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고려인' 3부_율리아의 꿈
작성일
2018.04.24

YTN '고려인' 3부_율리아의 꿈

자막

YTN 특별기획 고려인 3부 율리아의 꿈



[프롤로그]

지난 6월 광화문 1번가 국민인수위원회,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고려인들이 처음으로 청와대에 직접 청원을 제출했다. 

이 가운데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 율리아(18) / 고려인 4세] 
"안녕하세요 저는 김 율리아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고, 4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고려인 4세인 율리아는 재외동포법 규정에 따르면 동포가 아닌 외국인 신분이다.

[김 율리아(18) / 고려인 4세]
"저는 할아버지 나라 한국에 바라는 것이 많이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19살 이하 고려인 4세 5천여 명(2017.9)>

성인이 되면 율리아는 곧 한국을 떠나야 한다. 이유는 한 가지 동포 4세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19살 이하 고려인 4세는 국내에 5천 명이 넘는다.

[김 율리아(18) / 고려인 4세]
"저와 제 친구들이 더 이상 비자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습니다."

[하승창 /대통령 비서실 사회혁신 수석]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청원에 대한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종천 /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국민위원회 사무국장]
"그들의 삶이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지 우리 사회에 잘 안 알려져 있거든요."

뿌리를 찾아 모국에 돌아온 율리아가 다시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브 타이틀: 율리아의 꿈]

4년 전 한국에 온 18살 율리아는 고등학교 졸업반 나이지만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처음엔 말도 잘못했지만 이젠 문서 작성을 할 정도로 한국어가 익숙해졌다. 

학교에서 단짝 친구들도 생겼다.

[김 율리아] 
"지금은 친구들 있어서 너무 좋고, 학교 다니기 즐거워요"

[김 현 빈 /고등학교 1학년]
"율리아 맨날 봐서 좋아요. (저도요) 학교 올 기분이 나요. (나도 좋아) 미안해 널 사랑하게 됐어"

고려인이란 말조차 생소했던 친구들은 율리아가 왜 머지않아 한국을 떠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 율리아 / 고려인 4세]
지금 제가 다니는 학교가 너무 좋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니까…한국 떠나가기 싫어요

< 율리아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

대한민국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고려인 4세 율리아에겐 간절한 꿈이 돼 버렸다.

[안산 고려인 마을 구성] 
안산시 선부동 땟골 동네에 만 3천여 명의 고려인이 모여 살고 있다. 

골목 끝에 고려인 지원센터 너머가 자리하고 있다.

낮에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밤에는 일을 마친 부모들의 한글 야학이 열리는 곳이다.

율리아도 이곳에서 방과 후에 어린 동생들의 한국어 공부를 돕고 있다.

"생년월일부터 써봐요" 
"안녕하세요. 저는 최 나스챠입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입니다"

[김 율리아 / 고려인 4세]
"아나스타샤를 보면 저의 모습을 생각나요. 제가 저도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던 생각이 나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율리아는 어린 시절 일자리를 찾는 엄마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떠돌아야 했다. 

선택하지 않은 유랑이었지만 한국행만은 본인이 결정했다.

저 한국에서 할머니도 있고 엄마도 있어서 우즈베키스탄에는 친구도 별로 없어서 한국에 와서 친구들도 생길 것 같아서 오고 싶었어요

이젠 친구들도 많아졌지만 율리아가 한국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법은 3세까지만 ‘재외동포’로 인정해주고 4세부터는 ‘외국인’으로 분류한다.

재외동포를 부모 또는 조부모의 한 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사람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3세인 엄마는 재외동포 자격이 주어지지만, 4세인 율리아는 그렇지 않다.

[김율리아 / 고려인 4세]
"슬펐어요 울 뻔 했어요 그때. 여기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니고 졸업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이잖아요" 

그럼 내년에 20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데 
졸업도 안하고 어떻게 떠나요? 

[김영숙 / 고려인 지원센터 너머 사무국장]
"한국 문화와 정서와 언어에 익숙한 이들이 
다시 거주국으로 돌아갔을 경우 가족과도 생이별을 해야 하지만, 그 거주국 에서 다시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은 이 친구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여론 때문에 법무부는 2년간 강제 출국을 유예했다. 

고려인 4세가 부모와 국내에 머물 수 있도록 오는 2019년까지 한시적으로 방문 동거 자격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언젠가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불안한 신분이다.

[김종천 /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국민위원회 사무국장] 
"참 마음이 아파요. 환영할 수도, 환영 안 할 수도 없는.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김 율리아 / 고려인 4세] 
"꿈은 지금 없지만 먼저 고등학교 졸업하고 여기 너머 센터에서 우리 (어린) 친구들한테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 대학 입학도 하고 싶어요"

18살 이 세르게이 군은 고려인 3세다. 

한국말도 잘해서 의료 봉사에 자주 참여한다.

