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중국랩 배틀 예능 붐, <쇼미더머니> 모방에서 새로운 청년문화 창출까지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0.08.27

중국의 대표적 동영상 플랫폼 3사 망고TV(芒果TV), 아이치이(iQIYI), 비리비리(bilibili)가 각각 자체 제작한 랩 배틀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랩 배틀 예능이 중국에서 처음 시도될 때만 해도 한중 양국에서는 표절 논란이 일었다. 중국의 새로운 힙합 랩 스타를 발굴하는 이 프로그램들은 한눈에 보아도 한국 <쇼미더머니>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7년 시즌1을 선보인 아이치이의 <The Rap Of China(中国新说唱)>는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세세한 무대디자인부터 기성 뮤지션이 심사위원 겸 제작자로 등장해 공개 오디션과 랩 배틀을 진행하는 프로그램 룰이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중국에서 힙합과 랩이 젊은 층의 인기를 얻을수록 이 프로그램들에 대한 이슈는 어느새 ‘한국 예능 표절 논란’에서 ‘중국의 새로운 청년문화 창출’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 서브컬쳐 ‘힙합’과 동영상 플랫폼 ‘웹예능’의 만남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힙합과 랩은 소수 마니아가 즐기는 서브컬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중국에서 ‘힙합 문화(Hip-Hop Culture)’를 대중문화의 반대 개념인 ‘소중문화(小众文化)’로 분류하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주로 Z세대(1995년~2009년 출생)가 즐기는 서브컬쳐인 힙합과 랩은 최근 중국 동영상 플랫폼사가 자체 제작한 ‘웹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제작되면서 점차 대중문화로 편입되고 있다. 치열한 플랫폼 간 경쟁에서 힙합과 랩은 젊은 플랫폼 이용자 수를 확보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만들기에 매우 적합한 소재로 선호되고 있다.

 

랩 배틀 예능 붐을 일으킨 중국 동영상 플랫폼 3사<랩 배틀 예능 붐을 일으킨 중국 동영상 플랫폼 3사>

 

지난 6월 올해 중국 랩 배틀 예능 붐의 스타트를 끊은 <Rap Star(说唱听我的)>는 중국 심천에서 만들어진 힙합 브랜드 ‘HipHop Fusion(嘻哈融合体)’이 2016년부터 매년 진행해 온 힙합 콘테스트에서 시작된 것이다. 본래 중국 전역 공연장을 돌며 힙합 마니아들의 참가로 진행되던 랩 콘테스트가 올해는 망고TV의 기획과 만나 본격적인 웹예능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수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서 한국 예능 표절 논란이 가장 많은 망고TV의 기획이 들어간 만큼, 이번 <Rap Star>는 현장감 넘치던 전 시즌과 달리 한국 예능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무대디자인을 배경으로 참가자들이 기성 힙합 뮤지션의 심사와 프로듀싱을 받는 도식화된 예능으로 변모했다. 망고TV는 후난위성TV의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이다. <Rap Star>는 망고TV에서 매주 일요일 정오에 선 공개된 후, 같은 날 자정에 후난TV 채널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비교적 보수적인 TV채널에서 랩 배틀 예능이 편성된 것은 처음이다. 이는 확실히 중국 힙합 문화의 수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망고TV의 ‘Rap Star’ 포스터 및 방송 화면 – 출처 : ‘망고TV’ 웹사이트

<망고TV의 ‘Rap Star’ 포스터 및 방송 화면 – 출처 : ‘망고TV’ 웹사이트>

 

