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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고려인 아티스트, 빅토르 초이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0.07.01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시점을 전후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카자흐스탄 영화계에 나타난 동향은 독립 국가로서의 정체성 모색이었다. 카자흐스탄만의 전통과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지속돼왔다. 독립 전후 영화에는 소비에트 이념 탈피와 종교적 이념, 언어 등 카자흐 민족만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독립 이후 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와 감독의 노고 역시 작품에 드러나 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구소련 시기,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록밴드 ‘키노’의 리더, 빅토르 초이 – 출처 : Gazeta<구소련 시기,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록밴드 ‘키노’의 리더, 빅토르 초이 – 출처 : Gazeta>

 

독립 이전, 영화계의 중심에는 당시 촉망받던 배우이자 음악가 중에는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Цой, 본명 빅토르 로베르토비츠 초이, 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가 있었다. 구소련 시기에 활동했던 그는 고려인으로, 현재까지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소련의 스타, 빅토르 최는 1962년 소련 레닌그라드(Ленинград)에서 태어나 1990년 투쿰스에서 사망했다. 그는 록밴드 키노(Кино)의 리더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였다. 그가 태어난 레닌그라드는 현재 러시아 영토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이지만, 그는 카자흐스탄과 연관성이 깊다. 빅토르 초이의 조부모가 카자흐스탄 남부 도시 키질로르다에 거주해 자주 방문했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한편, 빅토르 초이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카자흐스탄에서 이주한 고려인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용사이기도 하다.

 

빅토르 초이는 그의 음악 세계를 통해 당시 소련 체재에 저항해 청년들에게는 자유의 상징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당시 록밴드는 소련에서, 특히 지배 계층에서는 용인이 어려운 장르였다. 그 때문에 특정 앨범, 음원은 공연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변화(Перемен)>, <태양이라는 별(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 <담배 한 갑(Пачка сигарет)>, <당신의 애인이 아플 때(Когда твоя девушка больна)>, <우리의 눈에서(В наших глазах)>, <뻐꾸기(Кукушка)> 등의 명곡을 남긴 빅토르 초이와 밴드 ‘키노’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변화>는 아직도 그 가사의 힘으로 카자흐스탄 청년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다. 현지 문화 평론가들은 그가 집필한 가사를 보고 시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아래는 노래 <변화> 가사의 일부다.

 

우리 마음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과 눈물과 심장에서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빅토르 최의 ‘변화’는 발표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 출처 : progorod62.ru<빅토르 최의 ‘변화’는 발표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 출처 : progorod62.ru>

 

빅토르 최는 인기에 힘입어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1988년 라시드 누그마노프 감독작 <이글라(바늘, Игл)>이 출연 대표작이다. 동 작품은 소련 역사상 가장 많은 약 1,500만 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는 당시의 사회상, 생활 양식, 도시 풍경이 담겨 지금 봐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빅토르 최는 동 작품에서 ‘모로’라는 이름의 청년으로 등장한다. 모로는 고향인 알마티로 가서 옛 여자친구인 디나를 만나지만 어딘가 모르게 수상하다. 친구인 스파르타크도 모로를 피한다. 디나의 아파트에서 묵게 된 모로는 디나가 마약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로는 옛 애인을 돕기 위해 도시에서 아랄해(Арал)로 떠나지만, 디나는 다시 마약에 빠진다. 모로는 마약상을 만나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싸움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구소련 시기, 이처럼 마약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례적이었다. 제작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글라>가 영화관이나 방송에서 상영, 방영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여러 사람의 예상을 깨고 소련 당국은 개봉과 상영을 허용했다. 지금까지도 동 작품은 청년의 인생과 사랑에 대해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이글라>는 옛 영화를 소개하는 카자흐스탄 프로그램에 1년에 한 번씩은 꼭 방영되는 작품으로, 주로 국영 방송인 《하바르(Khabar)》, 《카자흐스탄(Qazaqstan)》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지난 6월 21일은 빅토르 초이가 태어난 지 58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이에 카자흐스탄 내 여러 문화 관련 온라인 공간에는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게시들이 올라왔을 정도로 빅토르 최는 사망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 많은 대중들의 뇌리에 박힌 아티스트였다. 2017년 알마티 툴레우바 거리에는 빅토르 초이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알마티에 세워진 빅토르 초이 기념비 – 출처 : kapital.kz<알마티에 세워진 빅토르 초이 기념비 – 출처 : kapital.kz>

 

빅토르 최와 그의 밴드 ‘키노’의 생전 공연 모습. 포스팅은 ‘그가 살아있었다면 58세였을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좋아요 수는 2만 회를 돌파했다. – 출처 : 인스타그램(@ Viktor_Tsoy_Kino_By)<빅토르 최와 그의 밴드 ‘키노’의 생전 공연 모습. 포스팅은 ‘그가 살아있었다면 58세였을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좋아요 수는 2만 회를 돌파했다. – 출처 : 인스타그램(@ Viktor_Tsoy_Kino_By)>

 

빅토르 초이는 199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많은 노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 카자흐스탄 사회는 그의 작품, 그리고 그가 사회에 던졌던 메시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빅토르 초이 노래, 그리고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은 앞으로도 세대를 거듭하며 사랑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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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아카쒸 다스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카자흐스탄/누르술탄 통신원]
    - 약력 : 현) 카자흐스탄 신문사 해외부 한국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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