[의료 봉사]
"살이 빠졌어요. (얼마나?) 5kg"

율리아와 달리 재외동포 자격을 받을 수 있지만 세르게이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징병제 때문에 1년 이상 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학업을 계속하며 한국군에 입대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 세르게이/ 고려인 3세]
(군대를 가서라도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예요?)
"네. 한국 군대를 갔다 오면 한국 사람이 되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르게이 누나 24살 제냐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결혼을 했다. 

배우자도 역시 고려인 3세다.

그러나 재외동포 비자를 받지 못해 3개월 마다 가까운 러시아에서 출국과 입국 도장만 찍고 온다.

[이 제냐 / 고려인 3세]
"(어디 갔다 온거죠?)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나갔다가 모텔에서 12시간 있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와요."

<재외동포법? '제외'동포법!>

고려인 3세라도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으려면, 4년제 대학 졸업장이나 기능사 이상의 공인 자격증, 일정 소득 이상의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중앙아시아와 중국, 동남아시아 출신 동포들에게만 해당 되는 제한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동포에겐 이런 조건이 붙지 않는다.

[이 제냐 / 고려인 3세] 
"우즈베키스탄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다 친구들 여기에 있어요. 엄마 아빠도 여기서 살아요"

[인터뷰 : 곽 재 석 / 이주동포연구원장]
"정확하게 대한민국은 동포를 차별하고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입국관리법, 재외동포법은 동포 차별법이다. 우리 동포들은 재외동포법이라고 안 하고 '제외' 동포법이라고 얘기하죠. 특정 동포는 제외시킨다고"

중앙아시아 다민족 사회에서 살던 고려인들은 같은 민족인 한국 사람에게 받는 차별과 멸시를 가장 힘들어한다. 

[인터뷰: 문 블라다 / 서울대 물리학과, 재외동포재단 장학생]
"배신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죠. 제 증조 할아버지가 나라를 지키려고 떠났는데 배신하고 도망가는 식으로 하면 그게 상처도 받고"

실제로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고려인들이 체감하는 차별감은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안산 지역 고려인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과거 탈북자에 대한 조사보다 2배 이상 차별감 지수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열악한 주변 환경에도 고려인은 한국의 일반인보다 우울감은 크지 않았다.

[박민현/가톨릭의대 정신과 교수]
"여러 가지 환경적 스트레스가 그들의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러한 환경적 스트레스는 차별, 사회적 지지 결여, 한국어 유창도 결여, 여러 가지 가족 스트레스, 문화적 차이 이런 것들이 작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려인이 차별받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국내 거주하는 고려인이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는 러시아가 83%, 한국어를 주로 쓰는 고려인은 14%에 불과하다. 구소련 동화 정책으로 대부분 한국어 교육을 받지 못했다. 

[임채완 / 재외동포연구원장] 
"한국에서도 이들의 언어교육부터 시키고, 언어를 매개체로 해서 서로 소통이 돼야 하고 이런 소통을 통해 세계 한민족 공동체가 이뤄진다면..."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이곳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17만 명의 고려인이 있다.

한동안 잃어버린 모국어를 되살리기 위해 현지에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설립 25년째를 맞는 한국교육원은 매 학기 천 명 이상 학생들이 몰리는 한국어 교육 중심지다. 
한국어는 물론 IT 전문 직업 교육까지 받을 수 있어 차세대 고려인의 관심이 높다.

[송 아니타 (18)/ 고등학교 3학년]
"방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어디서?) 한국에서 가능하면. 일하고 싶고"

[김 파빌 (20)/  취업준비생]
"밖에서는 이런 프로그램 못 배워요. 모바일 코딩은 한국교육원에서만 배울 수 있어요"

하지만 당장 한국어가 필요한 국내 고려인을 위한 정부의 지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고려인 특별법에는 구소련 지역으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어 국내 귀환 고려인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인터뷰: 서치원 변호사 /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국민위원회 제도개선 단장] 
"지금 동포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무부, 노동부, 외교부가 협력이 되어야 하거든요. 처음에 고려를 못한 거죠. 더군다나 국내 체류 동포에 대한 현황파악이 제대로 안되어 있어요" 

국내에 뿌리를 내린 고려인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안산의 한 병원은 일요일마다 다문화 환자들로 북적인다. 

대부분 건강보험이 없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무료 진료하고 있다. 

외국인 신분이나 다름없는 고려인들도 이곳 도움을 많이 받는다.

[인터뷰: 유 올가 / 고려인 4세] 
"일요일에 우리를 치료해 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입국 90일이 지나야 가입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YTN 더큰 코리아 방송/ 지난 2월]
“병마에 쓰러진 고려인 동포가 거액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뇌출혈로 쓰러진 이 마리나 씨는 단 이틀 차이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결국 2천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모금에 의지해야 했다.