8월 14일 방영 시작된 아이치이의 <The Rap Of China>는 힙합 문화를 상업적 코드와 가장 잘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7년 시즌1의 성공적인 출발로 올해 벌써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첫 시즌에서 한국의 <쇼미더머니> 포맷과 너무 비슷하다는 논란 외에도, 엑소(EXO)에서 탈퇴한 크리스가 심사위원 겸 프로듀서로 등장해 이슈를 모았다. 매 시즌 고정 프로듀서로 출연 중인 크리스는 본명인 우이판(吳亦凡)으로 활동 중이다. <The Rap Of China> 첫 시즌에서 우이판은 “프리스타일 랩 할 수 있어?(你有freestyle吗?)”라는 화제의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프리스타일’ 외에도 ‘디스(diss)랩’, ‘펀치라인’등, 중국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힙합 용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치이의 ‘The Rap Of China’ 시즌4 포스터. 엑소 전 멤버 크리스(吳亦凡)가 매 시즌 프로듀서로 활약하고 있다 – 출처: ‘아이치이’ 웹사이트<아이치이의 ‘The Rap Of China’ 시즌4 포스터. 엑소 전 멤버 크리스(吳亦凡)가 매 시즌 프로듀서로 활약하고 있다 – 출처: ‘아이치이’ 웹사이트 >

 

이번 <The Rap Of China> 시즌4는 박재범이 프로듀서로 출연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퍼지며 중국 힙합 팬들의 큰 기대감을 모았다. 그동안 모든 중국 랩 배틀 예능이 런칭될 때마다 중국 팬들에 의해 박재범의 출연 가능성이 언급될 정도로 중국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이번 <The Rap Of China>의 제작진은 첫 회 방송을 며칠 앞두고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박재범과 4인의 중국 프로듀서가 함께 촬영한 프로그램 타이틀 영상을 선공개해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특히 이 영상에서 박재범이 중국어 랩을 선보여 더욱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The Rap Of China> 첫 방송분에서 박재범이 출연한 영상이 인트로 영상으로 다시 쓰이긴 했지만, 그가 프로듀서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박재범 출연 여부에 관한 제작진의 명확한 공식 입장이 없는 가운데 중국 네티즌들은 여전히 그가 프로그램 중반에 온라인으로라도 깜짝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감을 놓지 않고 있다.

 

아이치이 ‘The Rap of China’ 시즌4 첫 방송 인트로 영상에 등장한 박재범 - 출처 : ‘아이치이’ 웹사이트<아이치이 ‘The Rap of China’ 시즌4 첫 방송 인트로 영상에 등장한 박재범 - 출처 : ‘아이치이’ 웹사이트>

 

중국 랩 배틀 예능 붐에 가장 늦게 합류한 비리비리의 <Rap for Youth(说唱新世代)>는 8월 22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중국의 유튜브라 불리는 비리비리는 중국 Z세대의 온라인 놀이터라 할 수 있다. 플랫폼 유저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공유하는 UGC 성격의 동영상 커뮤니티 사이트다. 또 유저들 간 댓글 소통문화가 타 플랫폼보다 활발하다고 할 수 있다. 비리비리는 유저들이 그간 보여준 힙합 관련 콘텐츠에 관한 관심을 반영해 랩 배틀 웹예능 제작에 뛰어들었다. 현재 중국 힙합계와 방송가의 고민인 ‘중국 본토화된 랩문화 창출’을 위해 <Rap for Youth>는 프로그램 컨셉과 형식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프로그램 예고편부터 타 플랫폼과 달랐다. 중국의 시골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을 등장시키고 ‘만물을 빌려 랩을 할 수 있다(万物皆可说唱)’는 카피를 제시했다. 특별하지 않은 중국인 누구나 어떤 주제로도 랩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Rap for Youth>의 진행 룰은 참가자들이 제한된 생활 공간에서 랩 배틀을 벌여 승리하면 코인을 얻을 수 있는데 이 코인으로 창작에 필요한 음원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코인이 떨어지면 참가자는 자동 탈락하게 된다. 예고편은 생활 속 대중화된 중국 랩 문화의 창출을 지향하는 듯했지만, 정작 본 프로그램 룰은 압박감이 심한 생존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어 프로그램 전체 컨셉에 의문이 든다. 어쨌든 중국 네티즌들은 다른 랩 배틀 예능과 달리 신선하다, 중국 특색의 랩 탄생이 기대된다는 호평을 하고 있다. 또 <Rap for Youth>의 메인MC이자 심사위원으로 엑소 전 멤버 타오가 출연한다. 공교롭게도 타오는 아이치이 랩 배틀 예능의 심사위원이자 역시 엑소 출신인 크리스와 예능 대결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비리비리 ‘Rap for Youth’의 독특한 예고 영상, 메인MC이자 심사위원으로 출연 중인 엑소 전 멤버 타오 – 출처 : ‘비리비리’ 웹사이트<비리비리 ‘Rap for Youth’의 독특한 예고 영상, 메인MC이자 심사위원으로 출연 중인 엑소 전 멤버 타오 – 출처 : ‘비리비리’ 웹사이트>

