밖에 접할 수 없었던 한국어를 매주 토요일 같은 한국인들끼리 함께하며 배운 결과,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를 잊지 않고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일부 아이들은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공부해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기도 하였다. 앞으로도 한글학교가 칠레에서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의 뿌리를 지탱하는 역할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희원[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칠레/산티아고 통신원]
   - 성명 : 이희원[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칠레/산티아고 통신원]
   - 약력 : 전) 로엔엔터테인먼트(카카오M) 멜론전략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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