[인터뷰:이 마리나/고려인 동포(2월 17일 YTN뉴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합니다. 
한국에 이렇게 마음 좋은 분들이 많아서 정말 놀랐습니다.“

[인터뷰: 신조야 / 광주 고려인 지원센터 대표]
"일 년에 몇 번 이런 일이 생기는지 너무 많아요. 보험 같은 것도 없고 입원비, 수술 할부...이게 얼마나 많이 나가는 줄 알아요?"

나라 없는 설움을 아직까지 겪는 이들마저 있다. 

바로 무국적자로 떠도는 고려인들이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사는 51살 김 루이자 씨 부부. 

여권에는 국적 표시가 없다. 

생계를 위해 스스로 국적을 포기했다가 구소련 붕괴 이후 국적 취득 시기를 놓쳐버렸다.

[김 루이자(51) / 무국적 고려인]
"그래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적을 받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좀 살았죠. 그때 큰 아들이 대학교 갈 때였는데, 그때 우크라이나 국적이면 (외국 국적이라) 너무 비쌌어요."

러시아 등 다른 국적 취득도 번번이 거부 당하면서 자식들에게까지 나라 없는 설움을 대물림하고 있다.

[김 루이자(51) / 무국적 고려인]
"샤샤(큰 아들)는 비자가 곧 만료돼서 여기에 돌아와야 되거든요. 이번에 들어오면 다시는 한국에 못 가요"

현재 중앙아시아 무국적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에만 3천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광주 강제이주 80주년 행사]

고려인 4천여 명이 광주에 뿌리를 내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고려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10년 전부터 마을의 대모 신조야 대표가 고려인의 대소사를 자기 일처럼 돕고 있다.

[신조야 / 광주 고려인 마을 대표] 
"우리를 고려인을 받아주고 관심 가져주고, 우리를 너무 많이 돌봐줘요. 소문이 퍼져서 다른 데서도 여기로 다 들어오겠다고."

매달 방문의 날 행사 때면 마을은 외부 손님들로 북적인다. 

새로운 식당과 상점이 생겨나고, 소규모 FM에서 아이들의 꿈을 키우기도 한다.

[임영상/ 외대 교수] 
인구절벽 시대에 동포들이 모이는 것을 좀 주목하고, 또 격려하고 같이 힘을 합하는 그런 문화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광주를 찾는 고려인 가족이 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설립 10년을 맞은 새날학교다.

[김 카차 (10) / 새날학교 3학년] 
"좋아요.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요"

[김 블라디미르(12)/ 새날학교 5학년] 러시아 출신 
친구들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요

고려인 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위탁형 대안학교다.

[김영경 / 새날학교 교감] 
우리 학교 아이들이 3년이상 다니면서 거의 (한국어능력시험) 4급이 제일 낫고 5급 6급 받고 졸업장 가지고 대학에 가는 거죠.

지난해 졸업생 14명 전원이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새날학교는 모국에서 꿈을 이루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

[안산 고려인 대회 / 지난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5천여 명의 고려인이 안산에 모여 대규모 대회를 열었다. 

고려인들로 구성된 전국 네트워크가 80인 선언문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했다. 

[인터뷰: 고려인 80인 선언문 낭독] 
“우리들의 뿌리인 역사적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동포로 인정해주십시오.”

그리고...역사의 아픔을 겪은 고려인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함께 한 이들,

[현장: 416 합창단 공연]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바로 세월호 유가족이 모인 416 합창단이다. 

같은 공간 아래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더 이상 아프거나 외롭지 않기를 희망했다. 

[김종천 /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국민위원회 사무국장] 
"2017년 반드시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고, 역사의 가장 아픈 자들을 대한민국 역사로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려 아리랑”

광주에서도, 안산에서도 시민들과 함께 손을 잡은 고려인의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아직 끝나지 않은 유랑의 시간들. 자신의 뿌리를 찾아온 고려인 아이들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고려인 #한국 #꿈] 
[김 율리아 (18) ]  
고려인들을 위해 너머 센터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통역 번역 같은 거요.

[지 일리나(16)] #타슈켄트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박 샤샤(20)] #타슈켄트
유명한 사업가가 되고 싶습니다

[김 블라디미르(18)] #타슈켄트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김 자밀라(17) ] #타슈켄트
성형외과 의사가 되고 싶어요.

[오 클라마제르(16) ] #안산
농구선수 되고 싶습니다

[박 빅토리아(16) ] # 안산  
돈 많이 벌고 부모님 도와 주고 싶어요.

[임 카롤리나(17) ] # 안산
대학 가고 언어를 배워서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조 안나(11)] # 안산
의사가 되고 싶어요

[김 알렉산더(15)] #안산
커서 요리사가 되겠습니다.

[텐 유리아(7)] #안산
피아노… 피아노…(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텐 유미(8)]  #안산
커서 마트에서 일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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