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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나만의 힐링 공간, 도심 정원 '클라인가르텐'
출처
YTN
작성일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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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봉쇄를 반복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한 독일.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에서 도심 속 정원 농장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이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한스-게오르그 프라이슬 / 프랑크푸르트 가르텐협회장 : (코로나 시대가 오자)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모두가 가르텐을 가지고 싶어 했죠. 가르텐은 사방이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아파트처럼 옆집과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곳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습니다. (감염 우려 때문에) 모든 친구가 함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정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고요. 지금은 가르텐을 받으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3년 이상을 기다려야 해요.]

'작은 정원'이라는 뜻의 클라인 가르텐(Kleingarten)은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1차대전 패전 이후 가난한 독일 시민들을 구제하려 내놓은 농업 복지 프로그램입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농산물조차 사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자급자족할 수 있는 땅을 보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스-게오르그 프라이슬/ 프랑크푸르트 가르텐협회장 :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빌헬름 황제 (Kaiser Wilhelm) 치하에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여자들이 아이들을 먹일 식량을 책임져야 했지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빌헬름 황제는 국민들에게 클라인 가르텐 이용을 장려하고 채소를 직접 가꾸어 먹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이것이 법이 되어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어요.]

지금은 독일 전역에 100만 개가 넘는 클라인가르텐이 운영돼 500만 명의 시민들이 이용 중입니다.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약 400㎡에 연간 400~500유로, 우리 돈으로 50~60만 원대 정도 비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데요.
조건만 잘 지키면 무기한으로 임대가 가능하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힙니다.
특히, 고국을 떠나온 동포들에게는 향수를 달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70년대에 파독 광부로 독일에 오게 된 최헌일 씨는 1982년부터 가르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최헌일 / 39년째 가르텐 운영 : 가르텐을 (처음) 시작할 때는 사실 어린아이들이 집에서 너무 떠들어서 가르텐을 찾게 된 거거든요. 거기서 아이들 놀 수 있게끔 그네도 해주고 모래밭도 해주고 거기서 한 열댓 살까지는 잘 지냈죠.]

아이들을 위해 시작했던 가르텐 생활.
지금은 매일 와서 두세 시간씩 채소를 가꾸고 있는데요.
은퇴 후 시간을 보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습니다.

광부 생활 후 전기기사로 20여 년을 일하는 동안 낯선 농사일까지 하다 보니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제법 그럴싸한 농장으로 키워냈습니다.

[최헌일 / 39년째 가르텐 운영 : 거의 다 심게 되더라고요. 쑥갓, 상추, 깻잎, 고추, 토마토, 파, 오이, 또 갓, 마늘, 그 정도. 아마 우리 채소는 자급하는 편이에요 여기서. 남아서 나눠주기도 하고.]

역시 파독 광부로 독일 생활을 시작한 박덕규 씨도 퇴직 이후 23년째 가르텐을 가꾸고 있습니다.

[박덕규 / 23년째 가르텐 운영 : 한국에 주말농장이라고 하면 조그만 몇 평으로 주말만 가꾸는데 여기 주말농장은 이렇게 넓은 땅에다가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땅도 넓고요.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는 하나의 별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는 덕규 씨.
아내와 함께 농장을 돌보다 오두막에서 더위를 식히거나 옛 동료나 친구들이 놀러 오면 바둑을 두기도 합니다.
가르텐에서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빠릅니다.

[박덕규 / 23년째 가르텐 운영 : 첫째 자유롭고, 둘째 자연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거, 그게 좋고 그다음에 채소나 꽃을 기르는 게 너무나 나한테는 즐거워요. 크는 모습이라든가 과일이 크는 모습을 하나의 생소한 걸 느끼고 보람을 많이 느끼고 거기서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거 같아요.]

80세의 나이에도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한 비결이 바로 가르텐이라고 말하는데요.
코로나 시대에 가르텐이라는 공간은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최헌일 / 39년째 가르텐 운영 : 가족끼리는 모일 수가 있으니까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하니까 이런 데 들어와서 애들 자전거 타고 많이 놀잖아요.]

[박덕규 / 23년째 가르텐 운영 :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그러지만 여기는 누가 와도 구애받지 않고 공간이 있기 때문에 코로나하고는 관계가 없죠. 코로나라는 걸 신경 안 쓰고 살았어요. 외부 사람이 와도 우리만의 공간을 가질 때 코로나라는 걸 별로 신경 쓴 적이 없어요. 그래서 참 좋은 거 같습니다.]

도심 속 작은 정원, 클라인가르텐.
코로나로 인한 답답함도 잠시 잊고 쉬어갈 수 있는 시민과 동포들의 숨통, 힐링 공간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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