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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최초 호주 오페라 단원! 테너 김진태의 오페라 인생
출처
YTN
작성일
2021.07.26

김진태 호주 국립오폐라단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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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2시에 열리는 이른바 '발코니 콘서트'
호주 국립 오페라단에서 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태 씨가 이웃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공연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봉쇄로 집밖에 나갈 수 없게 된 지난해부터 발코니를 무대 삼아 노래를 불렀는데요.

[김진태 / 호주 국립오페라단 테너 : 맨 처음에 집안에서 사실은 노래를 시작했거든요. 그랬더니 저희 아내가 '당신을 사랑하지만, 목소리는 너무 크다, 내 귀에는. 좀 밖으로 나가서 노래해 줄래' 해서 할 수 없이 발코니로 쫓겨나서 노래를 시작했죠. 팬데믹 봉쇄 동안에. 그랬더니 편지들이 하나둘 날아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읽어보니까 고맙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어디 못 나가고 하는데 노래를 불러주니 너무 좋다,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자 입소문을 타고 지역 뉴스에도 소개되면서 지역 사회의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트리자 쏜스 / 이웃 주민 :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이 동네에 산다는 게 정말 큰 기쁨이에요. 왜냐면 우리는 락다운으로 움직이지 못했는데 이 동네에 울리는 그의 노래를 듣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집에만 있어야 하는 답답함을 달래고자 시작한 노래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무대에 서지 못해도 마음 가득 행복함이 차올랐습니다.
매년 600회 이상의 공연을 올리며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멜버른 아트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는 호주 국립 오페라단.
진태 씨가 이곳에서 노래를 시작한 지 벌써 37년째입니다.
동양인 최초의 오페라 가수였죠.

[린든 테라치니 / 호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 진태 씨는 아주 재능이 많은 테너예요. 진태 씨처럼 노래를 잘하는 테너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죠. 그가 아주 오랫동안 호주 국립 오페라단 단원인 이유는 무엇을 하든 매우 잘했기 때문이죠. 그가 호주 국립 오페라단이 고용한 동양인 첫 번째 예술가인 건 환상적인 업적입니다.]

1978년에 가족과 함께 호주에 온 이민 1세대 진태 씨.
아버지는 용접 기술을 배워 기술자가 됐으면 했지만, 진태 씨는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김진태 / 호주 국립오페라단 테너 :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끝내는 23명이 시작을 해서 4명 졸업했는데요. 그중에 제가 하나였습니다.]

힘들게 졸업한 이후 오페라단 오디션에 응시했을 때에는 더 이상 아버지의 반대는 없었지만, 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김진태 / 호주 국립오페라단 테너 : 저희 선배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도 다 그러더라고요. '너 그냥 가라. 여기는 너 같은 사람들 뽑는 데가 아니야. 여기는 우리같이 백인들을 뽑는 곳이다.'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때는.]

하지만 7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최초의 동양인 단원으로 오페라단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이제는 베테랑이 된 진태 씨.

오페라를 부르기 위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낯선 언어를 완벽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지휘에 따라 달라지는 노래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밤낮없는 연습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노래를 즐기고 사랑하는 진태 씨에게도 노래를 못 할 뻔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는데요.

[김진태 / 호주 국립오페라단 테너 : 제일 위기였던 때는 제 목이 한번은 파열됐을 때죠. 그때가 바로 팬데믹 바로 오기 전이었었어요. 감기 걸린 상태에서 굉장히 힘든 노래를 하고 있었었는데요. 목이 파열되어서 저는 이제 끝났다, 피를 쏟았고요. 그러고 나서는 말도 할 수 없었고, 의사 선생님도 저는 끝났다고 했었고요.]

다행히 고비를 넘겨 목소리가 차츰 돌아오고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되면서 노래 공부가 끝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실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아직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진태 씨를 보며 동료, 후배들도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이나라 / 호주 국립오페라단 동료 :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선생님이 37년 동안 이 오페라단 생활을 하시면서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거든요. 굳이 꼭 한국인뿐만 아니라 여기 호주 사람들, 그다음에 스태프, 오페라단의 한 역사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죠.]

시드니에 있는 호주 국립오페라단 사무실에는 '그린 룸'이라 불리는 배우들의 휴게 공간이 있는데요.
오페라단에서 근무한 지 20년이 됐을 때 이곳에 사진이 한 장씩 걸립니다.
당당히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진태 씨의 사진,
3년 후에 40년이 되면 한 장의 사진이 더 걸릴 예정입니다.

[김진태 / 호주 국립오페라단 테너 : 저의 계획은 노래를 제가 그만두게 되면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쪽에 제가 관심이 있거든요. 좀 더 쉽게 좀 더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그런 학생들을 만들어주고 키워주고 싶네요. 그리고 또 오페라단에 들어올 수 있게끔 도와주고. 다음 세대를 좀 길러보고 싶습니다.]

오페라가 직업을 넘어 삶의 전부가 된 진태 씨.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노래 인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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