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한국영화 100주년, 독일에서 다시 태어난 한국 고전영화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19.10.24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주독일한국문화원과 독일 예술극장 아르제날(Arsenal)이 공동으로 '한반도의 봄-1934-1962 한국영화의 시작' 영화제를 개최했다. 10월 17일 오프닝 영화로는 현존하는 한국영화 중 가장 오래된 영화 <청춘의 십자로>가 독일어 변사로 상영됐다. 안종화 감독이 1934년 제작한 이 영화는 김태용 감독이 재해석해서 쓴 한국어 대사에 변사가 더해져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베를린에서는 2013년 이미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큰 호응을 받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특별히 변사 해설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독일 배우 마티아스 쉐르베니카스(Matthias Scherwenikas)가 라이브로 들려줬다. 아르제날 소속 피아니스트는 즉흥 연주로 배경음악을 입혀 한 편의 공연같은 영화상영이 이루어졌다.

 

<베를린 예술영화관 아르제날에서 열린 한국 고전영화 특별전. <청춘의 십자로> 상영에서는 독일 배우가 라이브로 독일어 변사를 들려줬다(오른쪽).>

<베를린 예술영화관 아르제날에서 열린 한국 고전영화 특별전. <청춘의 십자로> 상영에서는 독일 배우가 라이브로 독일어 변사를 들려줬다(오른쪽).> 

 

이어 20일에는 한국 영화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 감독의 1955년 작품 <미망인>이 상영됐다. 이 영화는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 때 거의 혁명적이고 당시 상식을 뛰어넘는 남녀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상영 이후에는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과 베를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안스가 폭트(Ansgar Vogt), 이슬기 영화학 박사가 함께 한국 영화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조 전 원장은 <미망인>이라는 작품이 내용적으로나 영화 외적인 측면에서나 여성 문제에 대한 복합적인 텍스트를 가진 영화라고 설명했다. 조 전 원장은 '이 영화는 1955년도에 제작된 영화로 줄거리도 전후 미망인, 전쟁 때 헤어진 연인의 재회 등 전후 배경을 의식하고 봐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서 '영화 감독은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인데 불행히도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작품이었다. 전후 영화산업 인프라가 취약한 시점에 영화 촬영은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특히 여성이 영화 감독으로 일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고, 당시 감독이 아기를 등에 업고 현장을 누비는 사진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박남옥 감독은 스탭을 위한 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고 영화 촬영 중간에 직접 요리를 하는 등 에피소드가 많았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찍고 난 이후 남편과 이혼했으며, 힘든 영화판에서 다시 일하지 못하고, 출판사 직원으로 커리어를 마감했다'고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영화 '미망인' 상영 이후 한국 고전 영화 복원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이슬기 영화학 박사, 안스가 폭트 프로그래머,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 윤일숙 전문통역사

<영화 '미망인' 상영 이후 한국 고전 영화 복원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이슬기 영화학 박사, 안스가 폭트 프로그래머,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 윤일숙 전문통역사>

 

다음은 안스가 폭트, 이슬기 박사와 관객이 질문하고 조선희 전 원장이 대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영화 형식적인 측면이나 복잡한 남녀관계 등을 보면 굉장히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영화에 나오는 남녀관계가 우리들 눈에는 평범하게 보이겠지만, 1950년대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관계입니다. 특히 미망인이 젊은 '총각'과 연애한다는 발상 자체, 실연 후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것 등 이런 표현을 한다는 것은 당시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죠. 특히 같은 시기 영화인 <자유부인>을 보면, 이 영화는 남성 소설가의 작품을 남성 감독이 만든 영화입니다. 두 영화 모두 여성의 성적 도덕을 다루는 세태 영화인데, 차이가 나는 것은 <미망인>은 여성이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생활감각과 결합되어 생존을 위한 행위가 더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죽은 남편의 친구에게 지원을 받아 양장점을 운영하고, 일을 해서 아이의 학비를 대는 것 등이 그런 측면이죠. 반면 <자유부인>의 주인공은 대학교수의 부인으로 고급스러운 소비와 춤바람 때문에 남편을 버렸다가 '응징'당하고 다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미망인>은 여성의 일탈 접근 방식이 다르고, 가부장적인 배경에서는 벗어나 있는 작품입니다.

 

당시 영화를 보면 거리와 전차, 자동차가 나오는 씬도 과도할 정도로 많습니다. 50-60년대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영화라는 현대적인 매체에, 현대적인 영화감독으로서 현대적인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자동차는 이국적이고 신기한 도회적인 풍경이고 '볼거리'가 됩니다.

