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뉴스

미니어처에 추억과 인생 담았다, 치유의 조각가 해리 김 씨
출처
YTN
작성일
2021.08.30

영상이미지

동영상보기


추운 겨울 연탄 심부름을 다녀오는 아이와 도시락이 올려진 난로가 있는 교실,
신나게 말뚝박기하는 골목의 어린아이들까지.
60~70년대의 생활 모습을 조그마한 미니어처에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미니어처 조각가 해리 김 씨의 작품인데요.

들여다볼수록 정겨운 동네 풍경이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수진 / 뉴질랜드 오클랜드 : 선생님 작품 중에 60, 70년대 어려웠던 한국 시절의 작품 조각을 많이 하셨는데 옛날 부모님 세대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 세대, 고모, 이모 세대. 재밌었어요.]

[이예리 / 뉴질랜드 오클랜드 : (작품들이) 아기자기하고 스토리가 다 이어지잖아요. 아기자기하게 구경하는 것도 이게 무슨 의미지? 이렇게 보는 것도 다 너무 재미있고요. 거기다가 심오한 의미가 있는 작품들도 많더라고요.]

서양화를 전공한 아내는 해리 씨가 만든 작품의 채색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함께 작업하고 있지만, 아내는 남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놀랍니다.

[김명희 / 아내 :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그런 창의력?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되게 잘 표현하는 거 같아요. 어떤 공통점을 주는 거 같아요. 이걸 보면서 아, 우리 어릴 때 저랬었지. 옛날에 한국에서부터 왔다는 걸 인식하게끔 하는 거 같아요.]

지난 5월 오클랜드의 한 아트센터에서 열린 해리 씨의 미니어처 작품전은 동포들에게는 떠나온 고국에 대한 향수를, 현지인들에게는 정감 있는 한국의 옛 모습을 보여주며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입소문을 타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캐스 오브라이언 / 아트센터 강사 :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무에 많은 공을 들인 섬세한 작업이 눈에 띄었고, 작은 인물들이 주는 느낌이 매우 좋았어요. 애정과 옛 기억을 많이 쏟아부은 것 같아요.]

한국에서 건축미술을 전공하고, 전시 전문 디자인 회사를 운영했던 해리 김 씨.
20년 전 이른 은퇴 후 뉴질랜드로 와 처음에는 남들처럼 골프나 낚시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서예와 목각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해리 씨에게 미니어처 작업은 단순히 나무를 조각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입니다.

[리 김 / 미니어처 제작자 :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글로 쓴다든가 서예나 서각으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어떤 기억들이라든가 삶에서 느껴지는 모든 요소를. 그래서 나무를 깎으면 좀 더 풍요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시작하게 된 거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대체로 삶 자체가 빡빡했어요. 어렵고. 그러니까 그 어린 시절을 충족하지 못한 것들이 잠재의식에 남아있었고 자연스럽게 조각을 하고 그러면서 응축되어 있던 감정들이 표출된 거 같아요. 점점.]

지난 5년간 만든 작품은 40~50점.
대부분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린 작품들입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직접 껌도 팔고 아이스크림 장사에 나섰던 배고프고 힘들었던 삶이 이제는 작품의 소재가 되면서 아픔과 고통을 치료하게 됐습니다.

[해리 김/ 미니어처 제작자 : 칼끝을 통해서 어떤 감정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또는 어떤 기운이 들어오는 것도 느껴지고. 좀 과장됐다고 느끼실지 모르지만 하다 보면 몰입을 하면서 그 속에서 나의 잠재되어 있던 아픔들이 빠져나가는 걸 느껴요.]

최근에는 시야를 넓혀 국제 환경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작품에도 전념하고 있습니다.

[해리 김/ 미니어처 제작자 : 제 작품은 남을 보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 제가 느끼는 걸 만드는 거예요. 제 작품을 통해서 특히 소외된 사람들, 이런 걸 계속 표현해 보려고 해요.]

깊이 내재 돼 있던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 조각으로 표현해내는 과정.
그 속에서 해리 씨 자신뿐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도 치유를 전하려 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