 

한국 힙합 예능의 성공 요인을 따라

중국은 유럽,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과 랩 문화를 어떻게 예능을 통해 본토화하고 나아가 대중문화로 편입시킬지 고민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쇼미더머니>를 시작으로 다수의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아시아 힙합 문화의 가능성과 힙합의 상업성을 발견한 한국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쇼미더머니> 등 한국 힙합 예능을 좋아하는 중국 팬들이 중국 랩 배틀 예능의 주요 시청층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한국 힙합 예능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 중국은 우선 한국 예능이 아이돌 랩퍼와 정통 랩퍼를 프로그램에 적절히 배치해 힙합의 대중화와 전문성을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 중국 웹예능이 현재 지나치게 아이돌 스타를 뽑듯 경쟁 오디션에 치우쳐져 있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힙합을 소재로 폭넓은 연령대 출연진을 등장시켜 다양한 힙합 예능을 제작하고 있는 한국 예능을 참조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이미 웹예능을 통해 중국 최고 랩퍼가 다수 소모되었고, 양질의 신인을 후속으로 배출하는 속도가 프로그램 제작 빈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이번 아이치이의 박재범 캐스팅 사례처럼 앞으로도 한국의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랩퍼들에게 러브콜을 보내 신예 랩퍼 육성 방식을 배우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언급되고 한국의 다양한 힙합 소재 예능 프로그램 – 출처 : ‘더우반(豆瓣)’ 웹사이트<중국에서 언급되고 한국의 다양한 힙합 소재 예능 프로그램 – 출처 : ‘더우반(豆瓣)’ 웹사이트>

 

한국 예능 표절 꼬리표를 떼고 진화하는 중국 예능

중국은 한국 예능 트렌드를 거의 그대로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잘된 한국 예능의 중국판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이번 랩 배틀 웹예능 붐도 그와 같은 흐름에 서 있다. 문제는 리메이크 판권의 정식 구매 여부이다. 2010년대 초중반 중국에서 한창 한국 예능 정식판권 구매 붐이 일었지만, 사드 사태로 그 붐이 한풀 꺾인 후현재까지 표절 의혹을 제기할만한 중국 프로그램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그 수가 상당하다. 중국 다수의 플랫폼에서 거의 동시에 한국 예능 유사작을 내놓고 서로 경쟁하거나, 일명 ‘N차 시즌제 예능(综n代)’으로 진화해 매년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콘텐츠들은 단순 표절에서 본토화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찾아가기도 한다. 여전히 많은 중국 예능 리뷰 글에서 선도적인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모범사례로 언급하거나 중국 대중들이 댓글로 정식판권 구매 여부를 제기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랩 배틀 예능 붐 사례처럼 방송 콘텐츠를 통해 중국 스스로 만족할만한 자국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앞으로 한국 예능 표절 이슈는 점차 부차적인 문제가 되거나 아예 잊혀질 가능성이 커 우려된다.


박경진 통신원 사진
    - 성명 : 박경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북경)/북경 통신원]
    - 약력 : 전) 중국전매대학교 영화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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