 

한국 고전 영화의 복원과정이 궁금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06년부터 디지털 복원을 시작해서 현재 48편 정도 복원이 되어 있습니다. 김기영의 <하녀>도 초창기에 복원된 작품입니다. <미망인>은 지금까지도 디지털 복원이 되지 않았는데, 한 해 복원 예산이 정해져 있어 복원 편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기관에서 복원작업을 하는 독일과는 달리 한국은 영상자료원 한곳에서 하면서 복원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데, 복원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가 근무할 당시로 말씀드리면, 고전 영화 중 영화적인 가치가 높고 국내외적으로 많이 유통된 영화를 우선적으로 선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녀>와 <오발탄>이 있는데요, 오발탄은 샌프란시스코에 출품되었던 필름을 복사해서 복원했는데 화질이 많이 좋지 않았고, 영어자막을 지우는 작업도 힘들었습니다. <하녀>는 한 롤에 스페인어 자막이 있어서 이 자막을 지워야 했습니다. 

 

한국영화가 100주년인데, 그 이전의 영화는 왜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나요?

영상자료원이 1990년에 생겼는데, 그 당시 1945년 이전의 영화는 한 편도 보유하지 못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주변 국가 아카이브를 뒤지면서 영화를 수집하는게 주요 업무였어요. 일제강점기 시절 160-18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제가 영상자료원장으로 있을 당시에는 20-30편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청춘의 십자로>가 가장 오래된 영화였는데, 지금도 그 영화가 가장 오래된 영화인 걸 보면 더 초창기 작품을 찾지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 시대 국책기관이 없어 제도적으로 수집하지 못했고, 해방기 혼란, 전쟁을 경험하면서 영화들이 많이 유실되었습니다.

 

북한의 영화 아카이브는 어떻습니까? 그곳에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정확한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북한에는 김정일 영화문헌고가 있고, 거기에 수만 종의 필름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문헌고의 영화를 알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예전에 비공식적인 루트로 문헌고의 리스트를 본 적이 있는데, <아리랑 3>, <만추> 등의 영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필름을 구하려고 직원들을 단둥까지 보낸 적이 있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남북) 상황이 좀 더 개선되면 북한 문헌고에서 좀 더 많은 필름을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이외의 거의 모든 국가의 아카이브는 다 뒤져보았습니다. 현재로는 북한 문헌고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한국 고전영화 특별전이 열린 베를린 예술영화관 아르제날 매표소>

 

한국에 훌륭한 고전 영화들이 많은데 이때까지 왜 많이 알려지지 않은걸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묻혀진 초기 한국 영화를 보여주는 이번 행사를 열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국영화가 외국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베를린국제영화제와 관련이 많습니다. 1958년 <시집가는 날>이 베를리날레에 처음으로 출품되었고, 1960년 <마부>가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제작한 시기로 양질적으로 영화 산업이 흥성하던 시기인데요, 이때 '마부'를 시작으로 유럽에서도 한국 영화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도 하우스메이드가 나오고 계급적인 문제를 보여주는데요, 현대 감독들이 고전 영화에 영향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국 고전영화는 현재 유튜브로도 볼 수 있고 접근성이 좋아졌습니다. 현재 감독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김기영의 <하녀>를 보고 자라면서 영향을 받았고, 계단씬 모티브를 따 왔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겸손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지만, 김기영의 모티브는 정말로 기생충에 많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김기영 감독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서는 선진성을 가지고 있어 후배 감독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감독이죠. 현대적인 세계관과 문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날 조선희 전 영상자료원장은 <미망인>은 물론 한국 고전 영화 복원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해설을 더해주면서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번 영화제는 특히 주독한국문화원 뿐만 아니라 현지의 유명 예술극장이 함께 주최해 의미를 더했다.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에 있는 예술영화관 아제르날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극장 중 하나다. 영화 상영도 무료가 아닌 유료 티켓으로 판매가 이루어졌다. 영화제에서는 앞서 언급한 영화 이외에도 <반도의 봄>, <미몽>, <마음의 고향>, <피아골>, <자유부인>, <여판사>, <여사장> 등 1930년대에서 1960년대에 제작된 작품 11편이 공개된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서 한국 고전영화에 대한 현지 관객 뿐만 아니라 독일 영화인들의 관심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 성명 :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 약력 :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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